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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Feb 06. 2021

친남매는 아니고요, '찐남매'예요

우당탕탕 102호 오남매를 소개할게요




    나는 오남매 중 넷째다. 이렇게 말하면 요즘 시대에 다섯이나 낳아 키우다니 부모님이 대단하시다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셋만 낳았다. 오빠, 나, 남동생 이렇게 딱 셋. 그럼 나머지 둘은 뭐야?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102호의 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OO아파트 102호는, 나의 고모댁이다. 오빠와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부모님과 살던 섬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던 탓에 일찍이 상경을 택한 것이었다. 남동생은 다른 친척댁에서 학업을 이어가다가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102호에 합류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말하는 오남매 중, 우리 셋을 제외한 둘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 갈 것이다. 바로 우리 고모의 아들, 딸. 그러니까 나의 사촌오빠와 사촌언니다.


    열넷에 서울에 온 내가 어느덧 스물 중반이니, 우리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자란 것이 된다. 그 시간 동안 102호에서는 네 명의 수험생들이 수능장에 들어갔으며, 세 명의 아들들이 군대에 들어갔다. 그중 둘은 제대하고, 막내, 그러니까 내 남동생은 아직 군대에 있다. 사촌오빠와 사촌언니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고, 친오빠와 나는 취준생이 되었다. 각자 다 다른 교복을 입고 아침마다 순서대로 밥을 먹던 우리가 어느덧 다 크다 못해 징그러운 성인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편의상 사촌오빠를 1호, 사촌언니를 2호, 친오빠를 3호, 나를 4호, 동생을 5호라고 칭하겠다. 물론 나이순이다.


    1호는 근육질 덩치에 비해 다소 섬세한 감정을 지닌 인물이다. 어느 날 그의 휴대폰을 보게 되었는데, 3호 이름 옆에 다소곳하게 ♡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기함했던 적이 있다. 하트를 왜 붙이냐면서 언니랑 나랑 소름 끼쳐 하자 그는 무심히 말했다. 너네도 다 붙어있는데? 1호는 오 남매 중 첫째답게 가장 잔소리가 많은 편인데, 내 끼니 걱정도 제일 많이 하는 다정한 잔소리꾼이다.


    2호는 착하다. 솔직히 말해 부처가 따로 없다. 2호랑은 같은 방을 10년 넘게 쓰면서 크게 언성 높여 싸워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2호가 다 봐주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봐주는 것이 있긴 하다. 나보다 세 살 많은 2호의 깜찍한 애교 같은 것들을 비교적 잘 참아준다. 가끔 주먹을 드는 시늉을 하긴 하지만 진짜로 때리지는 않는다. 간호사인 2호는 대학병원 3교대 근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집 거실에 누가 시체처럼 누워있으면 그건 2호라고 보면 된다.


    3호는… 지금 이걸 보면서 자기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지 은근하게 기대하고 있을 인물이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나랑 꽤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예민하고 감성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학창 시절에 유난히 많이 싸웠다. 102호에서 소란이 났다 싶으면 거의 3호와 나였다. 놀랍게도 대학에 들어가고서부턴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중이다. 오남매 중에 뭔가를 제일 열정적으로 하는 타입이다. 지금은 휴지기인 듯 하지만.


    5호는 돌이다. 이걸 보면 엄마 아빠가 날 불러내 혼을 낼지도 모른다.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면서.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내 동생은 돌덩어리가 맞다. 무뚝뚝함, 딱딱함의 표본이라는 것이다. 근데 이제 착한 돌덩어리.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동생과 나는 사이가 무척 좋다. 주변에서 이상적인 남매라고 할 정도로. 근데 일방적으로 치대는 쪽이 내 쪽이고, 동생은 그냥 대충 받아주는 쪽이다. 동생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 '괜찮네', '나쁘지 않네', '알아서 해'. 이 정도이다. 쓰고 보니 상사를 모시는 건가 싶기도 하다.


    4호, 그러니까 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그냥 위에서 적당한 애정과 적당한 갈굼을 받고, 동생에게 적당한 애정과 적당한 갈굼을 주는 중간자로 이해해주면 된다.


    내가 친척집에서 산다는 이야기를 하면, 하나같이 '불편하지 않냐'라고 물어본다. 처음 올라온 중학생 때야 당연히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때는 1호, 2호랑 친하지도 않았고 서울 생활 자체가 낯설었으니.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정확하다. 10년이란 세월은 '사촌 관계'라는 우리 사이의 벽을 허물기 충분했다. 우리는 다섯이서 친남매처럼 잘 지낸다. 가끔 설거지를 누가 하냐 마냐로 옥신각신하고, 빨래를 돌려놓고 왜 건조기에 안 넣냐고 타박하고, 이건 누구 택배니 저건 누구 택배니, 택배 좀 그만 시키라고 잔소리하면서.


    내가 사실 서울 집에 마음을 붙이게 된 건 1호와 2호의 역할이 컸다. 1호는, 밖에 나가서 동생이 넷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굳이 사촌이니, 친동생이니 설명하지 않고 말이다. 1호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하루를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렸는데, 1호로부터 카톡이 왔다.


    [어디?우산있음?] PM 11:21


    [없눈뎅]

    [집바로앞정류장에서내릴거라괜찮움] PM 11:21


    [어디쯤인데?] PM 11:22


    [지금A지나는중] PM 11:23


    [ㅇㅋ] PM 11:23


    내가 내릴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뛰어서 1분 거리였다. 마침 가지고 있던 모자를 눌러쓰고 잽싸게 내려 뛰려는데, 바로 앞에 1호가 우산을 든 채 서있었다. 오~ 웬일~ 하고 말하자 비가 이렇게 오는데 뭘 맞고 오냐고 또 잔소리를 했다. 1호는 내게 우산 하나를 주고는 마트 좀 잠깐 들렀다 가겠다며 먼저 들어가라 했다. 나는 1호가 준 우산 덕분에 비 하나 맞지 않고 집으로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 부엌을 지나치는데, 식탁이 요란했다. 1호가 막 밥을 먹은 흔적이었다. 정확히는, 먹다 말고 자리를 비운 흔적.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끼니 챙기던 중에, 내가 우산이 없다니 먹다 말고 나온 것이었다. 음식에 진심인 그 1호가 말이다. 그때 나는, 반절 정도 비워진 밥그릇을 보면서 조금 감동했다.


    얼마 전에는 1호가 2호한테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발끈한 2호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하나뿐인 여동생한테 어떻게 그러냐!' 하고 대꾸했다. 1호는 또 무심히 대답했다.


    "여동생 둘인데?"


    방에서 듣고 있던 나는 '오~ 갬동쓰~' 하고 또 주접을 떨었다. 2호도 '아, 그렇네'하고 수긍했다. 1호가 밖에 나가 내 동생들, 내 동생들 하고 다니는 것은 알았다만 직접 그 입으로 여동생은 둘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도 조금, 감동받았다.


    2호도 참 다정한 사람이다. 며칠 전 내 브런치 글이 카카오#탭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신났던 내가 2호에게 화면을 보여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것 봐, 짱이지! 그때까지 내 브런치의 존재를 몰랐던 2호는 '이게 뭐야?'하며 신기해했다. '요즘 브런치라는 곳에서 글 쓰고 있고, 운 좋게 내 글이 여기에 떴다' 설명해주었다. 자기 휴대폰으로도 들어가 내 글을 확인하던 2호가 문득 말을 건 것은 한참 뒤였다.


    "이거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


    2호는 자기가 친구들 구독도 시키겠다고, 앞으로 누구 만날 때마다 휴대폰 빌려가서 자기가 구독하기 누를 거라고 했다. 나는 푸하하 웃으면서 그러라고 했다.


    1호랑 2호는, 그러니까 사촌오빠와 사촌언니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셋한테 많은 것을 양보해주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 한 적이 없다. 정말 동생처럼 받아들여주고, 챙겨주고, 아껴주었다. 매일같이 티격 대며 살긴 하지만, 그 고마움만큼은 평생을 갈 것이다.


    친남매는 아니지만, 찐남매인 우리 오남매. 우리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떨어져 사는 날이 오더라도 102호 안에서의 추억만큼은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당탕탕 정신없고, 왁자지껄 소란스럽지만, 그럼에도 즐거웠고, 행복했던 우리의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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