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아는 요즘 가게 셔터를 올리는데도 팔에 힘이 덜 들어갔다. 아침 햇살은 전보다 따갑지 않았고, 닭 냄새도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바뀐 것은 없었다.
백승아는 가게 문을 연 후, 잠시 의자에 주저앉아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주방에선 아직 기름이 데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 그녀는 수첩을 꺼내 지난주 매출과 재료비, 배달 수수료 등을 다시 계산해 봤다. 남는 건 거의 없었다. 남지 않은 걸 다시 나눠서 월세와 생활비를 떼어내야 했고, 그럼 남는 건… 거의 ‘없음’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도 문을 열고, 재료를 준비하고, 치킨무를 정리했다.
‘이게 끝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 하루는 그래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배달 주문은 딱 한 건 들어왔고, 홀 손님은 없었다. 빈 테이블 위엔 햇살이 반쯤 걸쳐 있었고, 에어컨 바람 소리만 조용히 돌고 있었다. 그때 문이 살짝 열렸다. 도윤이었다.
“점심 드셨어요?”
승아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어? 웬일이세요?”
“그냥… 들렀어요. 점심시간 끝나갈 때 쯤이면 좀 한가할 것 같아서.”
도윤은 치킨집 안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앉아도 될까요?”
승아는 웃으며 손짓했다.
“당연하죠. 오랜만에 손님 생겼네.”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가끔은, 누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 말에 승아는 커다란 한숨과 함께 허리를 펴고 웃음을 지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글쎄요. 지내고는 있는데… ‘잘’은 모르겠네요.”
그녀는 자판기 커피처럼 한 모금에 말들을 쏟아냈다.
“진짜 도윤 씨도 알겠지만 장사라는 게요… 버티는 게 전부예요. 수익이고 뭐고,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게 목표예요. 근데, 그 하루가 점점 더 길어져요. 아침에 가게 문 열고 밤에 닫을 때까지 너무 멀어요.”
도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이제는 그냥, 전단지를 돌리면 나아질까, 사은품을 만들어서 주면 바뀔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요. 근데, 그게 다 의미 없게 느껴질 땐…”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도윤은 그 말이 흘러가도록 두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윤이 먼저 잔잔하게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승아가 고개를 들었다.
“출근이 너무 싫어서 회사 주차장에서 30분 동안 라디오만 듣고 있었던 적이요. 그런 날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까지도 힘들더라고요.”
그는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도 제 삶은 돌아가고 있었는데, 저는 그걸 모르고 그냥 견디는 데만 정신이 팔렸던 것 같아요.”
승아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 말, 위로가 되네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
도윤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말했다.
“가게를 지킨다는 건요, 그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삶을 붙드는 일이에요. 오늘 하루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벽돌 하나 붙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저도 알아요. 이게 돈만으론 설명 안 되는 감정이라는 거.”
“그래서 가끔은, 오늘 하루를 지킨 내가 참 잘했다고, 스스로한테 말해주는 것도 괜찮아요.”
승아는 그 말에 커다란 숨을 들이쉬고, 창밖을 봤다.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다. 어깨에 묻은 밀가루 자국, 헝클어진 머리, 피곤한 얼굴. 하지만 이상하게,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도윤 씨 말대로, 오늘 하루도 나는 잘 지켜내고 있네요.”
그는 작게 웃었다.
“그럼요. 내일도 또 잘 지켜내실 겁니다.”
그날 저녁, 백승아는 가게 전단지 디자인을 다시 펼쳐봤다. 손글씨 느낌으로 ‘매일 튀기는 진심’을 적어 넣고, 가장자리엔 작게 별을 하나 그렸다.
그녀는 잠시 손을 멈추고, 다시 펜을 들어 전단지 뒷면 아래에 작은 문장을 더했다.
“오늘 하루를 지킨 당신에게, 따뜻한 치킨 향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전단지 사진을 찍어 도윤에게 보냈다.
‘이런 문구, 너무 촌스러워요?’
잠시 후, 도윤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런 문구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위로일 수도 있어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화면을 내려두고, 다음날 튀김 반죽 재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가게는 여전히 작았고, 장사는 여전히 어렵지만 마음 한편에 생긴 아주 작은 믿음 하나가, 하루를 버티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