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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번역가 Oct 11. 2023

제8년

2020년의 시작은 꽤 괜찮았다. 내 일이 워낙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경우가 드물어 네트워킹을 통해서 일감을 받을 거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1월에 프리미엄 자전거 기업인 H사의 인사 담당자가 프리랜서로 등록할 생각이 있냐며 연락해 왔다. H사에 대해 좀 찾아보니 H사는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는 회사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응했고, 샘플에 통과해 지금까지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 인사 담당자에게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D사에서 일하던 PM한테서 받았다고 했다. 그 PM과는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하긴 했지만, 사적인 건 물론이고 공적으로도 개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직하면서 나를 함께 일하면 좋을 사람으로 추천했다는 데에 감사했고, H사와의 신규 거래는 한 해의 시작으로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기분 좋게 한 해를 시작했고, 한국도 잘 다녀왔다. 그런데 한국에서 돌아왔더니 미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술렁이고 있었다.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자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돈을 쏟아부은 덕분인지, 탓인지 하여간 별 경제적 어려움 없이 남편은 한 달이나 직장을 쉬게 되었으며, 나는 오히려 일감이 느는 기현상을 경험했다. G사에서 코로나 팬데믹 관련으로 일거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아웃도어 활동이 늘면서 H사도 호황이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생활 변화가 크지 않았다. 원래 온라인 주문을 많이 하고 있었고, 원래 배달 음식을 가끔 시켜 먹었고, 원래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한국 마트가 사람과의 접점의 전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원래 자주 가던 자연을 좀 더 자주 오래 접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집 가까이에 산과 호수가 많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입장료도 면제해 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매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산책했다. 온 가족이 매일 산으로, 들로 다녔으니 우리 집 강아지 봄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을 터였다. 비가 와서 산책이 어려우면 숲길을 따라 드라이브라도 했다. 유튜브에서 캠핑 생활자들의 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대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는 그들은 평화로우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물론 나중에 경험해 보고 알게 되었다. 그 생활이 평화롭지만 편안하지는 않다는 것을. 캠핑 영상들을 보고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캠핑을 해보고 싶었다.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거기에서 일도 할 수 있으니 왠지 멋지게 느껴졌다. 우리 봄의 삐뚤빼뚤한 치열을 닮은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의 뾰족한 산들을 배경 삼아 생활하는 우리 가족을 상상하니 오래간만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현재로는 정부가 돈을 풀고 있지만, 팬데믹이 길어져 극단의 봉쇄 조치가 연장될지 알 수 없으니 캠핑에 돈을 함부로 쓸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캠핑을 꼭 해보리라 하는 생각만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시작된 캠핑 생각이 나의 사회적 고립을 자각하는 계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코로나 팬데믹이 생활인으로서의 내게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은 가운데, 번역가로서의 나는 기계번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계번역은 "인간이 사용하는 자연 언어의 번역을 컴퓨터에 맡겨 처리하는 일"(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기계번역 소프트웨어가 나날이 발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주요 기계번역 소프트웨어의 번역 품질을 비교 평가하는 일도 해봤다. 내 경쟁자가 될 소프트웨어를 평가하는 일이라니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D사는 업계 선두답게 기계번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우선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번역한 뒤에 번역가가 후편집하는 방식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수준에 따라 인간의 머리를 빌리는 후편집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비용이 절감되었을 것이다. 2020년 당시에 내가 느끼던 기계번역의 품질은 번역가가 한 것에 비해 20% 수준에도 못 미치는 듯 보였다. 기계번역의 후편집이 내가 처음부터 번역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때도 종종 있었다. 원어가 영어이고 도착어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따위의 라틴어 계열이면, 기계번역의 품질이 나쁘지 않을 테지만, 영어와 많이 다르고 복잡한 한국어가 도착어라면 좋은 품질을 기대할 수 없을 터였다. D사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후편집이라는 이름하에 번역 요율이 더 낮게 책정되었고, 어디다 호소하기 어려운 억울함을 느낄 뿐이었다. 기계번역으로 인한 내적 위기감이 커져가는 가운데 반가운 백신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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