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18

by 슬로우

저녁 9시 55분.


치킨집 불을 끄기 전, 백승아는 혼자 맥주 한 캔을 땄다. 홀엔 치킨 냄새만 남아 있었고, 오늘 매출은 어제보다 조금 더 줄어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진짜… 어떻게 버티지, 이거.”


백승아. 마흔여섯. 이혼 후, 아이 하나를 키우며 장사로 쌓은 내공은 충분했지만 최근 몇 달은 달랐다.

배달 수수료는 올랐고, 가게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그냥 불황이야”라는 말로 넘기기엔 너무 현실적인 수치들이었다. 순이익은 전년 대비 50% 마이너스였고, 당장 이번 달 임대료도 겨우 맞췄다.


‘접어야 하나. 아니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한 번만 더 버텨볼까.’


그녀는 하루에 다섯 번도 넘게 그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치킨집 문을 열기 전, 백승아는 잠시 ‘더 슬로우’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숍 문을 여는 그녀는 늘 그렇듯이 무심한 척, 시끄럽게 등장했다.


“도윤 씨, 오늘도 커피 좀 진하게 줘. 속이 아주 그냥 맹탕이야, 맹탕.”


도윤은 익숙하게 웃었다.


“오늘은… 한 방울 더 진하게 타드릴게요.”


잠시 후, 승아는 커피를 마시며 툭 던지듯 말했다.


“나… 가게 접을까 생각 중이야.”


도윤은 놀라지도, 바로 묻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천천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요즘 진짜 장사가 안 돼. 배달 수수료도 미친 듯이 오르고, 배달앱 광고비 안 쓰면 노출도 안 되고. 밤마다 계산기 두드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순이익은 줄고, 버틴다고 버텨도 남는 게 없어.”


도윤은 커피를 천천히 섞으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접으셔도, 계속하셔도, 누구도 승아 씨 탓 안 해요.”


승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예상 밖이었다.


“내가 접으면 다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게 더 무서운 거야.”

“하지만 그 누구보다 오래 버티셨잖아요. 그건 포기가 아니라, 판단 아닐까요.”


승아는 말없이 커피를 들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 참 ‘더 슬로우’ 사장님답네. 사람 마음 살살 긁는 그 묘한 말투말이야.”


도윤은 웃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날 밤, 치킨집 문을 닫으며 백승아는 장부 대신 노트를 펼쳤다. 거기엔 손글씨로 이렇게 써 내려갔다.


‘오늘 하루, 나한테 포기하지 말라는 말보다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좀 살만했다.’


커피 한 잔의 온도가 그녀의 장부 속 숫자 하나를 바꾸진 못했지만, 내일을 향해 조금 더 버텨보자고 생각하게 만든 건 분명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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