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풍 west wind Sep 13. 2024

" 언터처블 "

A Beautiful Moment

식물계 (Plant Kingdom)

지구의 지배종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멸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도시 문명을 해체하고 원점의 무로 돌려놓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방치된 오래된 건물들을 봐도 식물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 아가야 잘 놀았니? 이런 이런 엄마가 청소해 줄게 " 하는 거 같다.


현대 생물 분류체계에 의하면 생명체를 나누는 가장 큰 범주는 세 가지 도메인(Domain)인 고세균 세균 진행생물로 나뉘고, 그다음 체계로는 계(Kingdom)라는 분류체계로 동물계 식물계 균계로 나눈다고 한다.


그중 식물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먹이사슬 서열 맨 아래에 위치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그러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식물도 인간만큼 꽤 강하고 힘이 센 존재다.

생존 기간, 재생성, 최소 생존 환경 등에서는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명리에 인간과 인간의 삶을 풀이하는 5가지 요소에 비유적으로 식물이 들어있다.

식물을 갑목과 을목으로 나눈다고 한다.

갑목은 우뚝 솟아 오르는 나무들, 그리고 을목은 구불구불 유연한 넝쿨과 같은 식물들을 말한다.


사시사철 우뚝 솟아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나무들을 보면 대단하다.

특히 오래된 나무는 성한 곳이 없어서 모양이 더 개성 있다.

옹이진곳, 썩어 부러진 곳을 품고 뻗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 경쟁하며 태양을 향해 나아간다.

반면 겨울에 누런 풀 껍데기를 남기며 사라졌다 봄이 되면 꿈틀거리며 땅 위로 다시 솓아 오르는 넝쿨식물들 또한 에너지가 대단하다. 4월~5월경의 이름 모를 잡풀들은 콘크리트 아스팔트의 빈틈으로, 시멘트 건물의 틈새로, 때론 불과 며칠사이  "내가 왔다!" 하고 초록뱀처럼 꿈틀거리는 넝쿨 줄기를 척하고 도로 위에 뻗어 올려놓는 놈들도 있다. 마치 갱스터 같다.


" 언터처블(Untouchable)한  식물은 강하고 아름답다."


네고시에이터 조경가

작품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국내 최고의 조경가 선생님과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조경가는 자연의 섭리를 잘 이해하고 자연과 타협하며 경관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분출하는 에너지 덩어리인 식물들의 생태를 잘 파악하여 때론 과감하게 조정하고 어떤 것들은 살살 길들여 나무를 포함한 모든 식물 구성원끼리도 공생하는 방안을 적용시킨다. 이것은 물론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조경은 조경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조경가는 인간을 위해 자연에 개입하지만 자연과 대화하고 협상한다는 측면에서 자연과의 최전선에 포지션 되어 있다. 자연이 동의해 줘야 아름다운 경관이 탄생한다. 

사실 자연에 개입하는 사람들은 조경가 말고 도 많다. 특히 눈에 보이는 인간의 문명건설은 토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토건중심의 개발에서 조경은 부수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하려고 했던 프로젝트는 인상적인 경관을 만들기 위해 조경가와 예술가들을 중심에 놓고 토건이 적절히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었다.


독립적인 조경가는 흔치 않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 직업이긴 매한가지.

조경가는 클라이언트의 취향에 따라 초목환경자체를 바꿔서 적극적으로 자연을 디자인할 수도 있지만

나는 바탕과 환경자체를 인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원래 그 장소의 특정성을 살려 적정선에서 타협하여 내추럴함을 유지하는 쪽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성형보다는 내추럴한 화장이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경륜 있는 조경가는 드러나 있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선생님께서 한 번은 어떤 나무를 보며 이런 나무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날 말씀하시는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 따로 왜 그런지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나무와 대화를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컴백홈 식집사

2천원 3천원짜리 작은 화분에 있는 식물을 사서 20년 15년째 키우며 레옹의 마틸다처럼 품에 안고 이사를 다니곤 했는데 요즘 식집사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결국 식집사의 부재 때문인가? 

작년 연말에 부모님 댁으로 옮겨진 화분의 식물들이 얼마 전까지 그로키 상태였다

분갈이를 잘 못해준것은 물론 알고 보니 다른 흙이 이러저러한 경유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흙에 있던 잡풀들이 왕성히 올라오며 원래 있던 나의 녀석들이 쇄락해 갔다.  

오래 키웠던 녀석들을 저세상으로 보내는가 싶었는데 원래의 모습은 죽어 없어지고 드라마틱하게 다시 예쁜 연초록 잎들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부활이라는 단어를 쓸만한 광경이다.

굉장하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언터처블!



(꽉끼는 화분에서 풀려난 '자미오쿨카스(금전수라고 함)' 뿌리의 용틀임. ㅠ 깊히 반성하는 중.)








작가의 이전글 " 두장의 티켓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