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이별생활 (6)
돈 얘기가 나온 김에 상도 얘기를 해볼까 한다.
상도는 대학 시절 동기들이 감튀라고 불렀던 친구다. 학교 앞에 유명한 버거집이 하나 있었다. 함박스테이크만큼 패티가 두꺼운 수제 버거에다 짭짤한 포테이토에 치즈를 듬뿍 뿌려주는 집이라 유독 인기가 좋았다. 맛있다곤 해도 가격이 비싼 편이라 나와 동기들은 학식에 물릴 때 특식으로 한 번씩 사먹곤 했다.
그곳에서 버거를 먹고 있자면 어디선가, 틀림없이 상도가 나타났다.
감자튀김만 집어먹고 튄다고 해서 감튀였던 상도. 상도는 그 버거집을 정말 좋아했는데 자기 돈으로 주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감튀는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어서 상도는 데면데면한 선배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도 곧잘 뛰어들곤 했다. 신입생일 때라 상도의 정체를 미처 깨닫지 못한 선배들이 주머니를 털어 버거를 사주었다.
처음에 우리는 상도가 고학생일 거라 짐작해 그녀의 끼어들기를 모른척했다. 상도는 직설적이고 목소리가 컸으며 눈치가 빨랐다. 누군가 좀 꺼려한다 싶으면 금세 쫓아가 큰 목소리로 “왜? 나랑 같이 가는 거 싫어? 너 나 싫어해?”라고 직접 물었다. 그런 거 아냐, 같이 가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게끔 말이다.
사실 막을 방법이 없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과방에서 치킨을 시켜먹거나 공강 시간에 노래방에 가거나 학교 앞 술집에서 골뱅이소면을 시켜먹곤 했다. 다들 고만고만한 사정이라 잔돈까지 탈탈 털어 n분의 1을 한 돈으로 말이다. 한참 놀고 있자면 회비 걷을 땐 분명 없었던 상도가 어느 틈에 우리 사이에, 그것도 테이블 정 중앙에 앉아 있곤 했다. 상도는 잘 먹고, 잘 부르고, 잘 마셨다. 누군가 너도 회비 내야지, 라고 말하면 그럼, 당연히 내야지, 흔쾌히 대답하고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당시 5명 정도 되는 동기들과 무리지어 다녔다. 모두 장거리 통학생이라 과모임 후 지하철역까지 전력질주를 하다 친해진 이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는 편이었다. 상도는 생일파티자리에 빠짐없이 나타났다. 밥값이나 케이크 살 돈을 보태진 않았지만 선물은 꼬박꼬박 준비해왔다. 상도가 쓰다 질린 게 분명한 귀걸이나 도금이 벗겨지기 시작한 팔찌 같은 것이 선물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느 날은 상도가 생일인 득도에게(득도는 건실한 카톨릭교도였다) 구찌 카드지갑을 선물했다. 우리는 크게 당황했는데, 모서리가 닳아 중고인 게 분명해보이긴 해도 상도가 그런 비싼 선물을 한 게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득도 너 상도랑 그렇게 친했어?”
“쟤가 상도를 워낙 잘 챙겼잖아. 버거도 반 잘라주고, 쉬는 시간에 데자와도 나눠 마시고, 우리가 흉봐도 상도 맨날 챙겨다니고.”
“짝퉁이겠지?”
“짝퉁이라도 마음이 고맙지. 나는 저번에 생일선물로 기숙사에서 나눠주는 구급약키트 받았단 말야.”
우리는 괜히 유쾌해져서 상도가 돌아간 뒤 오래 떠들고 오래 웃었다. 상도가 고학생이 아니란 사실은 진즉 알았고, 얄밉고 치사한 전적들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변하긴 변하는구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주말을 보낸 뒤 학교에 갔더니 득도가 울상을 하고 있었다.
이리 와 봐. 득도는 나를 끌고 화장실로 갔다. 어버버 하는 사이 득도는 화장실 칸에 나를 밀어 넣고 문에 붙어있는 손바닥만 한 쪽지를 읽게 했다.
잃어버린 구찌 카드지갑 찾습니다. 도서관 화장실 휴지걸이에 올려뒀다가 깜빡 놓고 나왔어요ㅠㅠ 선물받은 거라 꼭 찾고 싶습니다. 혹시 주우신 분 연락주세요!
쪽지 아래쪽에는 휴대폰 번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득도는 어물어물 말을 고르다 내게 물었다.
“이거, 내가 받은 그거 아닐까?”
“에이, 화장실에서 주운 걸 선물로 줬다고? 아무리 상도라 해도 그건 아니지.”
“근데 너무.”
그래, 너무, 우연치고는 너무, 딱, 아다리가 맞았다.
득도 성격에 내내 신경 쓸 게 틀림없었으므로 나는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확인해보면 되지. 아니면 깔끔하게 딱 끝나는 거잖아. 그치?
그러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사람은 카드지갑 뒷면 우측에 난 길쭉한 스크래치와 중간칸 올이 풀려 수선을 받은 뒤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실 색까지 정확히 읊어냈다. 득도는 그녀에게 카드지갑을 돌려주었다.
“애들한텐 말하지 말자.”
“무슨 소리야, 이건 상도한테 제대로 따지고 애들한테도 말해줘야지.”
“내가…… 내가 너무 쪽팔려서 그래.”
득도가 입술을 꽉 물었다.
득도가 선을 긋기 시작하자 상도가 우리 무리에 끼어드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대부분의 관계들이 흐지부지되었고, 휴학과 어학연수와 군대 등으로 주변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나는 상도와 겹치는 강의가 두 개 있었다. 강의실에서 보는 상도는 아주 의젓해서, 눈치 없이 끼어들고 우겨대던 그 상도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고작 서너 달 전 일인데도 감자튀김이니 노래방비니 하며 빽빽대던 우리가 한없이 어리게 느껴졌다. 가난하고 서운한 거 많던 신입생이었으니까. 여전히 가난한 학생인 주제에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순조롭게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루는 강의실을 나서려는데 상도가 나를 불러 세웠다. 강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알바 출근시간이 빠듯해져 마음이 급했다.
“온도 너 문자 봤어?”
“문자? 무슨 문자?”
“과대표 아버지 부고 왔어. 지금 다들 모여서 간다고 난리인데.”
확인해보니 진짜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장례식장이 천안이라 내가 따로 찾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지갑에서 급히 삼만원을 꺼내 상도에게 주었다.
“대신 조의금 좀 전해주라.”
상도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나는 곧장 아르바이트하는 가게로 달려갔다.
득도와 만난 건 다음 주가 훌쩍 지나서였다. 득도는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래저래 알려주었다. 상주로 선 과대가 무서울 만큼 어른스럽더라는 얘기와 과대의 아버지가 오랜 지병으로 앓다 돌아가셨다는 얘기 같은 거였다.
“그 날 간 사람들한테 만 원씩 걷어서 과 이름으로 조의금 냈어. 교수님들은 따로 봉투를 준비하셨더라고. 다들 장례식장이 처음이라 우왕좌왕 정신없었지 뭐야.”
“아, 그렇게 하는 거였구나. 내 건 상도가 냈지?”
“상도? 거기 상도가 왔었나?”
득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을 내가 걷었거든. 나 상도는 못 본 것 같은데.
“그럼 내 이름으로 봉투 따로 해서 냈나보지.”
말하면서도 내심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상도가 안 갔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시 부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도에게 물어봤자 당연히 냈다고 할 테고 그걸 과대에게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조의금인데, 조의금을 안 내진 않았겠지. 나는 애써 의심을 지웠다.
상도와 다시 문제가 생긴 건 득도의 결혼식 이후였다.
드문드문이지만 우리는 단톡방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누구의 초대였는지 몰라도 단톡방에 상도도 있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이라 나는 감자튀김이니 카드지갑이니 하는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곧바로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라 내 머릿속은 사실 먹지에 가까웠다. 누가 스쳐가기만 해도 하얗게 그어지는 스크래치 때문에 편두통이 일 지경이었다.
득도의 결혼식은 성당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나는 그 긴 미사를 견딜 정신력도 체력도 없었다. 결혼식장에서 마주치게 될 사람들도 싫었다.
너 요즘 뭐하니? 일은 어때?
사람들이 던지는 한없이 일상적인 질문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폭력으로 느껴지던 시기였다.
나는 득도의 결혼식날 아침까지 고민하다 상도에게 연락을 했다. 친한 이들은 당연히 나를 설득하려 들 텐데 그들에게 변명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상도에게 계좌번호를 물어본 뒤 축의금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상도는 늘 그랬듯,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온도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득도는 아르간오일과 요란하게 채색된 넓적한 쟁반(나중에 듣기로는 와인거치대라고 했다)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치장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가 싫었던 것뿐이지 득도는 보고 싶었던 나는 득도를 보자마자 꽉 끌어안았다. 득도는 항상 그랬듯 여유롭게 나를 받아 안았다.
“많이 힘든가 걱정했어.”
득도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성가를 부르며 울었다는 얘기와, 신랑이 해산물을 잘못 먹어 배탈이 났단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동할 때마다 사진이고 뭐고 화장실로 뛰어가기 바쁜 거야. 그 사람 신혼여행이 아니라 화장실여행을 다녀왔다니까 아주. 득도가 키득거리는 바람에 나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결혼식 못 가서 미안해.”
“얼굴 봤음 된 거지.”
“그래도 축의금은 보냈는데. 받았지?”
아. 득도가 미묘하게 말끝을 흐렸다.
“못 받았어?”
“아니, 받았어. 받았는데.”
망설이던 득도가 입매를 단단히 하고는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이런 걸 확인하면 실례인 건 아는데, 꺼림칙한 건 싫으니까 그냥 터놓고 말할게. 축의금은 받았어. 봉투에 너랑 상도 이름이 같이 쓰여 있더라. 근데 축의금으로 십일만원은 뭔가 좀 애매하잖아?”
“십일만 원? 그게 뭐야?”
나는 상도 계좌로 십만원을 보낸 참이었다. 그러니까 득도 말대로라면, 상도가 내 축의금에 일만원을 보태 봉투를 냈단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상도 인스타그램을 뒤덮고 있던 수많은 사진들을 떠올렸다. 이태원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노는 상도에게 그 날만 가난이 닥쳤을 리 없었다. 가난이란 일 년째 어디에서도 업무의뢰가 없는 상태로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끼니를 때워야 했던 나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미용실에 가지 못해 지저분하게 길기만 한 머리칼과 단정한 하객을 연출할 옷과 구두와 가방이 없어 애초에 출석이 불가능했던 나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득도와 헤어진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마어마하고 끔찍한 분노를 상도에게 퍼붓고 싶은데, 그럴 만큼의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상도는 그냥 그런 인간인데. 새벽에야 나는 이불 속에서 나와 차가운 물을 마시고 이를 닦았다. 어차피 그런 인간이라도 제대로 끝은 맺어야지.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상도에게 문자를 보냈다.
[축의금 봉투 얘기 들었어. 네게 돈을 돌려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됐어. 네 조의금을 미리 냈다고 생각할게. 언젠가 있을 내 장례식엔 부디 오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