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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n 19. 2022

캠핑은 어마어마해

(22.6.19) 온다 리쿠, 테드 창, 이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귤과 퐝과 나는 7월 1일까지 단편 소설 한 편과 시 2편을 완성하기로 했다. 부지런한 귤은 틈틈이 완성한 모양이지만 퐝과 나는 내내 손을 놓고 있었는데 며칠 전 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말 내내 원고지 80매 정도 분량을 완성했고, 이미 그다음 편까지 구상을 끝냈다는 것이었다. 어마 무시한 필력에 기함을 했다. 나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휴가를 낸 김에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써보려고 했지만 공포의 백지 앞에서 도저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대신 책장에 있는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꺼내서 읽었다. 나는 온다 리쿠의 이 소설집 중에서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미스터리 한 변사사건으로 시작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두 소녀가 나온다. 그리고 이복 자매에게 얽힌 가족의 잔혹한 비밀이 드러나고 진실이 떠오른다. 무척이나 ‘온다 리쿠’적인 스토리였다. 내가 내용과 분위기에 감탄하고 있을 동안 여전히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나를 보며 동거묘 자이언트 랙돌 하릅은 나에게 말했다.

  “뭘 쓴다고 앉아 있더니 책만 읽고 있어. 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회사나 열심히 다녀.”     

  얼마 전에 나는 202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2022년 젊은 작가상 작품집을 다 읽고 하릅에게 평을 했다. 전반적으로 젊은 작가상 작품집은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비교해 재미가 떨어졌다. 김멜라의 ‘저녁놀’을 제외하고는 따분하다고 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젊은작가상 대상은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가 받았는데, 초파리 연구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엄마가 온몸의 털이 빠지는 불치병을 앓게 되고 딸이자 소설가인 작중 화자가 이것을 소설로 쓴다는 이야기이다. 내용은 정말 이게 전부다.

  2022년 이상문학상은 특히나 대상 수상작인 손보미의 ‘불장난’은 너무 좋았다. 나는 영민하고 예민한 소녀의 사적인 서스펜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염승숙의 ‘믿음의 도약’도 너무 좋았는데. 코로나, 부동산, 오픈 런 등의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는 사회적 주제들을 세련되고 재치 있게 엮었다. 가장 문제적이었던 것은 이 두 작품집에 들어가 있는 서이제의 소설들이었다. 이상문학상에는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가 실리고 젊은작가상에는 ‘두개골이 안과 밖’이 실려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서사를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처럼 포장되어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과잉된 자의식의 폭발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종의 문학적 사고 실험이었는데, 이런 사고 실험을 가장 충실히 하는 연령대가 바로 중학교 2학년이다. 그녀의 전작 ‘0%를 향하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게 되었는지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런 평을 되돌아보니 한 줄도 적지 못하는 내가 머쓱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내가 다녀왔던 캠핑 이야기라도 써야 되나.


  이것은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시작은 캠핑을 따라가는 작중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캠핑장은 폐교 된 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오토 캠핑장이다. 주인공은 캠핑 장비가 전혀 없지만 교실을 개조해서 만든 방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그곳을 따라간다. 친구들은 본인들의 차가 터져나갈 정도의 캠핑 장비를 가져오고 도착하자마자 각각 본인들의 자리에 텐트를 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동안 스카치위스키를 개봉해서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40ml를 넣고 토닉워터와 홍차 시럽을 넣어 하이볼을 만든다. 그리고 레몬을 썰어 잔에 꼽고 친구들이 펼쳐놓은 캠핑 의자에 앉아 홀짝 거리면서 가져온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다. 날씨는 서늘했지만 친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완성하기 시작한다. 냉기가 올라오지 말라고 바닥에 그라운드시트(방수포)를 깔고 바람을 막기 위해 커다란 타프를 치고 텐트 안쪽에 매트를 깔고 전기장판을 설치하고 의자와 테이블을 꺼내고 릴선을 꺼내서 전구의 전원을 연결한다. 주인공은 그 사이에 읽었던 테드 창의 단편 중 ‘영으로 나누면’에서 나왔던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에 대해 유튜브를 시청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고 친구들은 부랴부랴 화로를 꺼내고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는다. 모두들 지쳐 보였다.

  주인공은 그들에게 오늘 읽었던 테드 창의 단편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1이 2와 같다는 것을 증명한 수학자는 평생을 마주했던 절대적 법칙들이 무너져 내리는 상실감을 마주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남편은 그런 그녀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떠나려 한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만들어 준 하이볼을 들이켠 친구들은 불콰해진 얼굴로 그게 말이 되냐면서 주인공에게 따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는 공리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헛소리하지 말라면서 계산기를 들고 와 주인공에게 보여준다.

  “1+1=2, 봤지? 그러니까 미친 소리 그만하고.”

 주인공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대신 삼겹살을 입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가 친구들에게 캠핑에 대해 묻는다.

  “이렇게 귀찮은 걸 왜 돈을 쓰면서 하는 거야?”

  그러자, 친구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런 것이 캠핑의 묘미지.”

  “이게 바로 여행의 재미지.”

  아. 그래. 주인공은 수긍하는 척하며 이제 방에 자러 들어간다. 그런데 친구들이 모두 그 방으로 따라 들어온다. 아니 저렇게 좋은 텐트가 있는데 왜 방에 들어와? 주인공이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모른 척 돌아눕는다. 그중 누군가는 코를 골았고 주인공은 악몽을 꾼다.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헵타포드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헵타포드는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의 외계에서 온 지적 생명체다. 헵타포드는 허공에 정교한 그래픽 디자인 같은 그들의 언어를 새긴다. 그들의 문자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꺼번에 이어진 하나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 주인공은 그 문자를 해독만 하면 공포의 백지를 채울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며 뚫어져라 노려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손에 닿기 전에 하늘에서 연속적인 폭발음이 들리고 주인공은 꿈에서 튕겨 나온다. 그 폭발음은 주인공의 곤히 잠든 친구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잠을 설친 주인공은 일어나서 캠핑장 주위를 산책한다. 전날과 다르게 해가 쨍쨍하게 돋아나고 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니 친구들은 첫날보다 땀을 더욱더 뻘뻘 흘리며 텐트를 철수하고 있다. 주인공은 방으로 들어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카페라테를 꺼내서 빨대를 꽂고 입에 물고는 차에 시동을 켜고 앉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몸을 감싼다. 주인공은 중얼거린다.  

  “아, 역시 여행은 피곤해.”


아래의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202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022년 젊은작가상 작품집 (문학동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어마어마해 (모모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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