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화 Jul 25. 2020

덤불 속

초단편소설

김 아무개 경관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날씨가 진짜 좋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장마라더니 며칠 내내 비는 구경도 못했어요. 기자님, 기상청 놈들 완전 세금도둑 아닙니까? 여하튼 탁 트인 하늘 때문인지 출근하고 내내 들뜬 기분이었는데 뭔가 싸한 거 아시죠. 무슨 일 생길 거 같은 날. 아니나 다를까 점심 먹는데 비상이 터진 거지요. 사안이 크다 보니깐 비번들까지 전부 소집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한 2~3시간쯤 수색했을 때 '나 여깄다'하고 어디서 나타나셨으면 했어요. 경찰이라도 죽은 사람 발견하는 게 달가운 일은 아니니 정치색을 떠나서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했지요. 근데 이게 6시간쯤 넘어가니깐 안타까운 맘보다는 오늘 집에 들어가긴 글렀다 싶더라고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제가 그때 잠깐 아마 나쁜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요 그냥 어디서라도 빨리 시체 나와서 상황 종료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입 밖으로 낸 건 아니지만 못된 생각을 먹어서 제가 첫 발견자가 된 건 아닐까. 그래서 벌 받은 거 아닌가 싶고 지금 생각하면 좀 후회스럽습니다.  

시청 공무원 최모 사무관
글쎄요. 매일같이 모시던 분이긴 했지만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기는 그렇네요. 아시잖아요 공무원들 입단속 심한 거. 고소인이요? 알긴 알지요. 잘 알지 아주. 그럴만한 사람이냐고요? 참 기자님이랑 알아온 세월도 있긴 하지만 그냥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괜히 입 놀리다가 목 날아간 사람을 한둘 봤어야지. 아 기자님을 못 믿는다는 거는 아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경찰에서 잘 조사하겠지요 그냥 노코멘트. 아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 종결 이랬나요?
조문 갈 거냐고요? 뭐 그것도 노코멘트.

모 시민단체 회원 신 모 씨
죄짓고 죽으면 영웅으로 추앙받는 게 말이 되나요? 죽음이 고인의 면죄부가 될지언정 피해자는 남아있습니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무책임한 죽음일 뿐이에요 그런데도 그 간의 행적 때문에 영웅 취급을 하는 분들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서울특별시장(裝)도 해서는 안될 짓이었어요. 세금낭비예요 혈세. 공식적으로 조문 가겠다고 발언한 정치인들 국민들이 한 명 한 명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다음 총선 때, 대선 때 응징할 겁니다 국민들이. 네? 뭐요? 서울시 지원금요?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옵니까. 그거랑 이거랑 연관 짓지 마세요. 뭐요? 당신 말 다했어요? 인터뷰 그만합시다. 어디서 행패야 행패가.

버스기사 조 아무개
잔인한 정치 공작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선 잠룡이신데. 그렇게 가실 분이 아닌데.. 돌아가신 이유도 경찰이 조사해서 혹시 외압은 없었는지 협박은 아니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 시장님 덕분에 서울시가 얼마나 발전을 했는데.. 뭐가 발전했냐고요? 보고도 모릅니까? 어디 신문이라고요? 이거 우파 언론입니까? 인터뷰 안 해요. 아 안 한다고. 그러게 말을 왜 그딴 식으로 해요. 지금 인터넷에서 시장님 욕하는 사람들 다 천벌 받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깐 이번에 차기 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 그 인간들부터 의심해봐야 합니다. 시장님 돌아가셔서 제일 혜택 보는 게 그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 이때다 싶어서 미쳐 날뛰는 야당 인간들도 다 해체시켜버려야 해요. 싹 다 깜방 처넣어야 해. 틈만 나면 여당 헐뜯기나 하고 국회 보이콧하고 그 인간들 뽑는 사람들은 머리에 우동사리나 들었지. 뒈질 놈들. 그 고소했다는 인간도 무고죄로 잡아쳐 넣어버려야 됩니다. 나라 꼴이 어찌 될라고...ㅉㅉ. 근데 좌파 뉴스 맞아요?

부동산 전문가 박 모 씨
글쎄. 제일 수혜를 볼 지역은 서초/강남구라고 봐야겠지요. 전 시장이 부동산 관련해서 꽉 쥐고 있던 그린벨트가 풀린다고 하면 기자님은 어디부터 개발하겠습니까? 뻔하지. 서울시 땅 중에 25%가 그린벨트예요 그게 풀려봐. 기대 수익 어마어마하지.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 부동산 가격은 산 중턱도 못 갔다고 봅니다. 강남/서초 그린벨트 풀리면 꼭대기인 줄 알았던 주변 부동산 다시 폭등하는 거지. 근데 사실 이미 늦었어요 알만한 사람들은 기사 뜬 다음날 다 들어갔어. 세곡동 내곡동. 남들 다 알 때는 한 발 늦는 거지 이미. 뭐 사람 죽는 게 이렇게 큰 영향 끼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어뜨케. 기자님은 부동산 좀 관심 있으셔? 명함 하나 드릴게 돈 놀리지 말고 연락해요.


어느 날 해 질 녘이었다. 기자 하나가 시청 앞 분향소 앞에서 비를 긋고 있었다. 줄을 지은 조문 행렬과 분향소 중앙에 자리 잡은 전 시장의 영정사진을 번갈아 보며 인터뷰 내용을 복기해보았다. 기자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내 곧 분향소를 등지고 서서 비를 그으며 돌아갔다.

#정치적 견해와는 무관한 글 임을 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꽃샘추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