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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Oct 11. 2022

아들 기억 한 자락 2

넌 모든 생명을 사랑했지.

아들은 누구도 아프게 할 수 없었고, 본인도 작은 접촉에 쉽게 생채기가 나고 굳을 줄 몰랐다. 방안에 침입한 꼬물대는 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엄마, 얘 귀엽지 않나요?" 하며 잠깐 지켜보다가 창밖에 놓아주는 일이 많았다. "얘 귀엽지 않나요?"는 아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그 아이는 세상 모든 생명을 귀여워했다. 심지어는 잡초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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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9학년, 즉 고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 마당에서 도마뱀이 집 외벽을 타고 열려있는 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발견했다. 도마뱀이 전에 집안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빠른지 쫓아내는 게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난 파충류를 몹시 무서워하는 편이라 이 날도 긴장해서 도마뱀이 못 들어가게 하려고 문을 얼른 탁 닫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도마뱀은 전속으로 문쪽으로 돌진하다가 문에 머리를 부딪혔고 단 번에 벽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도마뱀은 전복 껍데기 안쪽처럼 배에 영롱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벽에 붙어서 집안에 침투할 기회를 노리던 시커멓고 재빠른 생명체는 생명이 빠져나간 바로 다음 순간 애처롭게 작고 푸른 껍데기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들 얼굴이 바닥에 뚝 떨어진 듯 어두워졌다.

"엄마가 도마뱀을 죽였어."

나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저렸다. 문을 쾅 닫았는데 생명 하나를 죽였다니. 그날 오후에 약속이 있어 나갈 예정이었지만 가슴이 쿵쾅대서 나갈 수 없었다. 아들은 도마뱀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지켜보다가 땅에 묻어주었다. 아들이 오후 내내 우울해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단, 나는 그 충격에 며칠 동안 괴로웠고, 지금도 영롱한 빛깔의 생명 없는 몸체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마 아들도 며칠 동안, 어쩌면 몇 달 동안 그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을 거다.   


아들의 가장 오랜 친구는 금붕어였다. 5학년 때 1년 남짓 같은 골목에 살던 니모가 아들의 마지막 사람 친구였다. 그 이후에는 5학년 때 하비스트 페스티벌*에서 받아온 금붕어를 애지중지 길렀다. 처음에는 밥공기보다 조금 큰 어항에서 기르다가 4리터 정도 물이 들어가는 어항으로, 몇 년 후 더 자라서 40리터 정도 물이 들어가는 수족관으로, 그리고 손바닥만큼 자랐을 때 200리터의 물이 들어가는 수족관으로 바꿔주었다. 7년을 함께 지냈지만 이 금붕어에게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금붕어처럼, 손바닥만 한 어항에서 이삼일 살다가 변기에 내려지는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금붕어는 그냥 피쉬라고 불렸다.


피쉬는 어떤 면에서 아들을 꼭 닮았다. 사람이 다가가면 수족관 벽 쪽으로 와서 춤을 추면서 반겼지만 절대 그 안에서 나오는 법이 없다고 할까. 우리는 피쉬가 큼직한 수족관에 혼자 살면 심심할까 봐 다른 어류들을 들여왔었다. 새 식구들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덩치 큰 물고기가 새 친구를 헤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순하디 순한 아들처럼. 오히려 새 식구가 들어오면 활개 치는 건 손가락만한 새 식구이고, 덩치 큰 피쉬는 새 식구를 피해 숨거나 도망가려고 했다.


한번은 플레코를 데려와서 수족관에 넣어주었다. 플레코는 어찌 보면 도마뱀처럼 생긴 물고기인데 사람이 다가가거나 먹이를 주어도 춤추듯 헤엄치치 않고 항상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다. 붕어는 위에 떠있는 먹이를 먹는 물고기인데 비해서 플레코는 벽에 붙어있는 먹이나 바닥에 가라앉은 먹이를 먹기 때문에 수족관 내에서 먹이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이 없다고 해서 선택한 종류였다. 데려올 때부터 약간 걱정은 되었다. 금붕어는 찬물에서 사는 물고기이고 플레코가 서식하는 최적 온도는 금붕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완동물 가게에서는 함께 기르고 있었고 물이 실온 정도일  문제없이 기를  있다고 해서 데려온 것이다. 새로운 물고기를 환경에 적응시키는 데에는 약간 번거로움이 있다. 우리 어항에 있는 물을 약간 덜어서 다른 어항에 부어두고, 거기에 물고기를 담아온 봉지 그대로 한참 넣어두었다가  가지 물이 섞이도록 풀어주고  적응하는  확인한  다시  어항에 옮기는 식으로 이틀 정도 신경써야 한다. 플레코는  수족관에 이사를 들어온   시간 동안  적응하는가 싶더니 저녁이 되자 플레코 색이 희뿌옇게 했고 바닥에 찰싹 붙어있는  아니라  없는 동작으로 다른 물고기를 공격했다. 아무래도 온도가 문제인  같았다. 부리나케 다른 어항을 준비하여 어항용 히터를 넣어주고 적정 온도가 되었을   어항에 넣어주었더니 플레코 색이 다시 돌아왔다. 플레코에게 4리터짜리 독방을 주면서 먹이 주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붕어 먹이는  가라앉지 않으니까 부유물이 되어 물이 금방 뿌옇게 되어서 오이나 상추처럼 플레코가 좋아하는 먹이를 따로 주어야 했다. 얇게  오이나 상추를 넣어주면 처음에는    하다가 잠시  몰래 보면 그사이 먹어치워서 구멍이 크게 뚫린 오이 위에 올라앉아있는 플레코를   있다. 초록 야채를 먹은 플레코는 투명한 피부 아래로 초록 잎이 그대로 보였다. 그렇게  개월을 기르다가 어느  물에 둥둥 떠있는 플레코를 발견했다. 며칠 먹이주는  잊어버린 것이다. 물에 더있는 플레코는 상추 잎에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훨씬 작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같았다. 아들은 자신이 먹이 주는 것을 잊어버려서 플레코가 죽었다며 몹시 슬퍼했다.


우리 수족관에는 그밖에 피래미 세 마리가 3년 동안 살았었고 조금 더 화려한 모습의 금붕어 두 마리가 2년 정도 살았었다. 우리 피시는 금붕어라기보다는 냇가에서 잡는 붕어에 가까운 모양이었는데, 나중에 사온 금붕어는 그림책에 나오는 금붕어 같은 모습이었다. 금붕어 두 마리 이름은 스피도와 스쿠터였다. 스피도는 헤엄을 정말 빨리 치고 성격이 공격적이었다. 조그만 녀석이 피시를 구석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먹이를 주면 다른 붕어를 제치고 먹으려고 했다. 스쿠터는 스피도와 확실히 구분되었다. 일단 등이 굽어있었고, 등 지느러미를 접고 있어서 붕어 특유의 화려한 수영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이 조금 아파 보이는 스쿠터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토마토 잎에 붙어있는 작은 애벌레를 떼어서 붕어들에게 주기도 하고 일반 붕어먹이가 아닌, 작은 벌레를 냉동건조한 먹이를 주기도 했다. 몇 개월쯤 지나자 스쿠터는 척추를 곧게 펴고, 지느러미를 활짝 펼치고 헤엄치게 되었다. 우리 수족관은 이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끝에 있었는데, 아침마다 계단을 내려오면 피시와 스쿠터, 스피도가 춤추면서 우리를 반겼다. 금붕어들은 사람과 친해지면 어항에 손을 넣어도 손이 있는 쪽으로 오고 손가락을 어항 벽에 대고 움직이면 손가락을 따라다닌다. 어느 날 아침 힘없이 아가미를 벌떡이며 물 위를 떠다니는 스쿠터를 보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붕어를 치료하는 동물병원까지 알아보았지만 그전에 죽고 말았다. 그때 8학년이었던 아들은 몇 시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엉엉 울었다.


일곱 살을 넘긴 피쉬는 밥상에 올라오는 웬만한 굴비보다 컸다.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이 집은 어항에서 조기를 기르냐고. 굴비처럼 튀겨먹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물론 아들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였지만. 우리는 그 큰 녀석이 200리터짜리 수족관에서 마음껏 헤엄도 못 치고 사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들에게 가끔 이런 제안을 했다.

피쉬를 미라마 호수에 몰래 풀어주고 오면 어떨까?

물론 이것은 불법이다. 아들은 버럭같이 화를 냈다.

- 그러다가 얘가 잡혀 먹으면 어쩌려고!

아늑한 수족관에서 살던 붕어가 야생에서 오래  수는 없겠지. 하지만 드넓은 호수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마지막을 맞는 것도 나쁘다고   없어. 아들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아들은  년이 넘도록 매주 물을 갈아주고 어항 벽을 닦아주고 자갈을 소재해주고, 먹이를 주면서 돌본 물고기와 이별할  없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피쉬와 아들을 동일시하기 시작한  같다. 피쉬는 가끔 머리를 어항에 들이받아서 입이 터져서 피가 나기도 했다.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피쉬... 그럴 때 물 상태를 체크하는 시험지를 넣어보면 암모니아 농도가 높아져 있었다. 그러면 물을 갈아주거나 암모니아를 분해하는 약품을 넣어주었다. 피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들에게도 무슨 일이 생길  같은 그런 기분이 어서 피쉬를 더욱 애지중지 돌보았다. 아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조마조마함을 피쉬에게 투사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떠난 후 남편이 처음으로 아들 없이 수족관 물을 갈 던 날, 딸이 도와주었다. 피쉬는 관상어를 포함한 정원 연못 용품을 판매하는 집에 데려다주었다. 아직 어느 집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기를 바란다.



* 교회에서는 미국의 할로윈 전통을 비기독교적인 전통으로 여겨서 그날 하비스트 페스티벌(Harvest Festival)이나 세이프 할로윈(Safe Hallowen) 등 비슷한 다른 이름의 행사를 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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