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육아 휴직 대신 선택한 육아 근로시간 단축
1. 지금 직장에서 일하게 된 지 10년이 되었다.
2023년 가을.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해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을 시작했다.
첫째 아이는 2020년 6월생. 둘째 아이는 2021년 10월 말에 태어났다.
연년생인 두 아이를 가정보육해왔으니 아내가 지칠 만도 했다.
그나마 도보 10분 미만 거리에 직장이 있기에 점심시간에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본가도 도보 20분 거리이고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어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실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조부모들과 자주 만나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좋은 친구처럼 느껴지는 듯하는 첫째와 둘째.
만 세 살의 첫째와 만 두 살의 둘째도 점점 더 수준이 맞아가며 재미있게 둘이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2023년 9월 29일. 셋째 아이가 출생했다.
2. 셋째의 임신 소식을 알리자 직장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한다.
돈 열심히 벌어야겠네.
첫째와 둘째를 길러보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
특별히 “프리미엄”이나 “럭셔리”를 추구하지 않는 부모여서일 수도 있겠다.
중고물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당근’ 덕분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교회의 여러 사람들이 옷과 장난감을 물려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없는 집안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경험을 해서인지 돈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돈이 너무 많을 경우 겪게 되는 문제들을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친구들의 삶을 통해 간접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수입’과 그에 상응하는 ‘지출’로 이루어진 삶으로 충분히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필요한 건 많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대학생까지 ㅇ억원’ 이란 건 그다지 신뢰할만한 계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결혼할 때 드는 ‘평균 비용’에 관련된 기사와 비슷하다.
왜곡된 허수를 통해 나온 특정 트렌드를 반영한 평균인척 하는 ‘소수의 취향을 담은’ 평균.
보험 영업이나 조기 교육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마케팅, Fear Marketing’과 같은 맥락이다.
3. 난 살아오면서 ‘대세’에 따르지 않는 선택을 위주로 해왔다.
대학 졸업을 마지막 학기에 학업보다 취업준비에 ‘올 인’ 해야 취직이 될 거라고 들었다.
젊었을 때 놀지 않으면 결혼해서 후회한다고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들었다.
차가 없으면 결혼은 커녕 연애하기 힘들 거라고 들었다.
빚을 내더라도 부동산(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평생 집을 갖지 못할 거라고 들었다.
위와 같은 여러 여론 혹은 중론众论에 따르지 않고 난 내 갈 길을 갔다.
마지막 학기까지 충실히 학업에 올인하고 졸업 후에야 구직활동을 시작했었다.
젊었을 때 특별히 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시간을 아까워하며 ‘유익한 시간’을 추구하며 살았다.
잘 보이기 위해 술 마시는 것 대신 업무능력과 태도로 평가 받았다. (무엇보다 내 아내의 배우자 조건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차가 없는 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고, 연애시절 ‘빨간 버스’를 타고 지금의 아내를 데려다줬다.
결혼한 후, 직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적당한 금액의 빌라를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신혼집으로 삼았다.
어쩌면 그와 같은 맥락에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선택지일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 선택의 배경, 그리고 이 선택을 통해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게 나와 같은 선택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후회 없는 삶을 위한 한 발짝이 되길 소망한다.
죽음을 마주하게 될 우리 모두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자.
‘좀 더 열심히 돈을 벌걸……’이라며 후회하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우리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
그걸 미리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선시 해야 될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그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
그리고 그 다음이 시간이다.
돈이 많으면 무언가를 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고, 특정 시간대를 다시 살 수 없다.
내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선택한 아내가 가장 힘든 나날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새 생명이 가장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간.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생명체가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빛나는 순간들.
그리고 그런 작은 순간들이 축적되어 쌓아 지는 부부간의 결속력, 아이와의 유대감.
그게 가정을 이룬 부모의 기초가 되고, 그 기초 위에서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를 헤쳐나갈 힘이 될지도 모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내와의 시간.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린 자녀들과의 시간.
아, 물론.
일을 덜 하기 때문에 수입은 줄어든다.
하지만 ‘부의 축적’보다 중요한 ‘투자’가 바로 이 ‘시간의 투자’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빠보다 엄마를 선호하는 이유는 (주로) 엄마가 더 오래, 많이, 함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아빠는 밤에 들어왔다가 아침이 되면 나가는 ‘손님’ 격으로 인지되기 쉽다.
경제관념이 없는 아이에게 “아빠의 숭고한 노동의 목적”을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아이가 사회인이 되어서야 체험할 수 있는 먼 미래의 개념이다.
어린아이들은 관심받고 사랑받는 것을 비싼 옷, 비싼 음식, 좋은 집, 좋은 차보다 더 좋아한다.
통장 잔고를 늘리는 대신 지금 이 시간 속에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보석 같은 시간들을 쌓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