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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Feb 16. 2022

전사의 align 맞춰보기

내 바통은 내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 넘겨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창업 멤버가 아닌 이상 일을 한다는 건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 달리는 경험이다. 지금은 얼리 스타트업이니까 주자 2,3쯤? 그래도 내가 앞 주자라고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구나 아 이걸 잘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요즘은 대표와 오며 가며 얘기할 때 지나치는 한마디가 사실은 제품의 방향성에 중요한 정보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정보는 내가 (잘 선별해서) 흘려야겠구나, 싶어 진다. 왜냐면 그동안은 조직이 커서 이기도 했지만, 필요한 정보가 부족해서 일을 끌고 나가기 힘들었던 적이 많았거든. 굳이 말로 하진 않았지만 리드가 맘속으로 가지고 있던 방향성이 사실 있었다든가, 타 팀과의 조율에서 로드맵이 바뀌었다든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거란 마음으로 그때그때 부러뜨리고 정확히 이해하고 전파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면 그렇게 바통을 떨어뜨리지 않고 잘 전달하다 보면 align이 딱 맞을 때 나오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조직의 대표는 앞단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다른 리드들한테 은근히 보여주는데, 이거 참 고마운 일이다(매일매일 I'm feeling lucky!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 안 그러면 이게 다 정치로 풀어야 하는 내 일이거든. 기반은 다져졌으니 더더욱(보답의 차원에서라도) 내가 가진 정보를 구성원들에게 잘 나눠야겠다. 어떻게?  

대표는 잊을만하면 멤버 전원에게 지금 프로젝트는 어떤지, 어려움은 없는지 툭툭 말을 걸고 돌아다니는데 아 이거네! 무서운 점은 그러면서 대표는 다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숨 쉬듯이 여러분의 퍼포먼스를 측정하고 있다고요, 실무자 여러분. 그동안 내가 대표랑 너무 멀어서, 내가 누군지 알긴 하나 했던 생각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임을...(아 물론 그 역할이 큰 조직에서는 조직장에게 가있을 거고 언젠가는 나도 그 역할을 하겠지만.) 스스로 경계하는 점은,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는 거다. 회사는 분업이고 마땅히 각 개인마다 기대되는 바가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왜 이 부분을 고민 안 해주지? 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몰라서'이다. 아니 연차가 몇인데 이걸 모른다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동안은, 혹은 그 전 조직에서는 신경 안 써도 됐나 보지.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줘야 하나?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툭툭 분위기를 만들어 본다. align을 맞춘다는 게 바로 이거 아닐까.


1. 후배의 경우

문서화가 됐든 1:1이 됐든 뭐가 됐든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환경을 갖추자. '당연히 팀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야지' 네 그게 당연하긴 한데요, 처음부터 잘 안 되는 부분이란 말입니다.  꼭 문서일 필요는 없지만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걸 생각해보십시오. 특히 타 팀 관련해서 뭘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는 정말로 진짜 모를 수도 있잖아. 좀 더 경력자면, 잠깐만 신경 써주면 돌아가는 부분에 대해서 좀 친절해져 보자. 돌아보면 아 여기는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를 한번 깨쳐야 그다음엔 그 수준까지 움직이게 되더라고. 한번 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도 되잖아?


2. 신규 입사자의 경우

가령 이런 일이 있었다. 이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싶은. '제품을 써보지도 않고 자기 영역을 뚝딱뚝딱' 잘도 해낸다. 근데 내 입장에서는 자기 제품도 안 써본다고요? 아니 그게 말이 돼? 싶은 거다.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맨날 제품을 들여다보고 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나도 그러다가 번아웃이 온 적도 있으니까. 기본적으로는 제 제품은 들여다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걸 '요구'하는 게 맞는 걸까? 규모가 커지면 좀 불가능해지는 부분도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제안한 건 입사하자마자 마땅히 깔아서 써볼 수 있도록 온보딩에 녹여버리는 것이다. 가령 첫 조직의 경우 온보딩 기간(n 주) 동안 실무는 하나도 안 하고, 전사의 모든 제품을 써보고, 한 줄이라도 개선점을 도출해서 올리라고 했었다. 그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괜찮은 프로세스였던 듯. 조금 더 부연 설명하자면, 스타트업에서 오래 있었든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든 좀 더 사장님 마인드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래야지'하는 것들이 좀 더 직원 레벨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다 당신 같을 순 없고 그게 또 '옳은'일은 아니니까(사람은 일하는 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원하는 바가 있다면 좀 더 작은 레벨 단위까지의 문제를 '정의'해보자. 아니면 자동적으로 그리 되게끔 '프로세스'를 만들거나.


3. 카운터파트의 경우

내 팀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월권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 개인적으로는 제일 어려웠다. 그래도 분위기를 만드는 건 할 수 있다. 우리 팀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해보고 나의 맡은 바 퀄리티를 가능한 한 올리는 게 먼저. 그리고 요청을 받아서 단순히 수행하는 경우에도, 요청 사항에 맞게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그런데 자꾸 잡음이 생긴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자주 있는 일이죠?) 역시 align의 문제다. 더 윗 레벨에서 문제를 인식해야 하고, 더 나은 협업 방안을 제안하면서 찾아나가야만 한다. 그냥 '문제예요'라고 할 경우, '그래 문제네 네가 좀 더 신경 써주렴' 소리밖에 더 되나. 알아듣기 쉽게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자. 곤란하지만 이게 다 조직을 위한 일이라는 align은 놓치지 말고.


4. 대표의 경우

제가 전사 align이라고 했죠? 대표라고 피해 갈 수 없다. 대표에게도 숙제를 내주자. '응, 당신의 기조는 알았고 그 기조에 따라 이러이러한 점을 검토해봤는데 이건 청사진이 좀 더 구체화되어야겠다'든지 '이건 좀 이렇게 바꿔야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같은. 자주, 그리고 깊게 고민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나도 그냥 직원 1이니까 뭘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고 그저 제품 개발을 효율적으로 하고 싶고, 최소한의 퀄리티는 맞췄으면 좋겠단 마음인데 그걸 해내려니 어느새 중간중간 이런 일들을 다하고 있네? 요즘은 실무보다도 이게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단을 잘 다져 놔야 뒷단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줄거든. 네 다 제 몸 편하자고 하는 짓이죠. 그러다가 조급한 마음이 올라올 땐 이렇게 되뇐다. 사람이 모여서 일을 잘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초석부터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다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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