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발생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그러하듯 아무런 징후 없이 금융위기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는 어떤 징후가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발생한 금융위기를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번엔 다르다](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2010)에서 제시하고 있는 위기의 조기 경보 지표들을 살펴보자.
참고로 은행위기는 흔히 뱅크런으로 불리는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해 은행의 폐쇄, 합병, 인수가 이루어지는 경우 혹은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부실에 따라 은행이 폐쇄, 합병, 인수, 정부로부터의 대규모 지원 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실 이 지표가 위험신호를 보이면 위기가 발생한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위의 표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지표는 자산 가격(주택, 주식), 환율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환율은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기에 좋은 지표일 것이다. 무역 거래와 자본 거래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생하는 외환 시장에서 환율의 추세적 상승이나 하락 혹은 단기적인 급등락은 미래에 대한 강한 기대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다채로운 변수들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러한 변수들 중에 모두가 인정하는 두드러진 변수 하나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케바케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환율은 조기 경보의 신호로 유의미할 수 있지만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자산 가격(주택, 주식)은 금융위기에 대한 조기 경보 지표로서 그리고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부채를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의 글(금융위기란 무엇인가?)에서 금융위기의 핵심 사건을 빌린 돈을 갚지 않게(못하게) 되는 것이라 정의했었다. 빚을 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빚을 내면서 기대했던 미래의 소득이(최소한 빚을 상환하는 데 사용될) 발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메커니즘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에 자산 가격은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자산 가격의 변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부분이 실질적인 문제이다. 자산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 올라야 문제인가? 자산 가격이 어느 정도 올라야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답은 당연히 없다. 다만 관련된 지표들을 관찰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주택 가격 지수와 가계 부채 수준이다.
인상적으로 볼만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가계 부채가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당시 가계 부채는 GDP 대비 100% 육박했었다. 이후 가계 부채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코로나19와 함께 급등했다가 다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주택 가격은 금융위기 당시에 계속 하락하다가 2012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꽤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주택 가격이 2008년 대비해서 많이 올랐다고 해서 버블이 발생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위의 주택 가격 지수는 2000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나 물가 상승 등의 요인을 감안해서 봐야 한다. 오히려 주택 가격이 오른 것에 비해 가계 부채 비율이 하락한 점은 부채를 동반한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상황과 맞지 않아 보인다. 최근의 상황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8년 이전에 두 지표가 동반 상승하는 모습과 비교해보아도 비슷하게 판단할 수 있다.
방금 전에 살펴본 주택 가격과 가계 부채 비율은 비교적 메커니즘이 명확해 보이는 지표들이다. 주택은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 주택을 구입하는 수요가 가계에서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그와 관련해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거주용이 아니라 투자용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주식 가격의 상승 또한 가계 부채와 연결 지어서 보아야 할까? 그 부분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끼어 있기에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주택의 경우 주택을 담보로 꽤나 큰 규모의 자금을 오랜 시간 빌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주식의 경우 주식만을 담보로 그러한 대출을 받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부동산 대비 주식의 가격 변동이 크다는 점에서 주택을 구입할 때처럼 대출을 대량으로 일으켜 주식을 구매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주식 가격의 상승과 부채의 연관성은 어떻게 볼 것인가? 솔직히 말해 조금 더 정교한 분석과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래 그래프는 필자가 연관을 찾아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 역시 계속 고민 중이라는 상황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비금융기업의 GDP 대비 부채비율과 주가 지수(다우존스, 나스닥)를 비교한 것이다.
위 그래프에서 주가 지수는 전년대비 몇% 나 변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2009년 이후에는 주가 지수가 계속적으로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하락하다가 2012년을 기점으로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2020년 코로나 위기를 맞이해 대폭으로 상승했다가 하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부채가 늘어난다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만은 없다. 기업이 부채를 늘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사업의 확장이나 신 사업 진출 등과 같은 투자를 위해서 혹은 기존 사업의 운영을 위해서다. 전자라면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후자라면 기업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기업들의 자금 조달 방법은 전통적인 대출 이외에도 채권을 발행한다든지 주식 시장을 활용한 상장이나 증자 등이 존재한다. 물론 일반적인 상장이나 증자가 기업의 부채비율을 높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금융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서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부채를 늘리는 결정을 기업들이 많이 할까? 기업은 부채(대출, 채권 발행)를 일으키지 않는 자금 조달 방법을 선호할 것인데, 투자를 위해 부채를 일으키는 결정을 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기업 부채의 증가는 기업 경영 상황의 악화로 해석하는 것이 유력해 보인다.
기업 경영이 악화되는 것과 주식 시장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주식 시장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미래에 떨어지는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미래의 주식 가격이 현재보다 높을 것으로 가정한 상태에서 그러한 가정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들은 해당 기업의 성과가 공개될 때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특정 기업의 주식이 오를 것이라 믿는 이유는 해당 기업이 돈을 많이 벌거나 시장 지배력을 높이거나 하는 성과를 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이든). 그런데 그러한 믿음의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에 해당 기업이 그러한 믿음에 부합하지 못하는 성과를 낸다면 해당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통상 기대를 수정한다(물론 그러한 것이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해 계속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한 기대의 수정은 보유한 주식의 매도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이 주식 시장 팽배할 경우에 주식의 매도가 많아지고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런 점에서 기업 부채의 상승은 주식 시장의 상승과 맞물릴 때 향후 주식 가격의 폭락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현재 기업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데 미래에는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논리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기업 부채와 주식의 가격만으로 이러한 결론을 내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 많으며 더 엄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더 많은 데이터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혀둔다.
금융위기와 관련된 살펴보아야 할 지표는 더 많지만 부채라는 가장 큰 지표를 중심으로 대략적인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렇다면 금융위기는 일어날까? 일어난다면 언제 일어날까? 누구도 명백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고민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기와 관련된 지표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니 다음 글에서는 그 질문에 대해 세밀하게 접근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