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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새 Winter Robin Jan 23. 2022

꼴도 보기 싫다

머나먼 과거부터 오늘의 글까지

이번에 방 배치를 바꾸면서 책장에 묵혀뒀던 문서가 잔뜩 나왔다. 그중 이상한 제목이 달린 커다란 노란 봉투 안에서 수년 전 썼던 글이 나왔다. 여백에는 펜으로 누군가가 써준 피드백이 잔뜩 달려있었다.


충격적인 것은 현재도 내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그대로 적혀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나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발전이 크게 없었다는 것. 아무도 보고 있진 않았지만,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지는 것 같았다. (거울이 없어서 눈으로 확인은 못했다.)


피드백을 받기 위해 글을 내놓는 것도 부끄럽지만. 기껏 쪽팔림을 무릅쓰고 받은 피드백을 사용하지 않으면 피드백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피드백을 받게 되면 잘 생각하고 적용하며 글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때 피드백을 읽고 글을 수정했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충분히 코멘트에 대해 고민해보지도 않았거니와, 피드백의 질문들에 답하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피드백을 준 이에게 물어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드백을 통해 훤히 드러난 내 글의 약점으로 시선을 다시금 끌어 내 부족함을 만인에게 부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피드백을 사용해서 어떻게 글을 고치면 되는지 방향이 없거나 애매하면 그 또한 막막하긴 마찬가지. 피드백이 다른 의미로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내 책장에서 오랜 시간 노란 봉투 속에서 삭고 있던 피드백처럼.


그 결과, 나는 오늘도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약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내 글에서 부족한 그 부분만 바라보며 언젠가는 그걸 들킬까 봐 마음 졸인다. 고민한 시간은 길지만 아직 수정과 퇴고를 거치는 연습이 적은 탓이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글 쓰는 힘에 대한 얘기가 종종 보인다. 에는 오랫동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라는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요즘은 유독 조금씩 매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에 대한 조언이 많다. 이렇게 방향은 바뀌었어도, 그 어떤 작법서에도 여전히 피드백과 퇴고의 중요성은 항상 명시되어 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피드백이 잘못된 건 아니냐고, 피드백을 준 사람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사실 모든 피드백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피드백을 준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알 수 있는 거니, 그런 독자들이 앞으로도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내가 의도한 것이 잘 전달됐는지 아닌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피드백은 일단 유용하다고 믿는다. 내 글의 강점이나 흥미로운 부분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받은 피드백은 대체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적어도 한 가지씩은 있었던 것 같다. 셀프 피드백 또한 중요하다. 보통 내가 읽어도 내 글에서 한 군데라도 고치고 싶은 것이 발견되니까.


당분과 카페인 충전으로 거부감 극복이 가능할까?


그래, 좋다. 다시 읽어보기만 하자.


이렇게 결심했을 때 가장 큰 난관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을 때 밀려오는 깊은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예전에 써놓은 글을 읽고 수정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다시 읽어보지도 못하는 날이 많다. 거부감이 심히 큰 탓이다. 오늘도 카페까지 가서 태블릿 PC를 꺼냈으나, 다른 건 다 읽고 써도 예전에 쓴 글만큼은 꼴 보기도 싫다.


그렇게 수정과 퇴고는 며칠씩, 또는 몇 년씩 밀리고 과거에 써둔 글은 다른 서류 사이에 묻히게 내버려 둘 것이냐. 이 글도 결국 나 자신을 달래보기 위해 써본다. 수정과 퇴고는 중요하니 제발, 딱 한 번만 전에 써둔 글 좀 읽어보라고.


이렇게까지 했으니, 한쪽이라도 다시 읽어야지.

오늘 밤에도 이불 킥 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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