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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Jun 23. 2022

누리호와, 나와, 당신의 증명

우리가 지금껏 쏘아 올린 우주선에 대해



    오후 회의 시간, 잠시 휴대폰 확인하시던 팀장님이 반가운 이야기를 꺼다.


    "오, 누리호 발사 성공했네요!"


    헉. 정말요? 문득 시계를 보니 4시를 넘긴 지 꽤 된 시각이었다. 정각에 발사 예정이라는 기사까지만 보고 나왔는데 결국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나는 만지고 있던 태블릿으로 슬쩍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확인했다. '[속보]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메인에 떡하니 적혀있는 글씨를 보니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진짜 우주까지 갔구나, 누리호가. 그 이름을 읽어내려가니 자연스럽게 두 달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달 전 있었던 최종 면접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


    "브런치는 요즘도 계속 쓰나요?"


    포트폴리오에 적힌 '브런치 작가'란 키워드 때문에 나온 질문 같았다. 이미 한 차례 질문 폭격이 지나고 난 이후라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나는 웃으며 말했다. 바로 이틀 전에도 한 편을 썼노라고. 가벼운 꼬리 질문이 날아들었다. 무슨 주제로 썼어요?


    "어…, 누리호를 주제로 글을 썼는데요."


    사실 저도 사람인지라 최종 면접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복잡했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고, 혹시 여기까지 와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자꾸 들고…. 그때 마침 누리호 1차 발사 관련 기사를 봤는데, 거기서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이번 결과는 '실패'가 아니라 '미완의 성공'이라고. 기사를 읽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혹시나 이번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다. 준비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만 있다면 그건 미완의 성공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짐했던 것들을 글로 기록해뒀습니다.


    길게 늘어놓는 내 대답에 면접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너무 떨어질 걸 염두에 둔 것처럼 보였으려나? 자신감이 없어 보였을까?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재빨리 사고 회로를 돌렸다. 그 글에 적어둔 다짐 덕에 지금 이 순간을 담담하게 견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꼭 숨길만한 이야기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합격 연락을 받았다.



* * *



    최종 면접에서 혹여나 탈락을 한다고 해도, 그걸 나는 실패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우주선 하나를 위해 애썼던 시간이나 공들였던 마음이 다소 허무하기야 하겠지만, 나는 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 잔해를 분석하며 새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나의 우주에 우주선을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겠지.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 소식이 유난히 감동적이었던 건 그의 '완전한 성공'을 나 또한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누리호는 내게 있어 순간의 좌절이 반드시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존재였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광활한 우주 공간에 도달하고 말 것이라는, 그렇기 때문에 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의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 된다는. 그런 확신을 준 존재가 바로 누리호였다.

 

    이번에 누리호가 우주에 도달한 것처럼 두 달 전의 나도 결국은 내 우주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나의 우주선을 무사히 올려보내며, 그리고 우주에 자리 잡은 누리호의 사진을 보며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실패' 아닌 '미완의 성공'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완전한 성공'이 증명해내고 말 것이라고. 그리고 이다음 나와, 이다음 당신이 만들어낼 우주선 또한 그 '증명'이 되고 말 것이라고.


    참고 노력하면 결국은 성공하고 만다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뻔한 이야기가 맞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도전하면 된다는 말. 나는 당신이 이 말을 뻔하게 생각할지언정,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지만 아무것도 성공한 게 없다고, 내 미래에는 '완전한 성공'을 이뤄낼 우주선이 없을 거라고 낙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미 당신의 우주에는 당신의 힘으로 발사한 우주선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뒤집기를 했던 날에,

    '엄마'라는 단어를 완성한 날에,

    이름 석자를 스스로 적어낸 날에,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성공 날에,

    발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낸 날에,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티켓팅에 성공한 날에,

    적게나마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본 날에.

   

    때로는

    힘든 밤을 견디고 견뎌 다시 일어났던 아침에,


    그때 당신이 쏘아 올린 우주선들이 당신의 우주 도달했음을. 어딘가 부서지거나 고장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의 무한함 속에서 반짝이고 있음을. 살아가는 내내, 잊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을까. 나는 아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거다.


   다만, 우주선을 올려보내는 바로 그 순간에 박수쳐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도달하지 못하는 때에 그걸 실패라 말하지 않고 미완의 성공이라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완벽히 도달한 순간에 같이 끌어안고 기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 부름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나는 또 내 우주에 우주선 하나를 안착시킨 것과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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