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횡단보도에 대한 일상
모두가 초록불을 원할 때, 빨간불이 조금 더 머물렀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초록불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연거푸 두 손을 내민다. 그 손에 꼭 쥐어진 종이. 초록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하찮은 것이다. 빨간불을 기다리는 사람에겐, 이것 하나하나가 내일이고 모레고, 내일 모레다. 모두가 빨간불을 싫증낼 때, 초록불이 조금 더 얄미운 사람이 있다.
그는 그곳에 있다. 초록불이 되어도, 빨간불이 되어도, 점멸등이 되어도, 그는 그곳에 있다.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는 우두커니 서있다. 수없이 오고가는 사람들 사이로, 수많이 지나가는 사람들 속으로, 우두커니 서있다. 팻말 하나 목에 걸고 수십 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색이 바뀌는 그곳에 그렇게 서있다. 그는 말없이 말하고 있다.
너는 스마트폰을 보고, 너는 신호등을 보고, 너는 흰 선을 보고, 너는 건물을 보고, 너는 저 먼 곳을 보고, 너는 운동화의 브랜드를 보고, 너는 명품 가방을 보고, 너는 미니스커트 아래 다리를 보고, 나는, 나는 너를 본다. 아니, 너밖에 못 본다. 어쩌면 너밖에 안 본다. 너는 나이기에, 나는 너일 줄만 안다. 그래서 나는 너만 보았다. 의례 초록이 좋은 나는 너는 너만 나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