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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풍 west wind Oct 17. 2024

"나비와의 한달살이"

A Beautiful Moment

작년 2월 11일이었다.

일요일 동네 지인과 저녁을 먹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영화 드라마 등 침체에 빠진 국내영상산업 앞날의 걱정과 함께 각자 도생시대의 무력함을 토로하는 얘기들, 기술이 어쩌고저쩌고 AI와 콘텐츠의 얘기도 곁들여지는 난상 수다들이었다.

밤늦은 시간 천천히 2층계단을 올라 집 현관문 앞으로 다가가는데 현문 앞에 며칠 전 가져다 놓은 나무 패널 위에 희끄무레한 조각하나 가 눈에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다가... 저 허연건 뭐지 하며 다시 쳐다보니  헛! 배추흰나비였다.

이런!


이 겨울에 정말 나비?!

현관문을 반쯤 열고는 고개를 돌려 멍하니 흰 조각을 바라보며 '죽은 놈이겠지...' 했다.

그러다 혹시나 하고 살짝 입바람을 불어보았다.

나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나 그렇구나 하는데 잠시 후 흰나비가 살짝 움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나!


그리고 급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 상황에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나비가 있는 위치

에서 맞은편 쪽에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문을 열어 놓고는 총총 집으로 들어갔다.


당시 내가 사는 집은 1층 단독주택을 증축한 2층 주택건물이었다.

건물주인 할머니께서는 층수로 치면 3층인 옥상에서 몇 년째 텃밭을 하고 계셨다.

그 텃밭 덕분에 나도 할머니로부터 옥상 상추를 맘껏 따먹는 수혜를 받고 있었며 한여름 짬이 나면 아침저녁으로 옥상 텃밭에 물 주기를 도왔다.


이 집은 1,2층이 세대가 달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오픈형이나, 2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2층입구와 옥상출구에 문이 있어서 양쪽문을 닫으면 하나의 닫힌 공간이 된다.


지난 초겨울 할머니께서 옥상 텃밭의 마지막 배추농사를 정리하시며 일부는 옥상 올라가는 계단 공간에 배추 시래기를 널어놓으셨는데 아마도 거기서 나온 나비인 거 같았다.


'부디 다시 계단 공간의 배추 시래기 틈으로 돌아가기를... 이 늦겨울에그 길 밖에 없어 보이네... '


'나비 화이팅!!'



'어이쿠, 아직 살아있구나...'

다음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바삐 출근을 했다.

퇴근하여 집에 가는 길, 낮에 잊었던 나비가 생각나 맘속으로 부디 이동했기를 바라며 현관문 앞에 당도했다.


'이런 이런...'

나비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강추위는 아니더라도 영하의 날씨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짝 입바람을 다시 불어보니 어제와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나비가 눈이 얼마나 밝은지, 기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비가 태어났던 계단 시래기 틈으로 가기에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는 수 없구나!'

나는 종이를 이용하여, 나비를 살짝 떠서 집안으로 려갔다.

여전히 난감, 작은 거실에 있는 초목 화분의 나뭇잎 위에 나비를 올려놓았다. 

나비의 다리가 아주 느리게 잠깐 움직며 자리를 잡았다.


'아차 아차! '

나비도 춥고 배고팠을 텐데 밥을 먹어야 하겠지? 꿀을 빠는 나비니 뭔가 달콤한 액체로~

나는 작은 종지에 설탕물을 타작게 썰은 사과를 섬처럼 만들어서 넣었다.

그리고 다시 종이를 이용하여 사과 위에 나비를 올려놓았다.

잠시 관찰했으나 나비는 움직이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두어 시간 후에  나비를 들여다보니, 나비의 돌돌 말린 주둥이(입)가 쭉 펼쳐져 검은 긴 빨대처럼 설탕물을 머금은 물기 있는 사과 쪽에 뻗어 있었다.

단 액체를 빠는 듯했다.

그렇게 길게 일자로 뻗은 나비의 입이 참으로 생경하였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나는 나비의 생태에 대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을 해보니 간혹 나비가 사람의 집에 들어온 경우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처럼 이런 겨울 날씨에 들어온 경우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추위와 배고픔? 에 그로키 상태가 된 나비를 실내로 옮겨온 케이스.


어긋난 계절에 번데기에서 나비가 된 이 녀석.

이걸 어쩐담...

일단 나비가 제대로 기운을 차려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랄 뿐.


나는 난생처음 나비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체육시간에 사용했던 곰봉처럼 생긴 두 개의 더듬이, 그리고 돌돌돌 회오리 같이 말린 입.

그리고 6개의 다리와 검은 반점이 있는 연노랑의 시폰 같은 날개피조물.


이런 희한한 상황을 누구에게 물어보겠는가? 

chat GPT로 AI와 나비를 이후 어떻게 하좋을지 대화를 나눴다.

AI는 자연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나는 그럴 경우 살 확률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현재 외부 날씨 등의 상황을 입력하니 AI 그냥 실내에 있는 게 안전할 거 같다는 답변을 내어 놓았다.

내가 AI와 상의를 하다니.... 쩝.

그래도 뭔가의 의견 동의를 받으니 마음을 굳히는 게 쉬워졌다.



그렇게 나비와의 한집 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말 만화처럼 나비가 기력을 되찾았다.


왜냐면 나비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틀이 지나니 나비가 스스로 움직여 날기 시작한 것이다.


나비 케이지? 같은 것을 사야 하나 하다가, 야생의 나비는 날아야 할 테니 그냥 거실 창가의 화분들 틈에 두기 했다. 략 너의 공간은 창문과 화분들 주변으로.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종지에 설탕물을 타고, 사과 속살로 만든 작은 섬을 만들어 주고 나비를 그위로 옮겨 주었다. 며칠간 나비는 그런 나를 잘 따라주었다. 즉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얌전히 옮김을 당해준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주둥이가 길게 뻗어 나오는지를 관찰했다.

첫날처럼 나비는 내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에 한두 번씩 나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왜냐면 먹이를 주려면 방목(?) 중인 나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은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비는 참 예쁜 구석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곤봉처럼 생긴 더듬이는 수록 너무 예쁜 곡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날개 사에에 있어 보이지 않는 검은 몸통은 벌레 같도 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나비가 창가의 난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거실에 왔다 갔다 하는데 거실을 횡단하여 나비가 제법 날쌔게 날아다녔다.


정말 신기했다.

나는 반려동물처럼 나비를 '나비'라고 이름 불렀다.


'나비'가 건강해지자 야생의 순리로 돌아갔다.

내가 다가가면 조금 멀어졌다.


'나비' 밥 주는 일과가 아침에 생겼다.


친구 몇몇에게 요즘 나비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더니, 다들 고양이를 키우는 거야라고 물어보았다.

고양이가 아닌 나비라고 했더니 다들 황당해하며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한 달 여가 된 어느 날

거실 어딘가에서 발견된 '나비'가 움직이지 않았다.

.

.

.

'나비'는 그렇게 나와 한 달을 살아줬다.

'나비'의 모습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지난 한 달이 '나비'에게 봄이었기를!

그날, 서촌 우리 집에서 살다 간 '나비'를 매화가 피기 시작한 인왕산 자락에 묻고 예쁜 솔방울로 덮어주었다.


안녕 '나비'!

담엔 진짜 봄에 보자!



그 후,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나비를 볼 때면 나는 '나비'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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