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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Jan 09. 2024

지팡이 버리기 연습

지팡이 없이 행선(行禅), 걷기 명상하듯이 천천히 걸어보기


"골반이 틀어져 있네요. 그래서 발을 모으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1~2cm 길어지는 것입니다. “


호시노(星野) 방문재활치료사가 처음 天仁의 몸을 점검해 보고 내린 진단 결과다. 그러고 보니 천정을 보고 바로 누워 양무릎을 붙이고 세우면 양다리의 길이가 다른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재미난 것은 호시노선생이 골반과 척추를 잠깐동안 안마, 지압하는 정체(整體)를 하고 나니 양다리의 길이가 같아졌다. 왼쪽 골반 부근의 코어근육이 약하고, 심부(深部)의 밸런스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강 훈련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겠다는 진단도 내린다. 또, 골반의 틀어짐 때문에 왼쪽 어깨가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도 지적한다. 옷을 입을 때 왼팔을 소매에 끼우기 어려웠던 것도 편마비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어깨가 앞으로 나와 있고 딱딱하게 뭉쳐있는 것이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개호보험(介護保険)을 이용하여 재활치료사가 天仁 집으로 오셔서 재활 훈련을 시켜주시는 방문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방문재활치료는 매주 화, 금요일 주 2회 받을 예정이다.


사실 양쪽 다리의 길이에 차이가 느껴지는 문제들은 재활 병원 입원 중에도 재활치료사 선생들께 여러 차례 의논드렸던 바가 있다. “걸을 때 왼쪽 발바닥이 오른쪽 보다 먼저 지면에 닿는 느낌이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1cm 정도 더 길게 느껴진다."라고 수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명쾌한 해결책을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天仁도 '편마비 환자들이 겪는 일반적 현상, 편마비가 있었던 왼쪽 발바닥이 아직 감각을 완전히 느끼지 못하는 후유증이 남아있어 때문일 것‘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시노 선생이 문제점을 잘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天仁 생각에는 이 문제들의 원인이 ‘빠른 걸음’에 있는 것 같다. 재활병원 입원 중에 휠체어에서 상체를 의지하며 걷는 보행기로 옮겼다가 보행기도 졸업하고, 노르딕 지팡이(등산용 트레킹 스틱)로 걷기 시작하자 걷는 속도가 오히려 뇌경색 발병 전보다 더 빨라졌다. 걸음이 빨라진 이유는 편마비 장애가 남아 있는 왼쪽 다리에 있었다. 걸을 때 한 다리로만 지탱해야 할 때 왼쪽 다리는 감각장애로 오래 버티지 못하니 넘어지려 하고, 넘어지기 않도록 오른쪽 다리가 반사적으로 빨리 앞으로 나오니 점점 걸음이 빨라지게 된다.


호시노 선생은 대안도 함께 제시해 준다. 먼저 천정을 보고 바로 누운 자세에서 허리를 지면에 붙이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주는 힙업 운동을 하루에 20세트 이상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두 번째는 왼쪽 어깨 돌리기와 양쪽 어깨를 등 쪽으로 밀어 견갑골을 모아주는 운동이다. 또, 양팔꿈치를 몸에 붙인 상태에서 고무밴드를 손에 쥐고 양팔을 벌리기, 걷기 전에 종아리 스트레칭, 침대의 안전봉을 잡고 스쾃 하기도 숙제 중의 하나다. 걸을 때 왼쪽 다리가 바닥에 닿는 시간이 너무 짧다 보니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 것도 지적해 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누운 상태에서 선생은 天仁의 무릎이 굽어지도록 누르고, 天仁은 반대로 무릎을 펴려고 힘을 주는 훈련도 했다. 덕분에 걸을 때 발바닥이 어떻게 착지해야 하고, 발과 다리가 어떻게 지면을 차고 나가야 하고, 무릎은 어떻게 펴 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예정된 40분을 훌쩍 넘겨가며 함께 운동하고, 방법과 원리도 상세히 설명해 주시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지팡이다. 왼쪽 골반부근의 코어 근육이 약해, 밸러스가 무너지면서 넘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편마비가 없는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팡이에 너무 의지하다 보니 오른쪽 다리에 체중이 집중되며 골반의 밸런스가 무너진 모양이다. 그래도 지팡이가 있었기에 3개월 정도 걷기 훈련에 이 정도로 잘 걷게 되었으니 지팡이도 너무 고마운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몸이 틀어진 자세로 굳기 전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으니 이 또한 너무 감사한 일이다.


결국, 해결 방법은 호시노 선생이 알려주신 운동으로 체간 근육을 키움과 동시에 지팡이 없이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공원에서 연습 삼아 지팡이는 왼손으로 들고 있기만 하고,  걷기 명상을 하듯이 천천히 걸어보았다. 보폭과 발꿈치가 땅에 닿는 느낌, 체중이 발꿈치로 옮겨가면서 몸이 앞으로 나아가 발바닥의 전체가 땅에 닿는 느낌에 주목하며 아주 천천히 걸어본다. 아직 왼쪽 발바닥의 감각에 위화감이 크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 같이 힘들지만 더 연습하고, 다리에 근육이 더 붙으면 지팡이 없이도 평화누리길을 빨리 잘 걸었듯이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실력이 있으면서 열정적인 재활치료사 선생을 만났다. 나는 참 운이 좋다. 이 또한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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