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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Apr 17. 2022

우리집 고양이 추로스 좋아해

(22.4.17) 엔드 오브 타임, 데이비드 차머스, 미노이

  벚꽃잎들이 눈꽃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벚꽃이 다 지기 전에 자이언트 랙돌 고양이 하릅과 산책을 실컷 하기로 하여 집 앞의 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분홍 꽃잎이 떨어지면 봄이 끝나고 초록이 돋아나면 여름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붐비고 서로 길을 막으며 사진을 찍었고, 차들은 줄지어 ‘드랍 더 비트’처럼 경적을 찍으며 지나갔다. 나는 도시의 소음과 북적임을 완상하며 설레는 기분이었으나, 하릅은 살짝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요즘 읽고 있었던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이 떠올라 하릅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물질로 만들어진 인간이 비물질인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 의식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 의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축축한 곳으로 가려는 지렁이와 숙주를 찾아 나서는 박테리아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쨍한 햇볕 속에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쭉 뻗고 있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도 해. 나무는 어떤 의지를 가지고 뿌리를 뻗고 꽃을 틔우고 씨앗들을 날리는 것일까. 그것도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DNA의 영속을 위한 모든 생명체의 이기적인 행위들을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거창하게 의식이라고 불러왔던 것일까.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차머스는 요즘 트렌드인 신흥 종교 지도자 룩을 하고 TED 강연에 나타나서 범심론을 주장하며 인간, 개, 쥐, 파리뿐만 아니라 미생물, 소립자, 광자까지도 의식이(정확히는 의식의 전조에 해당하는 원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범심론자가 되고 나서 의식이 있는 모든 것을 먹지 않도록 결심하여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했다고 말했고 그것은 나와 범심론이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범심론자들의 생각이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을 모든 종으로 확대해야 하며 호랑이 또한 강제로 당근과 양배추로 연명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소립자와 광자에도 존재하다는 ‘의식’이 양상추와 당근에게는 무시해도 될 만큼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그대로 주장한다면 범신론을 주장했던 스피노자는 대체 무얼 먹고살았어야 하냐는 것이다.)

  하릅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다가 재미없으니 제발 좀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아 진심으로 이 이야기가 재미없냐고 물었다. 왜냐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냐는 질문조차도 없었을 것이고 차머스가 우주의 근본 요소인 공간, 시간, 물질, 전하에 더해 의식이라는 것도 추가해야 한다는 말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끔찍한 말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의식이라는 것이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항상성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신경계의 작용부터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 했으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의식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유기체 DNA의 설계가 업그레이드된 결과라고 했다. 그러니까 언어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사고가 정교화된 사건이야말로 전 지구적인 비극의 시작인 거야. 이 지구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네안데르탈인이 탈취했어야 했어. 네안데르탈인이 지배하는 지구에서는 지독한 허무와 우울로 옥상에 뛰어내리는 사건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나는 작년에 회사에서 4층 사무실 창문을 뚫고 뛰어내린 한 남자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은 내가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며 늘 떠올리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소설을 완성한 뒤로는 그 창문을 바라보며 그 이미지로 완성된 소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릅은 거기까지도 듣다가 너무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 돌아버릴 지경이라며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혼자 집으로 돌아가 버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광자에까지 의식이 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한다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데이비드 차머스는 의식이 없다면 삶의 어떠한 것도 의미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고 했고, 자율신경계만 작동하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 (데이비드 차머스가 아닌) 우리는 생리학적으로 ‘의식’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이라는 것의 의학적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려 했지만, 모든 것을 관두고 저만치 혼자 가 있는 하릅을 뒤따라가 나는 말했다.


  같이 가자. 네가 좋아하는 추로스 사줄게.


  더이상 긴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겐 아직 더 할 말이 많았지만, 하릅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식을 가진 지구 상의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우리집 고양이는 츄르보다는 추로스를 좋아하고, 우리는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먹으며 집으로 룰루랄라 돌아왔다.           




아래의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TED : How do you explain consciousness? (데이비드 차머스)

느끼고 아는 존재 (안토니오 다마지오)

우리집 고양이 츄르를 좋아해 (미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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