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치료, 맨발 걷기로 후유증 줄이고 재발 예방하기
부산 본가에 왔다. 한 달 계획으로 바닷가에서 어싱(Earthing, 맨발 걷기)을 하고, 한방치료와 괄사(刮痧)를 받고 있다. 아직도 天仁을 괴롭히고 있는 외계인손 증후군, 왼쪽 다리의 힘 빠짐, 걸을 때 좌우 밸런스가 맞지 않아 휘청거리는 등의 후유증을 없애고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일본 병원의 MRI, MRA, 심장 CT 검사 자료를 가지고 와서, 동래봉생병원 이태윤 원장님께 진료부터 받았다. 일본의 뇌신경내과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고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단과 치료법에 대해 한국 병원 선생님의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어보고 싶었다. “MRI와 지금 걷는 모습이 매칭되지 않는군요. MRI 영상으로 판단하면 증상이 훨씬 더 심각해야 하는데, 회복이 매우 빠릅니다. 일본 재활훈련 선생님의 계획서를 보니 아주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켜주시는군요. 한 달 정도만 한국에 계실 계획이라면 한국에서는 별도의 재활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침치료와 맨발 걷기는 마비된 팔다리와 뇌를 자극한다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곧 발병 1년이 되는데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아울러, 뇌졸중 환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정상인으로서 일상생활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한국에서 한 달 동안 한방치료를 받아 보기로 어렵게 결심은 했지만, 침치료를 받을 병원을 찾기도 막막했다. 일본 출발 전에 여러 지인들에게 한의원을 수소문하기도 했는데, 친구 인제 군이 해운대의 한의사를 한 분 소개해 준다. 또, 캐나다에 2개월간 머물다가 돌아온 한의사 친구 민수 군의 도움을 받았다. "침치료를 받아 보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야. 한방치료가 후유증 회복과 재발예방에 많이 도움이 될 거다. 부산에서 치료를 받는다면, 백동진 원장님을 추천한다. 중풍환자 임상 경험이 많고, 침 치료를 아주 잘하시는 분이다. 백원장님은 신천침법연구회라는 전통침 연구회를 만들어 후배들을 양성하시기도 하고, 모교인 경희대 한의대에서 17년간 강의를 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얘기를 듣고 보니 지난 2월, 고향 친구의 어머니가 중풍이셨는데 백원장님께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지셨다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의사와 환자도 인연이 맞아야 한다. 우선 만나보고 계속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거야." 또, “뇌졸중은 겨울철뿐만 아니라 여름철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요즘처럼 더울 때는 특히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면서 전화로 몸의 상태를 상세하게 물어보고 재발방지를 위해 상담과 진심 어린 조언도 아까지 않는다. 정말 고맙다.
뇌졸중은 실내외의 온도차가 심한 겨울에 생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갑자기 추운 바깥으로 나가면 급격한 온도차로 혈관이 수축하여 혈압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도 그 위험성은 겨울과 마찬가지다. 38도의 더운 바깥에 있다가 에어컨을 켜서 차가워진 실내로 들어가면 10도 이상 급격한 온도차로 혈관과 혈압에 큰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저녁에 잠을 잘 때도 실내가 너무 더워 땀을 많이 흘리면 탈수 증상이 생겨 혈류가 나빠지며, 혈전이 생기고 동맥이 딱딱해져서 뇌졸중을 일으키기 쉽다고 한다. 자기 전에 물을 한 잔 마시거나, 침실의 온도를 잘 조정하라고 조언해 준다.
한국에서의 일과는 꽤 바쁘다. 아침에 해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광안리나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 어싱을 한다. 광안리 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싱을 할 수 있는 바닷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다. 해수욕장에서는 매일 수 백 명 맨발로 걷는 분들을 만난다. 맨발로 부산의 일곱 군데 해수욕장을 차례로 걷는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 등 어싱을 독려하는 행사도 열려 어싱하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바닷가에서는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걷는 분들도 만난다. 더 열심히 재활에 임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며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건조한 땅보다 젖은 땅을 밟을 때 맨발 걷기의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특히 물기와 염분을 내포하고 있는 바다모래는 음이온 흡수가 빨라 체내 활성 산소 배출에 효과적일 것이다. 양손에 동 파이프를 들고 바닥에 끌고 다니는 분도 보이는데 접지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광안리에는 파도에 발을 담그고 의자에 앉아 어싱을 즐기는 분들도 많다. 해운대에 살고 있는 친구 인제 군과 함께 걸을 때는 해운대 해수욕장에, 혼자 걸을 때는 광안리에 간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 것도 재미나지만, 행선(行禅)을 하며 혼자 걸어도 참 좋다. 모래사장을 걸으면 발바닥에 밟히는 부드러운 모래알의 촉감이 좋고, 밀려오는 파도가 발에 닿는 감촉도 감미로워서 좋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일정하게 반복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일본에 돌아가면 광안리와 해운대 해변이 제일 그리울 것 같다.
한방치료는 민수 군이 추천한 백동진한의원에서 받고 있다. ‘일침 이구 삼약(一鍼 二灸 三藥), 침, 뜸, 약’ 한방의 3대 치료를 모두 받는다. 침과 뜸과 약물은 각각의 적응증은 다르지만 서로 돕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질병과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함께 활용된다고 한다.
매일 침을 맞고, 뜸을 뜬다. 백회, 곡빈, 견정, 풍시, 현종, 삼리, 곡지 등 중풍의 7대 요혈이라 부르는 혈 자리에 침을 놓아주신다. 백원장님은 혈자리의 이름을 중얼거리시며 침을 꽂는데, 빠른 손놀림과 자연스러움이 신(神)의 경지에 도달하신 분 같다. 백 원장님께는 특별한 치료도 받는다. 매일 '내관동기'라는 치료를 받는다. 마비가 남아있는 왼쪽 팔목의 내관 혈자리에 침을 꽂고 힘껏 손을 쥐었다 폈기를 반복하다 침을 빼면 침이 90도로 휘어져 나온다. 악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지만, 치료를 받고 나니 악력이 세어졌다. 뒷목의 아문혈(啞門穴)에도 침을 꽂고 넣었다 뺐다 하신다. 매우 아프지만, 신기하게도 우측으로 조금 굽어 있던 혀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하기도 수월해졌다. 침치료로 굳었던 혀가 부드러워진 것일까? 백원장님께 침치료를 받으면서 새삼 한방, 침치료의 대단함을 느낀다.
한약은 두 종류를 먹는다. 한방에서는 뇌경색이 몸에 기가 부족해서 허할 때 온다고 해석해서 기운을 북돋아주는 치료를 한다고 한다. 기의 밸런스를 맞추며 뇌 혈류를 좋게 해 뇌경색을 치료해 준다는 탕약과, 원기회복, 면역력 증진에 최고라는 공진단도 처방받았다. 백원장님은 특히 몸의 기가 허해 기력이 바닥이니 잘 먹어야 하고, 일을 쉬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오후에는 서 원장님께 괄사 마사지를 받는다. 괄사는 단단한 도구로 피부를 쓸어가며 압력을 주면서 혈액과 림프 순환을 원활히 하는 마사지법을 말한다. 그러나, 서원장님의 괄사 마사지는 그 차원, 깊이가 다르다. 뇌의 혈류를 좋게 하기 위해 손과 발의 혈자리, 두피를 마사지해 주신다. 원장님의 지도를 받아 귀와 손가락의 혈자리에 ‘T이(耳) 침’도 직접 붙인다. 모양이 T자같이 생겼고, 귀의 혈자리에 주로 시침한다고 T이침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T이침‘을 '오키바리(置き針)'라고 한다. 시침 후 일정시간 그대로 둔다는 뜻이다. T이침은 일본의 침술원에서 시침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 낯설지 않다. 괄사 마사지는 마비된 감각 회복, 뇌의 혈행 개선뿐만 아니라 한방치료에도 상승효과(相乘效果)를 주는 것 같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방치료와 함께 괄사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어느 구름에서 비 올지 모르는 일이다. 어싱, 한방, 괄사 등 여러 가지 치료를 함께 받으며 2주가 지나니 걸음걸이가 좋아지고, 말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왼발의 감각도 치료 전보다 많이 돌아온 것 같다.
엊그제는 앞으로 더 주의해야 할 일도 경험했다. 태어났던 곳 수정동에서 고향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어울리며 살았던 동네와 모교도 돌아보았는데 걸음걸이가 다시 나빠진 것이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어울렸던 것이 무리였던 모양이다. 백 원장님, 서원장님 두 분 모두 조금 좋아졌다고 방심하고, 무리하면 안 된다고들 하신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발병 1년이 되던 날, 귀한 교훈을 얻었다. 뇌경색 환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상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과유불급, 아직 “절대 무리를 해서도 안 되겠다."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으니 잘 먹고, 충분히 쉬어주고, 잠을 많이 자야 한다는 두 분 원장님의 말씀도 깊이 새기고 있다.
・특이사항 : 식사 중에 혀의 중간 부분을 깨무는데, 항소혈소판제를 먹고 있어서 빨리 지혈이 되지 않아 당황했던 적이 몇 번 있다. 한방 침치료 후 발음이 더 정확해지며, 말하기가 수월해졌고, 혀를 깨무는 일이 없어졌다. 한방 침치료가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