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금메달, 아빠의 기록 (5)
둘째를 키우며 첫째를 기억하며
注: <연년생 금메달, 아빠의 기록> 편은 2021년 둘째 출산 후 기록한 내용이다. 주로 심야에 아내가 수유를 마친 후, 트림을 시키고 재우는 역할을 도맡아하며 가슴팍에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썼거나, 새벽에 깬 아이들을 재우고 잠이 달아나 잠들지 못해 기록한 내용들이다. 현재는 2024년 아이셋의 아빠가 되었다.
신생아를 키울 때 가장 부족한 건 수면.
그리고 부부 둘만의 시간.
하나 더 끼워 넣자면 혼자만의 시간일 거다.
아기를 키우는 무렵의 누군가에게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냐고 물으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재우는 능력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엄브렐라 아카데미>라는 넷플릭스 SF 시리즈물에는 그런 여자 캐릭터가 있었다.)
새벽에 깨서 분유를 타고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재우려다가 응가한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씻고 하다 보면 잠이 달아난다. 피곤하고 자야 하는데 신체 장기의 대부분이 수평이 아닌 수직의 중력을 받을 대로 받아서일까? 꾸룩꾸룩, 끼ㅡ오옥, 하고 소리를 낸다. 자려고 한참을 누워있다 보면 허리가 배긴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는 걸 포기하고 다음 수유 시간까지 영어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어 블로그가 생기고, 브런치를 알게 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된 거다.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티스토리가 메인이 되어 이젠 방문자수 5500(2021년 기준/2024년 현재 37952)쯤, 몇몇 글은 구글 검색 결과의 탑 1-3위에 나온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광고는 달지 않았다.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다음에 나오면 개인 블로거로선 선방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브런치가 아니라 아쉬울 다름.. ! '이 주제에 궁금한 독자는 있다고요!' 라고 브런치 심사팀에 조용한 항의를 하고 싶다)
* 난 2024년3월 브런치 '5수'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방대한 량의 조사를 바탕으로 여러 참고자료를 링크하고 번역한 결과라 꽤 뿌듯하다.
그 바쁜 와중에 언제 그런 걸 할 시간이 있냐고 친구들은 물었다.
내겐 오히려 잠들지 못하는 밤을 통해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한 것 같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아기의 웃음만큼이나 힘이 되었던 작업이었다.
1-2시간 정도 큰 블록의 시간이 확보될 때야 진지한 글을 쓸 시도를 할 수 있지만, 10-20분은 애매하다. 그럴 때 난 육아 관련 유튜브로 소아과 의사 하정훈 선생님이나 ㅅㅇㄷ나온 엄마의 과학적 육아를 자처하는 베이비 사이언스 채널에서 육아지식을 쌓는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NBA 하이라이트.
아기가 잠들면 시작되는 아내의 시간
아기가 잠들면 아내는 드라마나 예능을 본다. 한국 드라마 중 재미있는 작품이 있을 때는 한국 드라마를 본다. 어떤 때는 중국 프로그램을 보곤 하는데 그럴 땐 ‘고향이 그리운가 보다’, ‘저렇게 향수병이 예방되겠지’ 하는 한편 그 시간에 그나마 한국어 공부가 될 수 있는 한국 드라마를 보길 조용히(?) 염원(?)한다.
그게 아니면 아내는 장모님 혹은 여동생, 남동생과 긴 영상 통화를 한다. 나에겐 없는 문화라 낯설긴 하지만 서로 생각하는 따뜻한 가족의 일원인 것 같아 보기 좋다.
대학원생 때는 연구실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쳤는데 임신 후 배드민턴을 쳐본 적이 없으니, 코로나 시절인 요즘 아내가 영상 콘텐츠 외엔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다. 그나마 근처에 같은 대학원 유학생 자매가 있을 땐 종종 놀러 와서 같이 놀곤 했으나 이제는 없다. 다행히 아내는 시어머니인 나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다. 아내는 “시어머니”란 단어 대신 “엄마”라고 부른다. 자기나라에선 그게 자연스럽다며.
나와 동생을 키우신 후 뒤늦게 시작한 상담학 공부로 아들이 취직한 후 박사 졸업을 하셨던 어머니가 배운 것들은 내가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고부갈등을 피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취미가 시어머니와 수다를 떠는 건인 아내가 있다는 건 꽤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생존을 유지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의미가 있다는 건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더 하고 싶은 나와 이미 너무 많은 걸 하고 있다고 느끼는 아내.
아이가 잠든 사이, 우리의 대화로 어렵게 성사시킨 수면의 시작을 행여나 방해할까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끌어안고 토닥인다. 어떤 때는 좀 더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좀 더 친밀한 밤을 만들고 싶지만 첫째는 용케도 이불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우리의 소리를 다 듣는 건지 칭얼댄다.
그럼 조용히 다시 동작을 멈추고 껴안고 있다가 할 말이 떠오르면 핸드폰으로 카톡을 한다. 너무나도 우스운 이 장면. 하지만 잠재우기 어려운 아기의 수면이 얼마나 귀한지 아는 이들은 우리의 이 우스꽝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할 것이다.
그렇게 아이가 잠들고
우리도 잠들고
밤 중에 아기가 깨지 않길 바라며
피곤한 하루가 새로운 하루로 교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