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가 나를 위로해 주려는 듯 계속 무릎에 올라오려고 했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테디는 사람의 감정을 잘 알아채고 위로할 줄 아는 순둥이이고, 나는 테디를 자식처럼 사랑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테디의 위로를 받아줄 수 없었다. 심지어 테디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8주 된 테디를 처음 데려왔을 때, 견주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나를 테디의 "엄마"라고 칭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강아지를 잃었을 때 그 아픔의 크기를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디를 엄마처럼 돌봐주고 사랑했지만 아줌마라고 불렀다. 내가 반려견의 엄마라면 반려견은 내 아들이 되는데 수명이 짧은 반려견이 떠나면 그 슬픔을 어찌 견디겠는가. 반려견이 먼저 떠나고, 내 아이는 내가 떠난 뒤에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순리였다. 아들이 떠난 후 꼬리를 흔드는 테디를 보자 그냥 미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테디를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M 언니에게 테디를 맡아달라고 했다. M 언니 집에도 반려견 두 마리가 있다. 언니는 나의 염치 없는 부탁을 당연하다는 듯 들어줬다.
1층에는 아직 경찰들이 있었지만 M 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정면으로 보이는 아들방에는 차마 눈길을 주지 못하고 반대편에 있는 안방으로 곧장 들어갔다. 불과 한두 시간 전만 해도 이 방에서 평온한 밤을 보내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안방이라는 공간은 허망한 현실에서 괴리된, 황량한 세상처럼 보였다. 나는 쓰러지거나 휘청대지 않고 그저 천천히 방안에 걸어 들어가 망연자실하게 앉았다.
얼마 후,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황망한 얼굴로 하나둘 달려왔다.
나는 손님들에게 아침에 일어난 일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내 머릿속에도 등재되지 않은 세세한 부분들이 입 밖으로 그냥 흘러나갔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또 말했다. 아들이 자살한 사건을 이렇게 떠벌리다니. 그때 나는, 내 두뇌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을 겪어 두뇌의 일부가 파괴되고 멋대로 동작하는 고장 난 기계였다.
누군가 도시락을 사다 주었다. 백만 년은 지난 것 같은데 고작 점심 먹을 시간이라니. 허기를 느끼는 것도 같았다. 도시락을 고맙게 받아서 뚜껑을 열었다. 하얀 스티로폼 용기에 들어있는 캘리포니아롤이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물건처럼 낯설어 보였다. 낯선 음식을 한참 쳐다보다가 하나를 입에 넣었는데, 씹을 수 없었다. 먹는 행위는 아들이 살아있는 현실에서 하던 행위였다. 아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음식을 입에서 어떻게 씹어야 할지 몰랐다. 시간 흐름의 속도가 다르고, 익숙한 행위가 몹시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지금이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머리를 마구 흔들면 다시 꿈에서 깨어나 아들이 있는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갈 것 같은 기대감. 다른 한 편의 나는, 멍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불안했다. 어제만 해도 나에게는 그날 해야 하는 기나긴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설거지를 치우고, 번역 마감을 맞추고, 이메일에 답장하고, 부동산 고객에게 연락하고,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활동을 데리고 다니고. 그런데 지금은 뭘 해야 하지? 현실이 아닐 거라는 기대감과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려는 모순된 노력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딸 걱정이 엄습했다.
고작 열두 살 된 아이에게 지금 겪는 사건이 얼마나 큰 일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놀랍게 의젓한 모습으로 나를 위로하는 아이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엄마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두려웠다. 무슨 일을 당해도 꿋꿋한 버팀목이 되는 엄마여야 하는데, 살아보겠다는 내 의지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한 순간에 훅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거꾸러지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이 집이 딸에게 너무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오빠가 주검으로 실려나간 집에서 아이는 공포를 느낄지도 모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구에게 딸을 며칠만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이건 잘한 일이 아니었다.
오후에 여자 경찰관이 방문했다. 여자 경찰관이 내 눈을 꼿꼿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침착히 묻는 질문에 오전에 모두 진술했던 내용이라도 훨씬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훗날, 내가 그날 진술한 내용 중에 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상 맞지 않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 머리는 그 후에도 많은 오작동을 일으켰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것 같지는 않다.
그날의 시간은 모두 뒤죽박죽 엉켜버렸으므로, 지금 쓰는 일들은 시간 순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낯선 세상에서 내가 그 순간 해야 하는 일에 처절하게 매달렸다. 부음을 전하는 일이 그런 거였다. 아들은 양가의 장손이었다. 시어머님은 스무 살도 안 되어 나의 남편을 낳은 뒤 어려운 환경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남편과 시동생을 기르셨다. 남편은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라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자랑스럽고 든든한 아들이었다. 어머님은 장손인 나의 아들에게도 신에게 바치기에 마땅한 믿음을 보여주셨다. 친정 쪽에서도 아들의 위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딸 넷 중 장녀이다. 아들 없이 딸만 줄줄이 넷을 낳았다는 사실은 엄마의 평생 가시였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눈에 선했다. 나의 아들은 딸이 태어날 때까지 오 년 동안 양가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고, 딸이 태어난 후에도 위상은 굳건했다.
이들에게 부음을 전해야 한다니.
무한한 사랑과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의 부고를 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온갖 망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당장 달려와 손자를 살려내라고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는 어머님의 모습, 소식을 듣고 그대로 기절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더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납득 불가능한 사건이다. 남편은 부모님께 어떻게 알릴 수 있느냐고 했지만 나는 너무 지체하지 않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동생 S에게 카카오톡으로 알렸다. 카카오톡 기록을 보니 오후 두 시 반이었다.
"오늘 제이가 오늘 하늘나라에 갔어. 엄마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슨 말이야?"
동생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동생은 꺼억꺼억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두 동생에게도 곧이어 전화가 왔다. 남편도 시동생에게 알렸다. 양가 부모님께는 장례 이후에 말씀드리기로 했다. 만의 하나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편히 보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입시 준비를 돕고 있던 지인과 에세이를 봐주던 선생님에게도 아들의 부음을 알렸다. 납기가 코앞이었던 번역 에이전시에 당시 진행한 부분까지 파일을 첨부하여 프로젝트 진행 불가를 알렸고, 부동산 사무소에도 알렸다. 주택매매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이어받아서 마무리해 줄 에이전트를 구해야 했다. 그날 만나기로 한 고객도 있었지만, 다른 고객들의 연락은 그냥 받지 않았다. 남편도 회사에 아들 상을 당했음을 알렸다. 내 아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가까운 지인 한둘에게도 알렸다.
어둠과 함께 한치의 용서도 없는 절대적인 절망과 고통이 찾아왔다.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에서 조앤 디디온은 비애가 '파도처럼, 발작처럼 닥쳐오고 급작스러운 불안을 일으켜, 무릎에 힘을 빼고 눈앞을 보이지 않게 하며, 일상을 까맣게 지워버린다'라고 썼다. 그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정신의학과장이었던 에릭 린드먼이 1942년 코코아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로 가족을 잃은 사람 여럿을 인터뷰하고 1944년에 쓴 유명한 논문에서 내린 비애의 정의를 인용했다. '신체적 고통의 감각이 파상으로 일어나고 한번 일어나면 2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이어지는데, 목이 조여드는 느낌, 가쁜 호흡과 숨 막힘, 한숨이 나옴, 속이 텅 빈 느낌, 기력이 없음, 긴장이나 정신적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한 주관적 고통을 느낀다.'
고통은 거대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가슴이 미어지는 끔찍한 육체적 고통의 파도에 휩쓸려 잠을 잘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저세상으로 아들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집념이 일어났다. 밤사이 언제쯤 한국에 있는 C 언니와 통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걸었는지, 받았는지 모르겠다. 언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언니 목소리를 듣자 뚜껑을 꼭 닫아놓았던 가스통이 폭발하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뿜어 나오는 울음은 산짐승의 울부짖음처럼 처절하고 통제 불가능했다. 산짐승처럼 얼마나 울었을까. 저릿저릿 마비되었던 몸에서 숨이 쉬어졌다. 가슴을 꽁꽁 얽어맸던 밧줄이 느슨해지는 걸 느꼈다. 파도가 밀려나가는 사이사이 숨을 쉬며 아들이 떠난 첫번째 밤을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