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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화 Mar 13. 2020

사투리 통역사

초단편소설

2050년 강남역 사거리


쾅!!


‘아 뭐야 진짜! 차선도 제대로 안 보고 운전하나...

 어?..대구 번호판이잖아 더럽게도 꼬이네 진짜’

(김 모 씨, 서울, 싼타페 차주)


 으레 접촉사고가 나면 우선 차에서 내려 상태를 차 손상 정도를 확인하고 상대 운전자와 시시비비를 가리기 마련이지만 김 씨는 상대 차량의 ‘대구’ 번호판을 확인하고선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핸드폰을 꺼낸다. 그는 보험회사, 경찰, 그리고 ‘한국사투리통역공사‘ 순으로 전화를 돌린다. 5분 정도 지나 사고 현장엔 보험회사 직원이 도착했고 곧이어 교통경찰관이 도착했지만 그들은 주변 차량을 통제할 뿐 누구도 양쪽 사고차량 운전자와 대화를 하거나 사고 경위에 대해 물으려 들지 않는다. 사고 시간으로부터 20분쯤 지났을까 통역공사 직원인 사투리 통역사 A가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관은 양쪽 운전자에게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보험회사 직원들은 운전자의 사고 처리 일정과 보험이 보장하는 영역을 설명해준다. 물론 그 모든 대화는 사투리 통역사를 A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은 해방 직후 어떤 연유였는지 전국 팔도 사투리의 어마어마한 발전이 나타났다. 정부의 표준어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자 지역에서 널리 쓰이며 배우기 쉬운 본인 지역의 사투리를 쓰기만을 고집했고 때마침 악화된 지역감정으로 인해 지역 간 소통 단절이 더욱 심해지면서 20세기 말에 들어서는 서울경기-강원-경북-경남-충북-충남-전북-전남-제주 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2,010년경 네이X를 필두로 한 국내 IT 업체들이 앞다투어 지역 간 소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완벽한 사투리 통역기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이의 이승* 과 같은 사투리의 미묘한 높낮이, 어감, 말투 차이 분석 실패로 통역기 개발에 실패하고 만다.


*이의 이승 : 경상도 지역 사투리에 의하면 수식 기호로 구성된 하기 네 가지 표현을 읽는 법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e^2, e^e, 2^2, 2^e



 이에 당시 정부는 표준어 보급 정책을 포기, 각 도별 언어 소통을 위해 전국 팔도 사투리 인재를 육성하기로 결정하고 국가 주관의 공인사투리통역사* 시험을 시행하였다. 매년 연 500명의 사투리 통역사 합격자들 중 연수원 성적 상위 30% 인원에 한해 ‘한국사투리통역공사‘에 근무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으며 하위 70%의 인원들은 통역 펌에 취업하거나 사설통역사무소를 개업하곤 했다. 사실 페이로만 따지면 국가직인 통역공사 소속 통역사보다는 사설통역사*의 페이가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연수원생들 대부분 ‘한국사투리통역공사’에 근무하는 것을 희망했는데 그 이유는 통역공사에 근무하는 통역사의 ‘말‘은 말 그대로 법이고 정의였기 때문이다.


*제1회 공인사투리통역사 시험은 2,018년 시행되었다.



 통역이라는 것이 사실 중간 전달자, 즉 통역사가 마음만 먹는다면 양쪽의 대화를 실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원만하게 대화가 진행되게 할 수도 있고 서로에게 오해를 사게 하거나 아예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 간의 통역이라는 것도 이러한데 더욱더 큰 단위인 기업 또는 단체, 심지어 정부기관 간의 대화를 통역하게 된다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연유로 대법원,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에서 국가직으로 근무하는 통역사들은 ‘말’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본인들이 원하면 실제로 그들이 가진 권리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행할 수 있었다. 큰 권리에는 그만큼 크나큰 책임이 따르지만 달리 말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회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근 몇 년 간 일부 국가 고위직 통역사들의 오역/의역을 통한 부정부패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후 정부차원에서 통역사들의 부정부패를 막고자 공적인 통역 내용의 경우 필수적으로 녹취를 하고 사후 검증을 시행하는 법안도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통역사들이 판을 치는 실정이다.


*국가직을 제외한 민간통역사 인원 및 평균임금현황

(통계청, 2,049년 자료)

구분    2,020년  2,030년 2,040년     2,049년

인원(명)        121           1,363          2,971        5,239

임금(만원)  5,080    9,289 12,820       18,620



 A는 지역 간 소통 단절 시대에 드물게도 경상도 출신 서울 거주 어머님과 제주도 출신 전라도 거주 아버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집안이었지만 여러 지역의 방언을 구사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인해 그는 사투리 영재로 자라났다. 어릴 때부터 다양하게 접한 사투리 덕에 자연스럽게 A의 꿈은 공인사투리통역사가 되었고 그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대원사투리고등학교 - 서울대 사투리어문학과로 이어지는 통역계의 수재 코스를 밟으며 24살에 최연소 공인사투리통역사 시험에 통과한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합격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 통역관으로 근무하게 될 것이라는 A의 장밋빛 꿈과는 달리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통역공사에서 아무런 연줄도 없는 평범한 집안의 A는 연수원을 마치자마자 살인적인 업무강도로 유명한 강남구 교통과로 발령받는다.


 당시 통역공사 소속 말단, 그중 교통과 통역사 대부분은 쥐꼬리만 한 박봉과 매일 반복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지쳐 퇴근 후 또는 주말 동안 각종 민간 통역 알바를 뛰곤 했다. 공무원에게 겸업은 불법이지만 차고 넘치는 고 페이의 통역 알바를 못 본채 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공무만 수행하는 통역사는 극히 드물었다. 지방 곳곳에서 하객들이 찾아오는 결혼식 사회부터 서울-전라도 집안간 상견례 통역까지 통역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널려있었으나 통역사의 절대적인 숫자는 늘 부족했다. 이러한 여건 덕에 통역공사 소속 통역사들은 불법이긴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짭짤한 추가 수입을 만들 수 있었다.


 A는 하루 평균 8건, 한 달 160건의 교통사고 현장 통역이라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늘 공정하고 명확한 소통을 만드는 통역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새겨왔다. 그의 선배들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통역 알바도 하면서 돈이나 벌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A는 언젠가 정부 요직 통역관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통역공사 내에서도 비교대상이 없었던 A의 사투리 실력과는 별개로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집안 출신 A에겐 그를 요직으로 끌어올려줄 만한 연줄이 없었다.


 불타는 토요일 테헤란로를 질주하던 폭주족이 일으킨 대형 교통사고 탓에 A는 지난밤 당직 내내 잠 한숨 못 잔 채로 일요일 정오가 돼서야 녹초로 집에 도착했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몸을 던져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후 6시면 하반기 국회 통역사 모집 결과 발표가 있기도 하고 지금 잠에 들었다가 자정 무렵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월요일부터 컨디션이 엉망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잠을 조금 미루기로 한다. 이번 국회 통역사 면접은 준비를 잘하기도 했고 최종면접에서 그의 강점인 제주도 사투리에 대한 질문이 나와 완벽하게 답변한 터라 A는 확신에 가까운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냉장고에서 갓 꺼내 온 맥주 캔을 따며 무릎에 올려진 노트북을 열어 사투리 커뮤니티를 살핀다. 각종 통역 알바를 구한다는 게시판을 들어가 보려다 꾹 참고 학습 게시판에 업데이트된 팔도 신조어들을 살피며 하나씩 입으로 소리 내어 연습해본다. 부모님 덕에 표준어, 전라도, 경상도, 제주 사투리는 원어민에 가깝게 구사하지만 강원도 사투리는 입에 잘 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강원도 신조어 표현을 입술에 힘주어가며 연습하던 그때 A의 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A보다 한 살 위인 국토부에서 근무하는 B 사무관이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 통성명 이후 한 살 어리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반말을 해대는 B의 때문에 A는 빈정이 상했었지만 올해 국회 통역사 자리에 지원한 터였기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간단히 명함만 교환한 터였다.  


 전화로 B 사무관은 A에게 오늘 오후에 시간을 좀 내라고 했다. 부탁도 아닌 명령조로 느껴지는 B의 말투에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A는 차분히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이유인즉슨 오후에 경상도 출신 여성분과 중요한 선자리가 있는데 미리 섭외해놓은 통역사가 펑크를 내게 생겨 A에게 통역 대타를 뛰어달라는 것이었다. B 사무관은 교통과에는 잘 얘기해줄 테니 몇 시까지 어디로 와달라고 얘기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교통과에 얘기를 잘 넣어주겠다는 B의 말이 특히 거슬렸던 A는 다시 전화를 걸어 어떤 핑계라도 대고 피하고 싶었지만 지난밤 전쟁터 같았던 당직의 후유증으로 그의 머리는 합당한 핑곗거리를 찾아낼 여력이 없었다. 얼떨결에 무보수로 탐탁지 않은 선자리 통역을 나가게 된 A는 최대한 빨리 선자리를 박살 내버리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약속시간보다 3분 정도 앞서서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하니 오늘따라 유난히 뺀질뺀질해 보이는 B가 먼발치서 손을 흔들고 있다. B에게 다가가자 그의 맞은편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의 뒷모습이 얼핏 보인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A 쪽으로 목을 쭈욱 빼고 있는 B를 보아하니 아마도 상대 여성이 약속 장소에 일찍 나와버려 B가 골치깨나 썩고 있던 상황인 것 같다. A는 느긋하게 걸으며 B의 진땀을 더 빼게 하고 싶었지만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간다. A는 B와 간단히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들어 B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흘겨보았다. 그와 동시에 B는 통역사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많이 기다리셨는지 물어보기에 A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을 여자에게 통역을 해준다.


"지가 밍기적거리가 앵꼽지는 않지예. 임마가 은제 면상 디미나 베르고 있었지예?"


 차가운 인상이지만 꽤나 미인인 그 여자는 A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한다.


 "언지예, 개안심더"


 B가 A의 허벅지를 기분 나쁘게 무릎으로 툭툭 치며 통역을 재촉한다. A는 이마가 꿈틀거렸지만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면서 여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B 는 상대 여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자의 대답을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표정이 밝아진다. A는 그런 B를 보고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심통이 나기 시작한다. 탐탁지 않은 B의 선자리의 큐피드 역할을 하는 자신이 못마땅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통역 로봇 정도로 생각하는 건지 눈길도 주지 않고 얘기하는 B의 상대 여성에게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가서인지 헷갈린다.  


 메뉴가 나오고 B는 여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데 A는 여자의 답변을 교묘하게 비틀기 시작한다. 의례 상대에게서 틱틱거리는 답변이 계속되면 질문하는 사람이 지칠 만도 한데 B는 눈치가 없는 건지 긍정적인 건지 희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정신없이 질문을 이어 나간다. 중간중간 통역을 재촉하며 툭툭 발로 쳐대는 B 덕에 A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단단히 체할 것이라 확신했다. A는 은근히 여자가 B의 그런 무례한 행동을 알아채 주길 바랬지만 여전히 여자는 A 쪽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1시간 남짓 대화가 계속되면서 경상도 사투리 공부를 시작했다는 입바른 거짓말을 하는 B에게 여자도 호감이 생기는 듯한 눈치다. 이렇게 A의 자그마한 악행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끝이 나버릴 듯했다.


 A는 뱃속의 음식들이 소화되기 시작하면서 밤샘 당직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옴을 느꼈다. A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느끼며 당장이라도 일어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여자와 B는 대화에 더 집중하느라 접시는 반도 비우지 않고 자리를 일어나기 아쉬운지 따로 시킨 와인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A는 그 모습에 짜증이 팍 하고 치솟는 걸 느끼고 얼굴이 벌게져서 히죽거리고 있는 B를 째려보는데 순간 A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띠링‘하고 울린다.


 ‘하반기 국회 통역사 모집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우수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확인한 순간 A는 이마가 다시 꿈틀대고 표정관리가 어려워짐을 느꼈다. 최종 면접장에서 제주 사투리에 관한 답변을 완벽하게 구사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A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테이블 아래에 있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넋 놓고 있는 A의 무릎을 누군가 툭툭 쳐대기에 올려다보니 B가 차키를 눈앞에서 흔들며 가까운 이자카야로 이동하기 위해 운전을 좀 대신해달라고 한다. 덧붙여 이자카야로 2차 가는 게 괜찮은지 물어보라는 B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자 A는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심호흡을 길게 내쉬어 본다. 그리고 A는 최대한 차분한 표정을 지은 뒤에 B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여자를 바라보고 통역을 해준다.


"문디 가튼기 애빈거 같은데 마이도 쳐묵네. 이제 대니까네 고마 쳐묵고 방이나 잡을라는데 우얄라능교. 라고 이분이 카네예"


 A는 이어서 저는 역할이 끝났으니 먼저 일어나 보겠다는 말을 남긴 채 불쾌함으로 잔뜩 구겨져가는 표정의 여자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는 B를 뒤로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레스토랑을 나선다. A는 분노에 가득 찬 여자의 경상도 방언과 하염없이 A를 부르는 B의 표준어가 뒤섞인 광경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탄다. 아마 다른 통역사를 구해서 쓴다고 해도 두 사람의 오해를 쉽게 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A는 택시 뒷좌석에서 웃기 시작했다. A는 멈출 수 없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핸드폰을 꺼내 들어 통역 알바 게시판의 최신 글 목록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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