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May 22. 2022

난 슬플 땐 훌라를 춰

(22.5.22.) 드바지, I like it, 베놈, 닥터 스트레인지

  

  출근을 하고 잡초 제거 정도 난이도의 간단한 업무들을 마치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이전 브런치 발행 글인 ‘결국 식물들이 지구를 정복할 것이다’에서 나의 업무를 ‘좀비 vs 식물’로 묘사한 적이 있는데, 번식력이 강력한 식물들에 속수무책으로 정신없이 당하는 오피스 좀비들로 사무실 정경을 표현했다. 잡초 제거 정도로 끝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대왕 파리지옥에 반쯤 먹혀 발버둥 치는 일도 있지만, 매월 돌아오는 금융 테라피로 치유하고 우리는 아이티의 부두교 노예처럼 재생되어 다시 전선에 나선다. 나는 그 발행 글에서 더욱 생동한 현장감을 묘파하기 위해 ‘싱싱한 스투키 옆에 앉아 있는 우울한 소년’을 일러스트로 그렸다.

  하지만 어느 날, 나의 몇 안 되는 열렬한(?) 구독자(라고 알고 있었던) 중의 한 명인 천재 카투니스트 닿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저 스투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왜 우울하지?”

  내가 지긋이 바라보며 헛웃음을 치기도 전에 다음의 질문으로 나를 더욱 황망스럽게 했다.

  “이 그림은 언제 그려서 올렸어? 내가 봤을 때는 없었는데?”

  브런치 글을 발행할 때 같이 올린 거라고 얘기하려다가, 됐으니까 라이킷이나 누르라고 했지만 닿은 그 의미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라이킷? 그게 뭐지? 드바지의 알라이킷?”

  그러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두둠칫 하와이안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닿은 실제 하와이에 가서 훌라 마스터(쿠무 훌라) 에훌라니 스테파니에게 ‘훌라 아우아나’를 사사했다. 닿이 하와이를 떠날 때, 에훌라니는 닿에게 레이(lei)라 불리는 하와이안 꽃목걸이를 걸어 주며 닿의 어깨를 잡고 하와이어로 무어라 호소하듯 말했지만 닿은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꼭 안아주고 떠났다. 한참 후에 하와이의 지인을 통해 그 말이 무엇인지 유추했는데 닿은 마지막 달 수강료 결제를 잊었던 것이다. 닿은 말했다.

  “훌라(Hula)가 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훌라 댄스’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아. 문자가 없던 시절에는 이 춤으로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전달했지. 여자가 추는 춤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훌라는 원래 종교적인 의식 때 남자들이 추었던 춤이야. 이 하나의 몸짓이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거라고.”

  그리고는 웹툰 ‘막 그리는 그림일기’를 업로드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닿은 팔과 허리를 유연하게 꾸무룩거리며 한 발 한 발 리듬을 타며 움직였다.

  “난 슬플 땐 훌라를 춰. 아무도 내가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

  닿은 와이키키 해변의 파도 소리처럼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두둠칫 거리는 어깨의 추임새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를 노려보며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알라이킷...알라이킷...알릴리릴리라이킷...(I like it, I Like it, I really really like it)

  드바지(DeBarge)는 드바지 남매(남자 형제 4명과 누이 1명)가 결성한 그룹으로 1982년 발매한 ‘All This Love’에서 타이틀 곡‘All this Love’과 더불어 ‘I like it’을 히트시킨다. 하지만 나는 이 곡을 워렌 지가 샘플링하여 만든 ‘I want it all’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한창 힙합에 빠져 있을 때 이 곡이 금영과 태진의 노래방 기계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나는 대신 에미넴의 ‘Lose yourself’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저녁에는 하릅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러 갔다. 디즈니+의 마블 드라마 ‘완다비전’을 보지 않으면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사실 그것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릅은 어차피 한 번 봤던 영화는 정확히 모두 잊어버리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하릅과 함께 넷플릭스로 베놈 2를 보고 있었는데 하릅은 나에게 자꾸만 저 까맣고 흉측한 놈은 왜 자꾸 톰 하디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었다. 4년 전에 개봉한 베놈 1을 보고 써놓은 하릅의 리뷰가 생각나서 나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액션은 준수하고 톰 하디의 연기도 좋다. 우디 해럴슨이 나오는 2편도 보게 될 것 같다.]

  나는 베놈이 원래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빌런이라고 설명해 주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나오는 쿠키가 바로 이 베놈을 연결해 주는 장치라고 설명하자 어깨를 으쓱거렸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본 지 2달도 채 되지 않는데 아마 그 내용을 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아마, 그 쿠키를 보면서 베놈에 대해 설명을 해준 것 같은데, 그때도 그게 뭔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샘 레이미 감독이 닥터 스트레인지와 함께 돌아와서 좋았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체가 좀비처럼 돌무덤을 뚫고 솟아 나올 때와 그의 절친이자 트레이드 마크인 이블데드의 히어로 브루스 캠벨이 나올 때는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전기톱을 팔에 붙이고 휘둘러 댔다면 더 신났을 것 같다. 나는 하릅에게 우리가 예전에 봤던 이블데드 리메이크를 언급하며 샘 레이미가 바로 그 영화의 원작자이며 메이저 히어로 무비에 B급 호러 감성을 이토록 잘 믹스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샘 레이미밖에 없다고 말해 주었지만 하릅은 나를 보지도 않고 팝콘을 내 입안에 쑤셔 넣으며, 귓속말로

  “조용히 좀 해.”

  라고 말했다.               


아래의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결국 식물들이 지구를 정복할 것이다 (Han)

I like it (드바지)

I want it all (워렌 지)

Lose yourself (에미넴)

베놈 1 (루벤 플래셔)

베놈 2 (앤디 서키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샘 레이미)

이블데드 (샘 레이미)

막 그리는 그림일기 (닿)

언플러그드 보이 (천계영)

이전 14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