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또 감자를 심는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이야기 (14)

by 완서담필

날이 좀 풀렸다.


아침에 밭에 나가 흙을 밟아보니 느낌이 달랐다. 겨우내 단단하게 굳어 있던 것이 조금 물러져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늘 감자를 심어도 되겠다 싶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이 순간이 찾아온다. 흙이 준비됐다고 신호를 보내는 순간. 딱히 농사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그냥 몇 해를 반복하다 보니 몸이 먼저 안다. 얼치기 밭지기도 나름의 감이 생긴다.


밭 고르기.


먼저 쇠스랑으로 밭을 헤집었다. 겨우내 굳은 흙을 뒤집고, 뿌리째 엉긴 잡풀을 추려냈다. 쇠스랑이 흙에 박힐 때 나는 소리가 있다. 둔탁하면서도 묵직한, 그 소리가 싫지 않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울었다. 밭 고르는 소리와 새 소리가 섞였다. 아침 공기는 아직 서늘했지만, 등에는 이미 땀이 조금 배어 있었다.


이랑을 만들고, 흙을 고르고, 발로 꾹꾹 다졌다. 별것 아닌 일인데, 이 일을 하는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흙이 사람을 꽤 집중하게 만든다.


감자 심기.


씨감자는 며칠 전에 미리 준비해두었다. 구멍을 파고, 하나씩 내려놓고, 흙을 덮었다. 단순한 일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일을 매년 반복하면서도 매년 조금 새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흙 속에 무언가를 묻는다는 것. 두 달쯤 뒤에 꺼내면 몇 배로 불어나 있을 것이라는 것. 그 이치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손끝으로 흙을 덮을 때마다 새삼스럽다.


구멍 간격이 좁다 싶어 한 번 다시 조정했다. 이랑을 다듬고, 흙을 손바닥으로 살살 눌러 각을 잡아주었다.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손끝에 실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했다.


물 주기.


마지막으로 호스를 끌어다 물을 줬다. 물이 흙에 스며드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는데, 햇살과 물이 만나는 각도가 맞았는지 무지개가 생겼다. 짧고 작은 무지개였다. 특별히 무언가를 느꼈다기보다, 그냥 보았다. 무지개는 잠깐 있다가 사라졌다.


물을 흠뻑 다 주고 호스를 정리했다. 밭을 한 번 둘러봤다. 아침과 달라진 것은 이랑 몇 줄뿐이었다. 흙 속에 감자가 묻혀 있다는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 손을 씻었다. 언제 묻었는지, 손톱 밑에 흙이 끼어 잘 씻기지 않았다. 그냥 뒀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내년 봄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밭을 고르고, 감자를 묻고, 물을 줄 것이다. 무지개가 뜰 수도 있고, 뜨지 않을 수도 있다. 흙 때 역시 잘 씻길 수도 있고, 씻기지 않을 수도 있다.


텃밭은 이 모든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나도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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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밭 고르기

감자 심기

물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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