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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Oct 03. 2022

당신은 바로 그 생각 때문에 타 버릴 거예요

(22.10.3) 엔드 오브 타임, 클라라와 태양, 물리 화학


   나는 최근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을 읽었다. 처음에는 우주, 물리, 생명 등의 테서렉트의 시공간에서나 나올 것 같은 키워드와 검고 아름다운 벽돌을 연상시키는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으로 전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의 내면에는 ‘싫은 것’과 ‘싫은 것에 대한 호기심’의 이중성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가 결국에는 해병대 동반 입대를 권하는 심정으로 스텔 님에게 함께 읽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사실 퐝에게도 제안을 했으나, 그는 한 달 전 내가 권한 <지구를 위한 착각>을 시도하고는 다시는 내가 추천한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며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구로 시작하는 제목도 지긋지긋한데 이제는 우주라고...? 퐝은 군입대를 앞둔 BTS처럼 심각하게 굴었고, 아니 원래 어벤저스도 지구에서 싸우다가 우주로 나가고 그러잖아. 나는 배시시 웃는 죠르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했다. 카카오톡 메시지에 1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친절한 스텔 님은 마침 이 책을 막 주문하려던 참이었다며,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며 오히려 따뜻하게 반겨주었고 우리는 교보문고 앞에서 양손을 잡고 까르르 거리며 빙빙 돌았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에 대해 30분간 찬양에 가까운 잡담을 하고 헤어졌다. 스텔 님은 비슷한 느낌의 영화 <애프터양>을 강력 추천했고, 나는 <클라라와 태양><알프스 소녀의 하이디>의 변칙적인 내러티브로 읽었다고 말했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기존 히어로 코믹북의 관습을 비틀어서 <언브레이커블>, <23아이덴티티>, <글래스> 등을 완성했듯이.       


  1주일 후 <엔드 오브 타임>이 도착했을 때, 첫 장부터 엔트로피를 언급하며 독자들의 기선을 제압하는 것을 보고 앞이마가 뜨끈해졌다. 나는 열역학 교재의 전 지구적 1타 강사이신 피터 앳킨스 님의 전설적인 교재 <Physical Chemistry>(물리 화학)를 꺼내 들었고 엔트로피 파트를 다시 읽어 보았다.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1940년생이신 앳킨스 옹께선 2007년에 은퇴하시고 현재까지 건강하신 모양이다. 더이상 개정판을 쓰실 수는 없으시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엔트로피라는 용어가 유행어처럼 무질서도라는 표현으로 남용되는 것이 불만족스러웠는데, 특히 이것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너무나 손쉽게 이해한 후, 사회과학 현상에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듯이 적용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알아? 그것은 무질서도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 모든 것은 무질서한 쪽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야. 책상을 잘 정리하는 것보다 어지러워져 있는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럽다는 것이야. 그리고 내가 양말을 벗어 아무 곳에나 던져 놓는 것도 우주가 정해놓은 법칙이라는 것이지.”

  하지만 책상이 어지러워져 있거나 양말을 아무 곳에나 던져 놓는 것은 게으르고 주의가 없기 때문이지 그곳에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의 증가가 적용되어서는 아니다. 김상욱 교수가 엔트로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는 볼츠만이 정의한 식 S=K x ln(W)를 이용하여 통계역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볼츠만의 식에서 W는 경우의 수를 의미하는데, 루믹스 큐브를 예를 들어서 모든 면의 색깔이 맞는 경우가 질서, 그렇지 않은 모든 경우가 무질서라고 한다면 무질서한 경우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을 예로 들어 엔트로피의 증가를 설명했다. 이 정도까지 단순화하여 설명한다면 책상 정리나 양말 벗어던지기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클라우지우스의 정리인 S=Q/T라는 개념을 더 선호한다. Q는 열량이고 T는 온도이다. 가역과정에서만 성립한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더 원조이며 원초적이고 실제로 더 실재적으로 느껴진다. 쉽게 말해 엔트로피는 열량의 변화를 온도로 나눈 값이다.

  클라지우스는 열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르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고 1850년 <열의 동력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그것을 밝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넣었을 때, 얼음은 녹고 아메리카노는 시원해진다. 그 반대로 열량이 움직인다면 얼음은 더 차가워지고 아메리카노는 더 뜨거워질 것이다. 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에는 위반되지 않지만 이것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비자발적이다. 클라우지우스는 물리법칙에는 더 자발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같은 열량이 움직인다면 온도가 낮은 얼음의 엔트로피가 더 크고 온도가 높은 아메리카노의 엔트로피는 더 작다. 열은 아메리카노에서 얼음으로 이전되므로 엔트로피는 항상 (같거나) 증가한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을 축약하여 ‘무질서도의 증가’로 말하게 되는 것뿐이지, 엔트로피라는 것이 우주가 심어놓은 사회과학적 혹은 인지심리학적 담론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적용한다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0km씩 달리고 6시간씩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하루키는 자신을 저 엔트로피 상태로 만드느라 자신이 지나온 달리기 코스 주위를 엉망진창 무질서 상태인 심각한 고 엔트로피로 만들고 다녀야 한다. 하루키가 지나간 곳은 허리케인에 자동차가 하늘로 치솟고, 쓰나미에 돌고래 떼들이 몰려오고, 거리의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필의 ‘모나리자’를 떼창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까 엔트로피 핑계 대지 말고 양말은 제발 잘 벗어서 빨래통에 집어넣자.)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꿈에는 엔트로피가 나왔다. 나는 검은 우주 속을 나의  동거묘 하릅과 함께 걸었고, 우주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사고체 '볼츠만 두뇌'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 말 잘 들으세요. 유한한 에너지로 생각을 무한정 계속하려면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엔트로피를 방출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시점이 찾아올 겁니다. 그 후에도 생각을 계속한다면 당신은 바로 그 생각 때문에 타 버릴 거예요."

  하릅은 단숨에 달려들어 그 사고체를 발톱으로 찢어 버리고 분홍 젤리 같은 발바닥을 핥으며 말했다.

  "너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래의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 인용 391p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물리 화학 (피터 앳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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