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길 위에

열네 번째 조각

by 진언

2018년 11월의 어느 밤, J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은 새벽 1시 30분,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는 심호흡으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내 실패했다. 다시 눈을 뜨자, 무자비한 어둠이 사악한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편안하게 잘 생각은 하지 마.'




J는 2주 전, 병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2016년 불안장애를 진단받은 후 두 번째 병가였다. 처음 병가 소식에 놀라고 걱정했던 동료들도, 두 번째 병가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어쩔 수 없었다.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타인의 눈길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매서운 눈빛에 그녀는 압도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에서 온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복도에서 동료들과 마주칠 때면 그녀는 짧은 목례 후 바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럴 때면 귓가에 작은 목소리가 속삭이는 듯했다. '저런 멘털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겠다고.'




J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따뜻한 우유가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냉장고 문을 열자, 한기가 잠옷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몽롱한 정신이 되려 맑아졌다. 그녀는 컵에 차가운 우유를 붓고 실리콘 덮개를 씌운 후 전자레인지 중앙에 올려두었다. 30초 버튼을 누르자 새벽과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가 튕겨 나왔다. 그녀는 황급히 부모님의 방을 쳐다봤다. 다행히 인기척은 없었다. 모두가 잠든 어둠 속, 전자레인지만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주황빛을 발산하며 돌아가는 전자레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땡-' 우유 한 모금이 그녀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따뜻함이 온 혈관으로 퍼지는 듯했다. 그녀는 단잠을 기대하며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한 달 전, J는 2년간 받았던 정신역동치료를 끝냈다. 담당 전문의가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지역 병원으로 옮기면서 급하게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당시 그녀는 약물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며 중단한 상태였다. 건강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불안장애 환자의 꼬리표를 곧 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치료 종료는 그녀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하루빨리 온전한 자신과 마주하고 싶었던 그녀는, 치료 종료를 앞두고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을 결국 모른 체했다.


따뜻한 우유를 마셨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옆으로 눕고 바로 누워봐도, 잠은 찾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J의 뇌는 또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그날 그녀는 십여 명의 동료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말로 질문을 시작했다. "괜찮은 거지?"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그러면 하나같이 이 말을 되풀이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 그러겠다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는 말 뒤로, 또 다른 말이 그녀의 뇌리를 채웠다. '내가 정말 약한 걸까?' 하지만 그들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어떤 생각으로 버텨내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의 질문은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었다. 그러나 십여 명의 형식적 인사에 답하고 나면, 그녀 마음엔 십여 개의 상처가 그어졌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는 게 무엇인지, 그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두 달 전, J는 병가 연장을 고민했었다. 갑갑한 사무실 안 따가운 시선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 속에 놓인 자신을 상상하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녀는 심리치료 시간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여러 질문으로 그녀가 자신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렇다고 계속 숨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제야 선생님은 처음으로 질문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발을 떼어보는 건 어때요.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 맞닥뜨려야 한다는 걸 J님도 알고 있잖아요. 어쩌면 그 안에서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될 수도 있고요." 선생님의 마지막 한 문장이 그녀의 마음을 두드렸다. 결국 관계에서 비롯된 불안장애는, 관계 안에서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J의 강한 다짐과 달리, 복귀 후 하루하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동료들의 작은 목소리가 끊임없이 그녀의 고막을 울렸으며,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시선에도 그녀는 쉽게 굳었다. 식사 시간은 마주 앉은 동료의 시선을 피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번엔 옆 테이블에 앉은 다른 팀 동료들의 시선과 마주쳤다. 전쟁터의 보초병이라도 된 듯, 그녀는 9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채로 맞이한 밤은, 하루의 복기와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또다시 전투를 앞둔 군인의 상태로 그녀를 되돌려놓았다.




새벽 2시 50분, 결국 J는 시계를 확인했다. 그녀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3시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심호흡을 해봐도 소용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낸 지 10일째였다. 몸의 수분이 날아간 듯 기운이 없었다. 시선은 탁해지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했다. 간절히 잠들고 싶었던 그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는 두 가지 심장질환을 안고 있었다. 선천성 대동맥 판막 기형과 불규칙하게 뛰는 조기수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여전히 살아있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밤의 적막은 심장 소리를 더욱 증폭시켰다. '쿵-' 그리곤 한동안 들리지 않는 소리, 그러다 몇 초 후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뛰기 시작하는 심장. 그녀는 두려워졌다.


J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부모님 방 앞에 서서 두 분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래,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그리곤 다시 침대로 돌아와 포근한 이불속에 몸을 뉘었다. '쿵-' 또다시 들려오는 시한폭탄의 소리. 불규칙한 박동이 더 잦아졌다. 심장의 멈춘 시간이 길수록, 다시 뛸 때 전해지는 충격은 더 컸다. 큰 진동이 몸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점점 숨이 가빠왔다. 이제는 오히려 잠에 빠질까 두려웠다. 그새 심장이 멈춰버릴까 봐, 그래서 영영 자신과 이별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녀는 정자세로 누워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의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옆 방에 곤히 잠든 부모님도,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친구의 번호도 그녀의 손을 잡아줄 수 없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가쁜 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던 그때,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귀로 떨어졌다.


‘죽을 때도 이런 마음이겠지?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도, 지금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서 있겠지?‘


불현듯 10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2009년 5월의 어느 밤, 아흔을 넘긴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J는 다음날 찾아뵙기로 하고, 아버지만 급히 대전으로 떠났다. 그날 밤, 아버지는 할아버지 곁을 지켰다. 할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끓어오르는 가래를 여러 번 빼냈다.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안정을 되찾자, 아버지는 할아버지 옆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아버지는 무언가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몸은 온기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그간 J의 불안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이상할까?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를 정의하는 근원적 물음이었다. 작은 결정의 순간에도, 그녀의 시선은 타인에게 머물렀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타인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죽음은 오롯이 자신이 홀로 맞닥뜨려야 할 고독이었다. 죽음과 맞은편에 있는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마음 깊은 곳에서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난 무엇을 해 온 걸까?'


J는 상처로 뒤범벅이 된 날이면 잠들기 전, 다음날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끝나버려도 괜찮은 인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규칙한 심장 박동엔 소스라치게 놀랐다. 행여 삶이 멈춰버리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떨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결국 뿌리는 같았다. 삶에 대한 긍정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자책의 이면엔, 잘 살아내고 싶다는 강한 긍정이 숨어 있었다. 순간 몽롱한 정신 속에서 작은 의지가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 걸어야 할 길이라면, 결국 나를 의지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후 J의 창가에 새벽녘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겨울을 앞둔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 나의 친구가 되어보자.' 그녀는 그날, 휴가를 내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잠이 들었다. 그 후 불면에서 마주한 죽음의 공포는 서서히 잊혀갔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과정을 홀로 걷는 길로 받아들이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2018년 11월, 10일간 지속된 불면의 순간은 J에게 홀로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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