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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Apr 12. 2023

비상식품에서 건강식으로, 계속 진화하는 일본 통조림

통조림 전문점, 통조림 바, 빵 통조림에서 건강식재로 발전  

저가의 재해 비상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통조림이 건강식재로 거듭나고 있다. 주도하고 있는 것은 한방 어드바이저 쿠보 나오미(久保奈穂実) 씨다. 그녀는 통조림이 '몸을 치유하는 양생(養生)’에 아주 좋은 식재료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활동을 하게 된 그녀의 이력이 특이하다. 예능, 음악 활동을 하던 연예인이었던 그녀는 고된 생활로 한 때 건강 균형이 무너졌다. 그때 한방의 도움을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한방에 흥미를 가져 한의학을 공부했고 전문가가 되었다.

통조림은 건강 양생 식재


“한방에서 양생이란 식사와 생활습관을 가다듬어 몸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체질이나 컨디션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도 양생의 하나입니다. 양생 식재료는 구하는 것이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통조림으로도 양생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통조림을 골라서 사용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혈류가 좋지 않으면 고등어 통조림이, 몸이 차가우면 연어, 불안감이 있다면 정어리 통조림이 양생에 도움이 됩니다. 가리비는 약해진 위장에, 토마토는 건조한 피부에, 콩은 피곤할 때, 콘, 톳 통조림은 몸이 부었을 때 도움이 됩니다.”


그녀는 한국 음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薬食同源(약식동원)을 중요시한다.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으니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는 약이 되고, 통조림도 잘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뼈까지 먹을 수 있는 생선 통조림은 살코기만 발라 먹을 때보다 영양분이 훨씬 많습니다. 고등어 통조림은 살코기보다 칼슘이 무려 43배, DHA와 EPA가 1.3배나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통조림은 본래 원재료가 심플하기 때문에 요리 소재로 활용하기에도 좋습니다. 기본적인 생선 통조림에는 생선과 소금, 오일에 절인 것은 소재, 식용유, 소금 밖에 들어있지 않아요.”


통조림은 장점이 아주 많은 식품이다. 가공식품 중에서도 안정성, 영양가, 보존성, 경제성, 편리성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공기, 수분, 세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용기가 밀봉되어 있고, 내용물은 가압가열, 살균 처리하기 때문에 살균제, 보존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또 최대한 공기도 빼고 밀봉하여 진공에 가까운 상태로 살균하기 때문에 비타민이나 그 외 영양성분의 손실도 거의 없다. 제철에 수확해서 통조림을 만들기 때문에 영양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싸진다. 뚜껑을 열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조리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상온에서 장기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상용 식재료도 좋다. 주변의 마트,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통조림으로 만드는 식품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의 통조림 역사는 150년

일본의 통조림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1년에 나가사키(長崎)에서 마쓰다 마사노리(松田雅典)가 프랑스인의 지도로 정어리 통조림을 만든 것이 시초다. 이후 1877년 10월 10일 홋카이도 개척사가 이시카리(石狩)에 통조림 공장을 세우고 연어 통조림 양산을 시작했다. 그래서 10월 10일은 '통조림의 날'이 되었다. 통조림 판매는 1980년대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1990년대에 들어와 점차 규모가 축소되었고, 지금은 최고 때의 절반 수준으로 시장규모가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신선식품 선호, 냉동, 냉장식품 제조기술의 발달, 냉장고 등 식품 보존이 뛰어난 가전제품의 진보, 나아가 CVS와 푸드 서비스의 보급에 따른 사회환경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2009년 출판사 세계문화사(世界文化社)가 통조림 안주 레시피에 대한 책을 발행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책 이름은《맛있고 간단! 통조림으로 만드는 술안주 간츠마(缶つま)》였다. 이 책은 세계문화사가 기획하고, 통조림 메이저 메이커인 고쿠부(国分), 마루하(マルハ), 하고로모 푸드(はごろも フーズ)의 상품정보 제공과 협력으로 완성된다. 이를 지켜본 고쿠부의 담당자는 자사 통조림 안주 레시피 책을 만들어 술 매장에 두면 통조림이 잘 팔리지 않을까 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곧바로 고쿠부 통조림을 이용한 레시피를 담은 배포용 책을 5만 부 제작했다.


주) 간츠마(缶つま) : 통조림을 뜻하는 간즈메(缶詰)의 ‘간‘과 안주를 뜻하는 오츠마미(おつまみ)의 ‘츠마’를 합한 말. 즉, ‘통조림 안주’라는 뜻.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던 담당자들은 타깃을 술 마시는 사람으로 좁히며 ‘칸츠마’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주점을 중심으로 프로모션을 시작한다. 통조림 평균 가격이 약 500엔, 비싼 것은 1,000엔 정도여서 처음에는 “이렇게 비싼 것을 누가 사 먹느냐?”는 비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리시마(霧島) 흑돼지, 히로시마(広島) 굴 등 지역 특산물을 상품화하면서 이들 제품을 취급하는 식당들이 점차 늘어나 통조림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게 된다. ‘고쿠부 칸츠마’, ’ 칸츠마 Smoke’, ‘디저트’ 등 11개 시리즈 140여 종류로 상품이 늘어난 고쿠부의 통조림 안주는 연간 약 6백만 개가 팔리고 있다.


통조림 바의 탄생


통조림 술안주가 출시되며 생겨난 업태가 ‘통조림 바’다. 통조림 바에서는 400여 종류 세계 각지의 통조림과 술을 즐길 수 있다. 통조림을 따서 바로 안주로 내주거나 간단한 샐러드를 곁들이면 끝이다. 직장인들이 퇴근 때 들러 저 비용으로 간단하게 한 잔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게 인기를 끌었다.  통조림 바는 2002년 건물 청소 대행업체가 투자 리스크가 적은 창고의 유휴공간 활용방법을 생각하다가 만든 업태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약 50여 곳으로 확대되었다가 지금은 축소된 상태지만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객이 입장에서는 통조림 안주로 저비용으로 간단히 술을 즐길 수 있다. 업주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들고, 저비용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창업하기도 쉽다. 통조림은 장기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식재료 손실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특별한 조리도 필요 없으니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다. 식당 경영 경험이 없어도 개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이나 탈 샐러리맨, 시니어층이 비교적 쉽게 창업이 가능하다. 젊은 여성 3명이 공동 경영자로 운영하고 있는 점포도 있다.


전문점에서 지역 특화 상품 판매

지역 특산물의 통조림 개발도 활발하다.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통조림화 하는 업체를 지원하기도 한다. 고교생들의 통조림 개발 콘테스트인 ‘LOCAL FISH CAN 그랑프리’가 매년 개최되고 출품작이 상품화되기도 한다. 수산물, 축산물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계란말이 통조림, 고등어 카레, 오코노미야키, 야키토리(닭꼬치) , 태국 카레, 타코야키 통조림 등이 판매 상위에 랭크된 것만 봐도 통조림 종류의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영향으로 성업 중인 곳이 통조림 전문점이다. 백화점, 마트의 식품코너에서도 150여 종의 통조림을 취급하지만, 전문 로드 샵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도쿄 심바시(新橋)의 통조림 전문점 칸다후루는 일본 각지의 통조림 4백 여종을 판매한다. 판매제품이 평균 가격이 5백 엔으로 싸지도 않고, 1만 엔대의 고가상품도 있다. 그러나 술안주를 찾거나 지역의 특산물을 맛보고 싶은 고객들로 가게는 늘 붐빈다.


재난 구호품 '빵 통조림'


또 하나 특이한 통조림은 ‘빵 통조림’이다. 굳이 왜 빵을 통조림으로 만들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처음에는 보존기간이 3년이 채 안되었지만 지금은 5년까지 늘렸다. 1995년 고베한신대지진 때 개발된 후 재해 재난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2001년에는 NASA의 정식 허가를 받으며 우주비행사의 식사로 우주선에 탑재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빵 통조림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의 2대째 사장을 맡고 있는 아키모토 요시히코(秋元義彦) 씨는 많은 사회공헌도 하고 있다. 큰 재해가 있으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도록 이재민에게 무상으로 통조림을 제공하기도 한다. 2011년 태국 홍수, 2013년 필리핀 폭우, 2014년 히로시마 폭우, 2015년 네팔 대지진, 바누아투 사이클론 재해, 2016년 대지진, 아이티 허리케인 피해 등에 무상으로 빵 통조림을 지원했다.


아키모토 사장은 새로운 사회공헌 구조조 만들어 냈다. 규칸쵸(救缶鳥) 프로젝트. 보존 기간 1년 전에 반납하면 신규 구입 가격을 할인해 주고, 반납받은 빵 통조림은 재해지역이나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일본의 약 3백여 기관에서 30만 개 정도의 빵 통조림을 비축 중인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깡통에는 메시지를 적는 란이 있어 이재민에게 격려의 말과 빵을 전달할 수 있다. 라벨에 기업명을 인쇄하면 사회공헌 활동을 어필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기업과 지자체, 학교 등이 규칸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지원한 나라도 20개국에 이른다.


고등어, 참치 통조림으로 대변되던 일본 통조림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엔저, 세계적인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일본이 통조림 가격도 10~25% 오를 예정이라 부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집밥, 혼밥이 늘어나면서 시장규모는 더 커 질 전망이다. 한국 식품의 일본 진출이 늘고 있는데, 통조림 시장도 공략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매운 고추참치 통조림은 의외로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 밑반찬 개념이 없는 일본이지만, 조직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개척한다면 메추리알과 소고기 장조림, 볶음 김치, 콩자반, 깻잎 등은 일본인들 입맛에도 잘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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