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no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alestar Nov 05. 2020

아픔, 서로를 잇는 다리

난독증 작가의 서가 (3)


난독증 작가의 서가(3)


스텔라 기자님께

먼저 고백으로 글을 열어야겠어요.

나는 '얼렌 증후군' 난독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상인 범주의 가면을 쓰고 있었어요. 때로는 나답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나 자신도 이 사실을 종종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까먹을 때도 있습니다. 이 편지는 당신이 생각한 나의 인터뷰 방향과 분리되어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얼렌증후군 증상의 일부이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전통적인 교육 아래 두각을 드러낸 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을 모르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이런 모순들이  '멀티 페르소나'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난독증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어요. 현재 입지를 생각해 본다면 어울릴만한 출발점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세상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한 마디씩 말했습니다. 당신이 쓰는 이야기들은 우리 시대의 현실적 상황과 거리가 너무 먼 얘기이다. '다중적 자아'를 다룬 소재가 현대인의 정체성을 부추길 것이다. 그 당시 출발점에 선 나를 깔보기에 급급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찬사의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아요. 글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맹목적으로 나의 삶을 예찬할 생각도 없습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의미 있던 행보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모호한 아이디어를 다듬고 구체화하는 고단한 활동은 창의성의 본질이지만 시간에 쫓기는 것은  장애를 더 부추기는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설정한 시간에 맞추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었어요. 성공적이지 않은 이력을 만드는 것도 창조적인 일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잡지사에 나의 글을 가명으로 투고하거나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어요. 나를 모르는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어요. 온라인 공간은 다양한 자아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공간이었습니다.


난독증이란 증세를 한때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어요. 나의 구원자는 신도 의사도 그 누구도 아니었어요. 지난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동기는 '대가' 자본주의 정신이었어요. 현재의 나는 자본주의가 선택한 인간입니다. 이런 제가 속물 같나요?


내가 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수십 번을 다시 읽고 하루의 온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진행하는 일들의 발전 가능성이 어려울 거로 생각하는 착각들이 성장을 더디게 만든 때도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세계관을 검열하려는 사람들, 지나치게 엄격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습관처럼 경계했어요. 혹시 기자님은 본인의 능력을 지레짐작하시나요? 우리는 꿈꾸는 법을 배워야 해요. '확언의 언어'를 스스로 선물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올곧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당신을 기억합니다. 정중한 자세, 모순된 성향을 간파하는 듯한 선한 눈빛을요. 당신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의 정신적인 뮤즈가 되어주세요. 현실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 말로 인해 산만하고 그로 인해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을 처참한 광경들을 지켜보았잖아요? 그래서 갈망합니다. 불완전한 마음이 바로잡힐 때까지 지켜봐 줄 나의 뮤즈를...


나를 추앙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나의 실수를 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도록  대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면 됩니다. 나는 너무나 시끄러운 고독 속에 살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차이를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글이 양쪽을 잇는 다리로 사용되길 바랍니다.





난독증 작가의 서가 (2)

 https://brunch.co.kr/@thewhalestar/59


난독증 작가의 서가 (1)

https://brunch.co.kr/@thewhalestar/53



매거진의 이전글 직선을 그리는 남자 곡선을 그리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