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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May 06. 2023

일본 공공도서관은 츠타야서점으로 변신 중

이용자는 고객님, 소풍 온 것처럼 가족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공공도서관

“고객님, 여기서 음식물 드시면 안 됩니다.”


도와도서관東和図書館 로비에서 더위에 지쳐 볼까지 빨개진 히마리에게 시원한 푸딩을 먹이고 있는데 직원이 바로 달려왔다.


“네. 도서관에서 식음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오는 길이 너무 더워서 아이가 더위를 먹을까 싶어 그러니 양해해 주십시오. 밖은 36℃로 너무 덥고, 도서관 안팎에 마땅히 음식을 먹일만한 곳이 없네요.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잘 보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중하게 대꾸하자 남자 직원은 히마리의 빨간 볼을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돌아선다. 정해진 규칙은 당연히 지켜야 하겠지만, 이 더운 날씨에 4살 아이에게 푸딩 하나 먹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히 잘못하는 일인가 싶어 부아가 돋는다. 3개 층의 도서관, 뿐만 아니라 강의실, 체육관에 강당까지 갖추고 있는, 작지 않은 복지 시설에 음식 먹을 공간을 전혀 확보하지 않은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시설, 도서관인데 관리, 행정 편의주의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작년 여름의 일이었다.


서점은 좋은 기획을 하는 곳


이랬던 일본의 공공도서관이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츠타야서점蔦屋書店의 콘셉트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로 뜸해졌지만 지인들이 도쿄에 여행 오면 늘 소개해 주는 곳 중의 하나가 다이칸야마代官山에 있는 <다이칸야마 T-SITE 츠타야서점 蔦屋書店>이다. 츠타야 서점이 지향하는 것은 ‘크리에이티브 creative’, 츠타야서점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끼増田宗昭 씨가 추구하는 서점은 ‘좋은 기획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는 무릇 서점이란 주변에 나무가 있고, 해가 잘 들고, 맛 난 커피가 있으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하트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스다 사장은 그런 곳에 책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일본의 도서관들도 그런 츠타야서점처럼 십진분류법을 버리고 테마별로 책을 배치하기도 하는 등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참조 : 天仁의 글 https://brunch.co.kr/@thesklee/28


작년 말 天仁 사무실 부근에서 신축 이전한 교바시도서관京橋図書館도 기존의 도서관 개념을 바꾸어 가고 있다. 이름부터 교바시도서관에서 ‘책의 숲 추오本の森ちゅうおう’로 바꾸었다. 이름에 걸맞게 유리창을 많이 만들어 건물 안도 밝게 만들고,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했다. 도서관이 위치한 추오구中央区는 4년 연속 살기 좋은 지자체 1위로 선정된 곳이다. 도쿄에서도 가장 중심 지역이고, 사무실이 많은 오피스가街 중의 한 곳이다. 지방의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때 기준이 되는 니혼바시日本橋도 추오구에 속해 있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도쿄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친밀하게 이용할 수 있고, 역사·문화를 미래에 전하는 지역의 평생 학습 거점’으로 도서관의 콘셉트를 정했다.


天仁에게는 늘 딱딱한 이미지였던 일본의 도서관 입구에 카페도 입점했고, 뚜껑이 있는 음료라면 도서관에 들고 들어가도 된다. 10여 개 소파와 탁자를 둔 로비와 5층 교류활동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획기적인 변화다. 키즈, 틴즈코너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코너도 만들어 평일에는 주변의 직장인들도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면 낭독실, 향토자료관, 향토자료 상설전시관, 상업자료실 등에 넓은 공간을 배치한 것은 부럽다. 도서관 대출카드뿐만 아니라 PASMO 등 교통용 IC카드, 휴대전화로도 도서대출이 가능하도록 되었다. 디지털기기 충전에 인색하던 도서관이 열람석에 전기 충전 콘센트도 설치했다. 디지털로 신문을 볼 수 있는 시스템, 대출 및 반납 시 RFID 스캔시스템이 강화된 것을 보면 늦었지만 디지털화도 많이 진행되었음을 느낀다. 1911년에 오픈 후 112년 만에,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구청 건물 지하에서 지낸 지 93년 만에 가져온 엄청난 변화다.


도서관의 트렌드는 집객과 소통


비전문가인 天仁이 최근 일본의 공공도서관에서 느끼는 트렌드는 ‘집객集客과 소통’이다.

먼저 시민들이 쉽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람을 모으려는 집객集客의 노력이 눈에 띈다. 기후현岐阜県 ‘모두의 숲 미디어 코스모스 みんなの森 ぎふ メディアコスモス’ 도서관은 이름에 '숲'이 들어있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의 나무를 디자인 콘셉트로 했다. 천장에서는 빛이 새어 나와 환상적인 분위기도 맛볼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모인다. 에비나海老名 시립도서관은 편의점과 제휴해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편의점에서 24시간 빌린 책을 반납할 수 있는 고객을 배려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한노飯能시립도서관은 서고의 책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웹과 연결되어 다양한 정보를 조사할 수 있는 ‘가리루 터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책과의 만남을 즐기자 思いもよらない本との出会いをたのしもう’. 작년 7월에 문을 열면서 거대한 원형 열람실로 유명해진 이시카와현립石川県立도서관의 카피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십진법으로 책을 분류하고 배치하지만 이 도서관은 다르다. 총 소장도서 30만 권 중 7만 권은 테마별로 원형열람실에 배치했다. ‘일을 생각한다’. ‘삶을 넓힌다’, ‘문학에 접하다’ 등 12가지 테마는 그 테마에 해당하는 십진분류가 다른 책들을 모아 두어 흥미를 유발하게 했다. 관련테마에는 문학, 역사, 과학 등 관련 도서를 모두 모아둔다. 우주에 관련된 테마에는 ‘은하철도 999’도 배치했다. 이런 대형서점 같은 책의 배치로 개관 7개월 만에 내장객이 70만 명을 넘었다.


도서관이 책만 읽는 곳에서 탈피하여 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고, 강연회와 교류회도 즐길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다케오시武雄市도서관은 카페 같은 세련된 분위기의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스타벅스 커피도 입점해 있고, 푸드 코트도 있다. 도서관이 커피를 마시면서 공부나 독서를 하는 곳, 가족이 모여 식음도 즐기는 장소로 변신한 것이다. 매월 세미나나 강연회 이벤트도 연다. 병설 어린이 도서관에는 책뿐만 아니라 비밀방과 잔디공간, 놀이터 등이 설치돼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장시간 어른이나 아이들이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한다.


2009년 문을 열었던 선유정보도서관이 매우 신선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도서관의 역사는 일본보다 50년 뒤지지만 우리나라 도서관의 기획력이 일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되었다.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유료, 폐가열람제의 서적관書籍館으로 문을 열었던 일본의 공공 도서관이 151년 역사를 거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은 '이용객'이 아니라 언제나 ‘오캬쿠사마, 고객님'이다.

혼노모리츄오 도서관. 1층 입구에 카페도 입점하고, 로비 등 여러곳에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로비의 식탁에서 도시락을 먹기 위해 주변의 직장인들도 많이 찾는다.
전기충전에 인색하던 일본의 도서관. 드디어 전체 열람석에 충전 콘센트를 설치했다.
도서관 내외부에서 자연친화적임이 느껴지고, 내부가 밝아서 좋다.
히마리의 그림책을 빌려보던 2층 어린이 서가.
이시카와현립도서관石川県立図書館의 대열람실. 계단식으로 늘어선 책장과 열람석으로 구성된 북콜로세움. (인터넷 사진)
구 교바시도서관京橋図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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