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잠 못 이루는 그대에게
누우면 3초 안에 잠드는 사람을 정말 본 적 있는가? 난 봤다. 그것도 매일 보고 있다. 나의 남편은 언제 어디서든 누우면 3초 안에 깊은 잠에 빠진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곯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매일 신생아처럼 잠을 자도 누우면 또 바로 딥슬립 램수면에 빠지곤 한다.
반대로 나는 잠을 잘 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매일 5km 이상 걷고, 골프도 100개씩 친다. 자기 전 독서와 암막커튼으로 철저히 빛도 차단한다.
그래야 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그의 코 고는 소리를 얄미워하지 않고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요일은 어떤 과도한 운동도 소용이 없다.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웃고 있어도, 밥을 먹고 있어도, 가슴 한편에 돌덩이처럼 늘 나를 짓눌렀다.
해가 질수록 작은 조약돌 같은 돌덩이는 커다란 바위가 되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침대에 누워보지만 눈이 감아지지 않았다. 빨리 자야지 간절해질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러다 새벽 4시의 시간이 다가오면 선택에 기로에 놓인다. 아얘 일어나서 (날밤 샌) 미라클 모닝을 할 것인가, 단 한두 시간이라도 잘 것인가. 하.. 브로콜리를 아무리 먹어도 점점 짙어지는 다크서클의 원인은 그 때문이리라.
혼자서 유럽, 미국, 멕시코, 아시아까지 수 개국을 여행했었다. 그때는 나도 누우면 5분 내로 잠들었었다. 물론 방에서 팔뚝만 한 도마뱀을 봤다거나, 지옥의 문 같은 철창상을 힘겹게 커다란 쇠사슬 열쇠로 따고 들어간 숙소는 예외다. 참고로 철창살 문열쇠는 영화 소품에서나 볼법한 비주얼이다. 성인 손바닥보다 커서 골프채 잡듯 열쇠를 두 손으로 잡고 철컥 돌려야 하는 그런 열쇠였다. 이런 곳에서의 하루는 누구라도 날밤 샜을 것이니 예외로 치자.
어쨌든 지난 나의 여행 경험으로 볼 때 나는 아무 데서나 잘 자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상은 달랐다.
뭐가 문제일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내 머릿속을 늘 바빴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게 괴로웠다. 잠꼬대로 프레젠테이션 한 적도 있고, 회의 보고한 경우도 허다하다. 잠꼬대한다고 구박하던 남편도 이럴 때만큼은 불쌍하다고 측은해했다.
왜 그럴까.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운동을 더 해볼까? 아얘 이틀에 한 번만 자는 생활을 해볼까?부터 시작해서 내가 오늘 했던 언행에 실수는 없었는지, 내일 할 일들은 또 무엇이 있는지 수 없이 되뇌었다.
이 생각들의 끝은 결국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더 잘 살기 위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잠이 안 와서 괴로워하지도 않고, 조급함도 없어졌다.
난 이 시간을 '누워서 하는 명상' 시간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기다려진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마음 깊이 나를 위로하고, 보듬으며 더 멋진 내일의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헤르만헤세 책에도 잠 못 이루는 밤에 대한 내용으로 마치고자 한다.
잠 못 자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되기를, '누워서 하는 명상'시간이 스스로를 마음껏 보듬고, 내일을 위해 치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잠 못 이루는 밤만이 의미가 있다.
그 시간만이 외적인 충격 없이도 우리의 영혼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충분히 놀라거나 솔직한 감정을 의식하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밤이 되어서야 우리 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비록 어떤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지만, 밖에서 보아도 우리 안에 변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속수무책이었던 것에 대해 내면의 목소리가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직하며 스스로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언가에 시선을 몰두하면서 외로움의 시간을 벗어난다.
누군가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주는 것을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불면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힘든 고비를 넘으면서 나름대로 삶의 가치를 찾게 된다.
나는 그들 모두가 가능하다면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기를 원한다. 또한 채신머리없이 자신의 건강을 자만하면서 천방지축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졸음도 느끼지 못한 채 내면의 삶이 짜증스럽게 겉으로 올라오는 그런 밤을 언젠가 한 번이라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