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반.
백승아는 가게 문을 열기 전, 언제나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더 슬로우’에 들어섰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을 밀고 들어와 도윤과 눈을 마주쳤다.
“오늘은… 샷 좀 진하게 부탁해요.”
피곤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어조는 밝았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매운 양념 치킨이 요즘도 잘 나가나요?”
승아는 웃었다.
“잘 나가긴요. 요즘은 매운맛이 아니라, 살맛이 안 나요.”
잠시 뒤. 커피를 받아 든 백승아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컵을 입에 댔지만, 마시지 않았다.
“어제 진짜 간신히 마감했어요.”
도윤은 계산대 옆 커피잔을 닦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들었다.
“요즘 다들 어렵다 하시더라고요. 나도 마찬가지고…”
승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순이익이 반 토막이에요. 이대로면 다음 달엔 적자예요. 요즘엔 진짜, 가게를 접을지 대출을 더 받을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계속 머릿속을 돌고 있어요.”
도윤은 조용히 컵을 한 손에 잡았다.
“무겁네요.”
“무겁죠.”
승아가 피식 웃었다.
“이 건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중 나 혼자만 힘든 건 아니란 거 알아요. 근데, 아무도 괜찮다고 말 안 해주니까 가끔은… 커피 한 잔 앞에서 말하게 되네요.”
둘은 잠시 침묵 속에 커피를 마셨다. 익숙한 침묵이었다. 마치, 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한 거리감을 가진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승아가 일어섰다. 커피잔을 테이블에 남긴 채 그녀가 말했다.
“도윤 씨.”
“네.”
“커피 잘 마셨어요. 오늘은 덜 쓴 거 같네.”
“원두 조금 바꿔봤어요. 내일도 필요하시면, 말씀만 주세요.”
승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필요하겠죠. 내일도 장사해야 하니까.”
도윤은 그녀가 나간 자리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작은 노트에 짧게 한 줄을 적었다.
‘사람은, 견디는 걸 선택한 순간부터 누가 알아봐 주길 기다린다.’
다음 날, 백승아의 치킨집은 예정보다 30분 일찍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