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금메달, 아빠의 기록 (6)
PART 1: 둘째를 키우며 첫째를 기억하며
注: <연년생 금메달, 아빠의 기록> 편은 2021년 둘째 출산 후 기록한 내용이다. 주로 심야에 아내가 수유를 마친 후, 트림을 시키고 재우는 역할을 도맡아하며 가슴팍에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썼거나, 새벽에 깬 아이들을 재우고 잠이 달아나 잠들지 못해 기록한 내용들이다. 현재는 2024년 아이셋의 아빠가 되었다.
부모가 되었다고 갑자기 우리 부부가 숭고한 부성애와 모성애에 휩싸이는 일은 없었다.
아내는 피곤했고 아내의 바람은 늘 아기의 잠이었다.
'왜 안 자지?'
자지 않고 있는 아이의 모든 상황이 '우리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처럼 잠들지 않는 아가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계속 재우고 싶어했다.
아기가 잠자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
위로는 커녕 지적으로 들리기 쉬운 나의 조용한 한마디는 크게 힘이 되지 않았다.
사실 첫째 임신 6주차, 우린 임신을 확인한 후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길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깜빡이는 신호등을 별 생각없이 건너다가 멈추지 않고 차량을 추월하던 배달오토바이에 부딛힌 거다. 멈추지 않는 오토바이를 보고 난 아내를 감쌌고 오토바이는 나의 등, 엉덩이 쪽에 부딪혔고 아내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충격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난 어느 새 일어나 운전자에게 “아내가 임신 중이라구요!!” 라며 큰소리로 항의 후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아내를 일으켜 세웠다. 놀란 아내는 아기는 어떡하냐며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난 아내를 안고서 단호하게 말했다.
“세게 부딪히지 않았으니깐 괜찮을꺼야. 놀랜 거부터 진정시키자, 그게 더 아기에 안 좋을 수 있어.” 그리고 함께 기도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찰관들과 행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얼마되지 않아 엠뷸런스가 왔다.
위기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인 모습. 그건 당시 아내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자기도 금방 쇼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다행히 둘 다 큰 신체적 후유증 없이 첫째를 키울 수 있었다.
나의 이성적인 면은 아내에게 힘이 될 때도, 힘이 들게 할 때도 있었다. 아내가 감성적인 공감을 요구하며 불만을 토로할 때도 그 문장이 마치기 전 나의 문제해결 사고는 풀가동되어 분석과 해결책 탐색이 시작되었다.
남녀 심리학의 고전 <화성에서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부터 조던 피터슨 교수의 심리학 강의, 팀 켈러 목사의 결혼 설교 시리즈 12편…결혼에 앞서 지금까지 쌓은 지식은 많지만 역시 현실에서 나의 반응에 적용시키기 까지는 확실히 수련이 더 필요한 가보다.
모든 결혼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자기중심성이라고 팀 켈러는 말했다.
생각해보니 정말이었다. 많은 불만의 기초는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넌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나마 그 불만의 형식이 “왜 다른 누구와 같이…” 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내가 정리한 냉장고, 내가 정리한 주방는 아내가 정리한 것과 달랐다. 처음에 난 효율적인 동선과 UX/UI를 고려한 정리를 했고 아내는 시각적으로 깔끔한 것만 고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중심성이라는 문제점을 인식한 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게 보였다.
나의 효율성은 키 (약)180cm의 내 눈높이에 맞춰져있었고, 내 리치(reach)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160cm인 그녀의 시선엔 너무 높았고 팔이 짧은 그녀에겐 불편했던 거다. 물론 그녀의 눈높이에 맞춘 냉장고 정리법은 내 시선에서 벗어나 유통기한을 지나게 되는 음식들을 탄생시킬 때도 있지만 그녀에게 편한 거였다. 난 무릎을 꿇으면 되는 거였다.
결혼 전에 이미 서로의 다른 점은 틀림이 아니라 부부로서 상호보완의 요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라 필연적인 부딪힘을 예견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였다. 어떻게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국가와 문화 마저 다른 두 사람이 처음부터 잘 맞겠냐며 우리 둘은 서로를 위해 양보하는 연습을 하고 소통을 연습했다.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그 문제가 상대가 아니라 하나의 이슈인 점을 인지하는 법을 배웠고 둘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해결” 내지는 “처치”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난 복잡한 현실의 많은 것들을 단순화 시켜서 설명하면 왜곡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잦은 사람이고, 아내는 단순한 게 좋고 당사자의 심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있음으로해서 그녀는 단순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도로 마주했으면 고생했을 문제들에 대해 효율적인 해결법을 찾을 수 있었고,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나는 모든 걸 미리 파악하고 나서야 뭔가를 시작(혹은 도전)할 수 있는 나의 무거운 첫걸음이 전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기준과 방향이 맞다면 나머지 다름은 마음 가짐의 차이, 시선의 차이인거다.
그렇게 육아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을 우리 두 부부는 다른 시선과 다른 방법으로 협업하며 해결해보려 하고 있다.
물론 육아만큼 획일화된 정답을 찾기 어려운 영역이 없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정답이 없으니 내키는대로”를 선택하기엔 과거의 삶이 가르쳐준 지혜가 나를 나무란다. 농구를 할 때도 바른 자세는 중요했고, 기타를 연습할 때도 옳은 지식이 더 좋은 소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다른 아이의 기질이라는 것이 정답을 찾기 어렵게 한다. 첫째를 키울 때는 경험 부족이 원인, 공부 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둘째를 22일 키워보니 굉장히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필요한 거다. 두 사람의 지혜가 한 사람의 지식보다 나을 때가 종종 있으니까. 한 사람의 정신력이 약해져도 다른 한 사람이 교대해줄 수 있으니.
그렇게 나는 나를 존중해주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 육아라는 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언제 올 지 모르는 “오프 시즌”은 기다리지도 않는다. 무리하다가 “시즌 오프”되지 않길 주의하며. 하루 하루 다시 찾아오지 않을 장면들을 소중히 보내는 걸 놓치게 될까봐. 조마조마 살금살금 우리에게 맡겨진 두 생명을 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