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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2

by 글벗

경찰은 친척이나 친구에게 연락해 주겠다며, 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도 없다고 답했다. 우리 부부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한국에 산다고 덧붙였다. 나에게는 아직 현실이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경찰이 다시 물었다. 나는 아들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으니 따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은 알겠다고 하며 차고에서 아들 곁을 지키는 구급대원들에게 담요를 깔아주라고 했다. 나의 기억은 이렇지만, 거의 7년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어쩌면 극도의 불안과 망상이 뒤엉켜 지어낸 가짜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담요였는지, 그 담요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날 딸은 방과 후에 다른 학교와 배구 경기가 있었다.

딸에게 오늘은 학교 수업에도, 배구 경기에도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자, 딸은 오빠 때문에 배구 경기에 못 가게 되었다고 툴툴거렸다. 늘 티격태격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동시에 이 아이에게도 오빠의 죽음이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경찰이 아들의 주검을 실어내도 되겠느냐며,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겠냐고 물었다.

나와 남편은 차고로 내려갔다. 아들은 이미 시신운구용 부대에 누워 있었다. 눈앞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해석되지 않았다. 내 신체와 영혼이 각기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한데, 아이를 집에서 마지막으로 어떻게 떠나보냈는지는 기억이 뿌옇다. 아이 얼굴을 쓰다듬어주었었나? 침대에서 잠든 아이를 쓰다듬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악을 쓰며 기절하지 않았고, 남은 세 식구가 서로 부둥켜안고 부축해주며 집안으로 들어간 장면이 남의 일을 보듯 영화의 뿌연장면처럼 남아있다. 다만, 차고를 나서는 노란색 시신운구용 부대는 가슴을 후벼 파며 각인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은 시신 운구 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그런 장면이 나오면, 그날의 마비된 현실로 되돌아가 시선을 돌리고 만다. 아들의 시신이 어디로 운반되었는지 경찰이 말해주었을 텐데 들은 기억은 없다. 미성년자의 사망은 부검을 해야 하지만, 부모가 거부한다면 요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부검을 원했다. 다른 진실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거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훗날 간의 무게, 신장의 무게, 소화기관에 남은 음식물까지 적혀있는 사망자의 부검 보고서를 번역할 때마다 아들의 부검 과정도 이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만에 받은 아들의 부검 보고서에는 각종 약물 검사가 모두 음성이었으며 특이 사항 없이 사망의 원인 및 방법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아들의 시신을 싣고 떠난 뒤에도 경찰이 집에 머물렀다.

무수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복사 상태가 불량한 자료와 서류 몇 묶음을 경찰에게서 건네받았다. 어느 시점에 경찰과 함께 일한다는 사복 차림의 자원봉사자가 거실에 앉아있었다. 위기개입 훈련을 받은 듯, 교과서적인 경청과 공감을 보여주는 그의 말투는, 오히려 경찰의 존재보다 더 효과적으로 지금 내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깨우쳐주었다. 자신의 말이 내담자의 발등을 찍기라도 하듯 최대한 부드럽고, 나즈막하며, 느린 말투. 나는 그런 말투로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받아 드는 서류와 자료가 늘어나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서 방금 일어난 일이 현실로 굳어져 가고 있음을 서서히 깨달았다. 악몽과 비교할 수 없이 끔찍한 현실. 아무리 끔찍해도 눈만 뜨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악몽이면 좋으련만, 현실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경찰에게 프라이버시를 요청하고, 남편과 자리를 옮겼다.


이제 어떡하지?

모르겠어.

우리 그래도 살 수 있을까?

그래, 그래야지. 딸이 있잖아. 살아봐야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볼까?

그런데 이걸 누구한테 얘기할 수 있겠어?


휴대폰을 켜자 최근 통화기록에 M 언니 이름이 떠 있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속을 터놓고 지내는 가까운 사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수년 간 함께 자원봉사를 하며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때는 최근 통화 기록에 M 언니의 번호가 있었던 이유를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후에 기억을 되살려보니, 전날 저녁 회의 때 나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랩탑과 자료를 내가 회의에 불참하자 회의 후 우리 집에 갖다 주느라 통화했던 거였다.


전화를 걸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낯설고 어색했다.

"언니, 아들이 죽었어요."

나 자신도 아직 현실로 받아들이지도 못한 말이 입에서 어색하게 굴러 나왔다.

"그게 무슨 무슨 말이에요?"

전화를 받은 언니도 혼란에 빠진 듯 했지만 곧장 달려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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