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금메달, 아빠의 기록 (7) -Day 27
PART 1: 둘째를 키우며 첫째를 기억하며
注: <연년생 금메달, 아빠의 기록> 편은 2021년 둘째 출산 후 기록한 내용이다. 주로 심야에 아내가 수유를 마친 후, 트림을 시키고 재우는 역할을 도맡아하며 가슴팍에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썼거나, 새벽에 깬 아이들을 재우고 잠이 달아나 잠들지 못해 기록한 내용들이다. 현재는 2024년 아이셋의 아빠가 되었다.
감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종종 과학적 사실이나 원리가 우리의 감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한 세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데는 광고 카피 만한 게 없다.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
이걸 머릿속에 심고 실천하는 사람은 비만과 거리를 두고 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런 위험을 알아서였을까?
좀 더 진리를 담은 광고 카피도 있다.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찌지.
임산부, 신생아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연구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특히나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이뤄지는 연구조사의 특성을 봤을 때, 소중한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싶어 하는 부모의 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드에서 진행한 엄마의 무표정 실험 같이 그나마 그 영향이 미비할 거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테스트를 하고 그걸 바탕으로 가설을 만드는 게 전부일 거다.
또 그나마 그 몇 분간의 무표정이 아기에게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할 거고.
모유가 좋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 되었고 다들 가능하다면 모유수유를 하고 싶은 것엔 이견이 없을 거다. 그리고 그 이상을 가로막는 건 수유 시도 초기에 신생아의 믿기 어려운 흡입력에 적응되지 않은 예민한 부위의 아픔, 잦은 수유로 인한 피곤함, 직장생활, 개인 신체 능력의 차이, 의지력의 차이, 주위 압력의 존재 유무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거다.
아내를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모유수유였다. 아내의 피곤함을 덜어주고 싶어서 내가 집에 있을 때 수유 이외의 모든 건 내가 해왔지만, 수유만큼은 대체 불가의 영역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난 이성이 먼저 작동하는 사람이라 과학적 사실에 토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내가 파악한 원리는 이렇다.
가장 신기했던 것.
출산 후 초기, 엄마와 아기는 공생관계라는 것.
생산(?)되는 모유를 아기가 먹어서 비워주지 않으면 가슴통증이 발생한다는 것.
수유 시 유륜까지 깊게 잘 물리면 유두만 물리는 거에 비해 현저히 통증이 적어지고,
그것도 일정기간 지나면 엄마 몸이 익숙해지면 아픔이 없어진다는 것.
아직 모유 생산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의 몸은 아기가 젖을 먹음으로써 서로 조율해나간다는 것.
그 싱크(sync)가 맞게 되면 아기가 배고플 때 즈음 엄마의 유방엔 젖이 채워져 빵빵(?)해진다는 것.
젖을 먹이지 않을수록 모유 생산량은 감소할 거라는 것.
하지만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동의를 얻어낼 수 없고 내가 대체할 수 없으니 격려도 큰 힘이 되지 않는 상황.
첫째 때도 그랬다.
'모유가 부족한가 봐.
왜 이렇게 안 먹지? 왜 이렇게 일찍 깨지?'
그렇게 혼합수유를 겨우겨우 해가다가 한 달이 되었을 땐가 첫째가 강력하게 분유를 거부했다.
분유를 안 먹는 걸 보니 아내는 마음을 다시 굳게 먹었고, 그녀의 결단은 과학적 지식의 유용성을 입증했다.
모유량 증가 성공.!!
..
...
....
그리고 잘 먹고 잘 자는 아가의 밤!…의 도래...!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소화가 잘 되는 모유는 분유만큼 오래 가진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분유 먹고 뻗어서 5시간 자던 기적은 없었다.
둘째가 이제 27일 차.
아내와 나는 또 모유와 분유의 비율, 타이밍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난 젖병을 혀로 밀어내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아기에게 분유를 그만 먹이고 싶고, 아내는 아기가 조금이나마 길게 자길 원하는 마음에 (감사히도 둘째라 그런지 수유할 때 아픈 건 없다고 한다) 그런 표정을 무시하고 꾸역꾸역 분유를 삼키게 한다.
아내를 조금이나마 더 재우고 싶은 나는 자기 전 분유 수유를 했다. 처음엔 그걸 거부하던 아기가 조금 지난 후 젖병을 빨아대기 시작한 순간. 오랜만의 대량 분수토는 아기 옷뿐만 아니라 내 옷을 흥건히 적셨다.
하필 그때 아내는 화장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에 첫째가 깼는지 울고…… 아내는 첫째에게…
난 새벽 한 시 반 둘째의 옷을 갈아입히며 분수 토의 그 처참한 비주얼로 생긴 임시적 심리 트라우마를 다독였다.
다행히 첫째는 깬 게 아니라 잠시 칭얼댄 듯.
하지만 역대급 분유 분수토를 놓친 아내는 처리가 완료된 현장에서 묻는다.
“젖병을 너무 깊게 물린 거 아냐?”
……
하아…
신이 나에게 수유 능력을 주었더라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아내와 대립구도를 만드는 대신 분수토에 더러워진 아기 옷을 대야에 세제를 풀어 물에 담가두고 잠을 청하러 갔다.
분유를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그때 그 시절이 어서 빨리 재현되길 바라며 긴 하루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