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신화
아버지도 핑계는 있었어.
고등학교 때 자기 아버질 잃었지. 그 뒤로 꿈은 접었다더라. 그냥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레일 위에 올라탄 거지. 자기가 올라탄 건지, 떠밀린 건지도 모른 채. 밖에서 눌린 사람이었어. 그래서 집에서는 눌렀지.
골프채. 내가 여섯 살쯤부터는 그걸 주로 썼어. 이유는 늘 같았지.
“버릇없다.”
근데 뭐가 버릇없는지는 매번 달랐어. 기준이 없었으니까. 그날 아버지의 기분만 있었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그냥 맞았어. 뭘 고치면 안 맞는지, 그건 끝내 못 배웠어. 나는 늘 틀릴 수 있는 애가 됐어. 도어락 열리는 날카로운 전자음. 그 소리만 나면 점검부터 했어. 인사 각도, 신발 위치, 말투. 뭘 잘못 안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문닫힌 안방에서 큰소리 나면 이불부터 뒤집어썼어. 이불째 누나 침대로 갈 때도 있었고. 누나는 말 대신 이불 끝을 들어 내 목까지 덮어 줬어. “자.” 딱 그 한마디. 나부터 달랬지.
학교. 거긴 아버지보다 교묘했어. 주먹 대신 규칙을 썼으니까.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벌을 섰어. 왜 사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먼저 고개 숙였고.
“불편해” 대신 “괜찮아”를 배웠지. 화를 내면 감정 조절이 안 된대. 가만히 있으면 의젓하대.
그래도 빨리 배웠어. 집에서 하던 걸 학교에서도 하면 됐으니까. 어떤 표정이 안전한지, 어떤 말이 칭찬받는지. 아버지 숟가락 소리 읽듯이, 교실 공기를 읽으면 됐으니까.
선생님들은 나를 좋아했어. 부모 면담에서 칭찬이 나오면 엄마가 웃었지. 그래서 더 잘했어. 나는 그 웃는 얼굴이 좋았거든.
근데 밤이 되면 몸 안쪽이 이상했어. 아픈 건 아닌데 편하지도 않은. 뜨거웠고, 금방 꺼졌지.
(이 소설은 텀블벅을 통해 종이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