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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번역가 Oct 07. 2023

제4년

길었던 월세 생활을 청산하고 생애 첫 집을 장만했다. 머지않아 우리 집이 될 그 집은 나지막한 언덕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선 넓은 아스팔트 도로의 한쪽 끝에 있었다. 그 언덕을 천천히 오르자니 아직 보지도 않은 그 집이 벌써 맘에 들었다. 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이 동네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다른 선택지들과 비교하면 아마 가장 오래된 집일 테지만, 이 아름답고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은 그 집을 본 후로 다른 집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을 것을 사며,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서도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집이었다.


동부로 이사 오기 전에도 집을 사서 임대하고서는 스페인에 가려고 했지, 그 집에 살 생각은 아니었던 것을 보면 나는 거주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한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차분히 일할 수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날 수 있고, 좋아하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동네에 있는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팔구 년간 나가지 않다가 다시 한국을 가기 시작하고도 몇 년이 흐른 후에 들기 시작했다. 2016년 초, 인터넷에서 사진과 별점만 보고 예약한 호텔은 서울 거리에 대한 인상을 꽤나 구기는 곳에 있었다. 거의 자정이 되어 공항버스에서 내렸는데 호텔을 가려면 고가도로 아래를 몇 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심기가 불편했다. 장거리 여행의 끝인 데다가 라식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 옛날 안경을 쓰고 있어서 앞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고가도로 아래 골목은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아서 매우 어두웠다. 걸어가던 여자가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살인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영화 속 골목과 너무 흡사해서 몇 번이나 뒤를 힐끗거렸는지 모르겠다. 그 골목이 주는 무서움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다음에는 무조건 밤낮으로 환한 곳으로 호텔을 잡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다음번 호텔은 서초동 부근이었다. 교통이 편하고, 밤길도 안 무섭고, 교보문고도 가깝고, 백화점도 많고 여로모로 편리하고 좋았다. 주변에서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고, 가면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가 그리 좋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 돈, 그 시간이면 나는 유럽이나 남미로 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초동 일대에 묵으면서 일이 들어오면 일하고, 밤에 심심하면 걸어서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보고 문구류도 사고, 백화점에 가서 구경하고 밥 먹고 팥빙수도 사 먹다 보니 왜 사람들이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지 절로 이해됐다. 서초동에 머물던 한 달은 욕망이 들끓는 시간이었다. 왜 이곳에는 내 집이 없는지 속상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국을 갈 때마다 한동안 내 안에 욕망을 들끓게 하던 그 동네도 몇 번의 머무름 끝에 시들해졌다.


다음 동네는 서대문역 근처였다. 아기자기한 동네들이 가까우면서도 지방에서 오시는 엄마를 마중하기 쉬운 곳이었다. 하루는 약속이 있어 서교동으로 갔다. 한동안 빠져 있었던 '서교동의 밤'이란 가수의 노래들이 떠오르고, 망원시장이 있으며, 꼭 가보고 싶었던 동네책방들도 있는 동네였다. 나 같은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출판사 1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 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얼핏 봐도 감각적인 상점 앞을 지나고, 골목을 걷다가 문득 깨달았다. 바로 여기에 내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불과 몇 번의 방문으로도 서교동은 번역 프리랜서를 설레게 하는 곳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집을 선택할 때도 동네 분위기가 크게 좌우했던 것만큼 나는 동네가 맘에 들어야 집이 맘에 드는 사람이었다. 무서움에서 욕망으로, 그리고 설렘으로 내 집이 있어야 할 동네에 대한 감정이 바뀌는 몇 년 동안, 예상치 못하게 동네가 아닌 거주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우리 집에 산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계약이 끝날 때마다 집을 옮겨야 한다는 불안정감에 내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유학 시절부터 1년이나 길면 2년에 한 번씩 이사했다. 그 간격이 더 짧았을 때도 있었다. 공부를 할 때는 동네에서 동네로 다니다가, 졸업 후에는 주에서 주로 다녔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개봉되지 않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지는 상자가 여러 개 있었고, 운전면허증의 주소와 집 주소가 일치하는 기간도 길지 않았다. 계약이 끝나면 으레 이사를 다녔다. 이 집에 정착해서야 단계별로 쌓아가기를 좋아하는 내가 한두 계단을 쌓은 후 허물고, 또 한두 계단을 쌓기를 십수 년간 했음을 자각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것인지.


죽을 때까지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의식주의 '주'에 더 이상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았고 인생에서 큰 일을 해결했다는 안정감이 생기니 다른 뭔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여윳돈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좀 더 일찍 은퇴하거나, 다른 주에서 일하면서 살아보거나, 아니면 아예 한국에서 살아보는 등 말이다. 어디론가 떠났다가도 언제든 돌아올 집이 있다는 안정감은 한국을 떠나온 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뭔가 새롭게 시도하고 싶다면 이 집이 기반이 되어 줄 터였다. 메모하면서 머리를 비워내면 다른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만들어지듯, 인생에서 주거 불안정을 비워내니 출판이라던가 하는 다른 기회들이 들어올 자리가 마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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