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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새 Winter Robin Jan 29. 2022

얼마만큼 진실일까

일기라는 장르

며칠 전, 방 가구 배치를 바꾸다가 엄마는 우연히 본인의 2018년 데일리 플래너(a.k.a 일기장)를 발견하셨다. 이 때는 열심히 썼다며, 내게 몇 부분 읽어달라고 하셨다.


엄마의 지난 일기를 큰소리로 천천히 읽으면서, 나는 갖가지 생각을 했다.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어라, 이 날에는 내 얘기가 있네!
오, 우리 엄마 에세이스트 같은데?


엄마는 엄청 시원스러운 필체를 가지셨고, 한 자 한 자 진심이 느껴지는 솔직한 글쓰기를 하신다. 그래서일까, 평소 휘갈겨 쓴 짧은 메모조차도 마음에 와닿고 감동을 준다.


굉장하고 부러운 능력이다,라고 느낀 지 제법 오래됐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나는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놀랐다.



엄마는 자신의 일기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구나.



나에게 일기란,

나에게만 허용된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속에서는 마음껏 놀기도 한다. 스티커도 붙이고, 색색의 볼펜과 하이라이터를 쓰고, 그림도 그리고, 망상도 펼치며 놀이터 마냥 나 혼자 즐겁게 장난도 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슴에 얹힌 짐을 풀어놓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나 이외의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엄마랑은 달리.


예전에 어디선가 읽긴 했던 것 같다. 19세기 영국이었나? 일기를 쓰는 것은 반성, 자기 검열, 자아성찰 등등을 하기 위해 권장됐고, 그 당시 일기의 주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일기장을 볼 것을 상상하며 썼다고. 즉, 잠재적 독자를 상정하고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일기는 진정한 그들의 생각이나 경험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과연 나는 일기를
아무런 독자도 생각하지 않고 쓰는가?


생각해보니 100퍼센트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그 이유가 뭘까?


일단 일기라는 장르가 자신을 돌아보는 만큼, 어찌 보면 이미 셀프 평가가 중심에 놓인 글쓰기일 수도 있다. 자신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 또한 마주 보고 (평가 1)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평가 2) 자체가 일종의 잣대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일기를 쓰고 있는 내가 동시에 독자인 내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 책에서도 이런 내면의 비평가 (inner critic)을 주의하라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실제로 의도치 않게 일기의 잠재적 독자를 목격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예전에, 엄마가 우연히 발견한 내 일기장을 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동생의 다이어리 또는 플래너를 우연히 보고 내게 걱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엄마가 일부러 본 것은 아니었지만, 지저분한 방이나 책상을 정리하시며 멍하니 후루룩 넘겨보시다가 읽으시는 거였다. 그 사실을 알자 언제든 엄마가 내 일기를 의도치 않게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떨까?

평소 솔직한 편인 엄마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으신 걸까? 아니면 이미 일기를 쓰는 중에도 자동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 검열이 들어가신 걸까?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라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밤 일기를 쓸 땐, 내가 어떤 일기를 쓰는 사람인지 좀 잘 들여다봐야겠다. 나만을 위한 글일까, 아니면 여전히 검열이 들어간 글일까?


올해는 어떤 이야기들로 엄마의 일기장이 채워질지 기대된다.

엄마의 일기를 낭독했던 게 생각나서, 오늘은 데일리 플래너를 선물해 드렸다. 몇 년 뒤에 또 재밌게 읽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에게도, 서점에 가서 엄마의 일기장을 고르는 일이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잠들기 전에 얼른, 일기장에 쓰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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