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서칭:나를 찾아서
주체성이란 주인의식이요, 독립이요, 해방이요, 선택이요,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부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체성의 형성 과정은 의존에서 독립, 노예에서 주인으로, 예속에서 해방으로 강요당함이 아니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주체성의 상실은 이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당시의 나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에 부딪치게 되어 자기 성장을 저해당해서 이루어진다.
2020년 코로나의 여파로 10년의 해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한 후로 난 단 한 번도 해외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이 없었다. '해외생활'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길래 가슴에 사무치도록 그때를 그리워한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 기억 속에 해외에서 살고 있는 자아는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모든 것을 착착 이루어나가는 사람이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나는 이미 심적으로 너무 지쳐있었고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어딘가 공허하게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끊임없는 자기 의심은 나를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게 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주어진 역할만 하는 무쓸모 인간이 되어버린 듯했다.
사실 우리의 대부분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4년 차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르는 순간에 봉착했다. 어느 새부터 사회가 그려 놓은 틀 안에 나를 맞춰가면서, 삶의 주체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내가 원해서가 아닌 사회의 기준에 맞춰 내 삶을 살아가는 기분을 항상 느꼈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나의 가치'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미래의 나를 만나고 싶었고, 내가 향할 방향을 명확히 하기 위한 정리가 필요했다. 이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상상하기 위해서 항상 꿈꿔왔던 이민 국가로 훌쩍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의 이민 희망 국가 리스트에는 캐나다, 독일, 영국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비행기 표가 가장 저렴했던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그리고 약 10일간의 여정에 홀로 떠났다. ‘In the pursuit of myself(나를 찾아서)’를 주제로 귀국 후 잃어버린 과거의 나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나, 그리고 이민을 고민하는 미래의 나가 삼자 대면 하는 순간이었다.
10일간의 런던과 에든버러 여행 동안, 나는 내가 잊고 있었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의 나를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키며, 삶의 본질을 다시금 깨달으려 했다. 그곳에서 난 혼자만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낯선 환경에서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건들을 마주했다.
영국에 도착한 첫날 늦은 저녁, 숙소에서 내 예약을 취소함에 따라 주변 슈퍼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호텔을 예약해야 했다. 펍 투어를 통해서 6개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밤새 술 한잔에 수다를 떨며 놀기도 했고, 길 가다 우연히 마주한 행인과 한참을 얘기하며 친구가 되기도 했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그 과정 속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안의 자아가 점점 커져가는 게 느껴졌다. 게임 속에서 퀘스트를 하나씩 풀어나갈 때마다, 새로운 퀘스트가 주어지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가능해짐으로써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것처럼말이다.
새로운 상황이 주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한계라는 바운더리 안에 가둬놨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 한계를 극복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낀 것이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과거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21살이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 품을 떠나본 적이 없던 내가, 중국 유학길에 올르면서부터 홀로 해외에서 생활하며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작게는 자취방을 찾기 위해 부동산을 찾아가는 것부터, 현지 회사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서 근무하며 문화 차이를 넘어 내 의견을 설득하는 과정까지,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매 순간이 나에겐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도전들이 모여 나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모티브가 되었다.
한국 대기업 직장 생활하는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연봉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무엇보다 그때의 난 다른 사람의 편의를 위해 나 스스로를 단 한 번도 굽힌 적 없었다. 항상 남들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가치를 굳건히 지키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사랑도 모든 것이 조화롭게 잘 풀렸다.
내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새로움과 도전, 그리고 자유와 자아실현이었다. 내가 온전한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의 이동. 그것이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 자유는 나를 속박된 것들로부터 해방시켜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줬다. 마음이 찍어놓은 사진속의 내가 아닌 진실의 나를 마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