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 크라우더, 『밤의 이야기』
새해의 첫 주. 나는 잠으로 가는 길을 다시 잃어버렸다. 두세 달 넘게 불면으로 인해 괴롭고 외로운 밤을 지새웠던 작년의 기억이 나를 덮쳐왔다. 시침과 분침 모두 짙은 어둠 속으로 고요히 돌아가는 나의 밤. 수면 헤드셋을 쓰고서 반듯하게 누운 나의 몸. 그러나 나의 정신은 이 캄캄한 시공간 안에서 더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빛이 사라지자 더 선명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 나의 불안과 상념 사이를.
또다시 괴롭고 외로워지려는 마음에 ‘괜찮아’라는 약을 수없이 발라주었다. 지나갈 거야. 언젠가는 편안해질 거야. 지금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의 시간도, 지금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나의 걱정과 긴장도. 이 모든 것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는 사람과 나라는 삶의 필연적인 과정인거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결국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라는 말은 불면의 낮밤 속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모두 맥없이 놓아 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나의 주문注文이자 주문呪文이었다. 지난날의 경험이 증명하고, 지난날의 기억이 지지하는.
그러던 어느 날의 어느 시간. 디카페인 커피와 타이레놀, 임팩타민과 이뮨의 힘에 기대어 일으켜 세운 몸은 진분홍 색의 그림책 한 권 앞에서 나는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은 마그네슘 부족으로 인한 눈 밑 떨림 증상이었지만, 뭔가 ‘있어 보이게’ 표현하고 싶었다.) 바로 키티 크라우더 작가의 『밤의 이야기』. 책 속의 엄마 곰은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는 아기곰의 부탁으로 아기곰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밤과 잠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통과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나는 이를 나 자신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베드 타임 스토리 위에, 스스로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을 가득 얹어서.
노란 징을 들고 다니며 숲속 동물들에게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밤 할머니. 내일로 우리를 데려다줄 ‘별’을 찾을 시간이라고 말하는 밤 할머니. 밤의 할 일을 다 마친 밤 할머니는 매일 밤 자신의 침대에 누워 이렇게 묻는다. “내겐 누가 잠자리에 들 시간을 말해줄까요?” 그러고는 곧바로 웃으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징을 울린다. 자신을 내일로 데려다줄 별을 찾은 뒤 금세 잠이 든 밤 할머니의 얼굴은 안온하기 그지없다. 그 얼굴 위에 나의 얼굴을 포개어보았다. 쉬이 잠들 것 같지 않아도 매일 정해놓은 시간에 침대에 몸을 뉘었던 나의 얼굴. 피곤하고 지친 하루였어도 다시 돌아보고 자주 돌아봐서 기어코 내가 원하는 모양과 형태로 ‘오늘’을 다듬고 닫으려 애썼던 나의 얼굴. 오늘의 좋았던 기억은 내일로 나를 데려다주는 동시에, 내일의 나를 빛나게 해줄 나의 ‘별’이었음을. 나도 모르게 나는 이미 이를 알아내고 살아내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긴장과 불안에 아득히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생각의 꼬리를 늘리고 이어가고 있던 그때. 어느새 내 옆에 밤 할머니가 찾아와 앉아있었다.
베리를 따는 커다란 축제가 열린 어느 마을. 아주 빨갛거나 파란 베리를 찾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소라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블랙베리를 찾기 위해 숲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된 소라. 소라는 블랙베리를 딸 수 있게 돕는 도구이자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인 ‘칼’을 손에 꽉 쥐고서 용감하게 길을 헤맨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로부터 우연한 환대를 받게 되어 잃어버린 길 위 어딘가에서 그와 함께 잠들게 된 소라. 잠든 소라의 표정 또한 매우 편안해 보인다. 어쩌면 소라는 오늘의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를 더 찾은 거라 생각하면서 편히 잠든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나 또한 어쩌면, 잠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 몫의 잠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길을 용감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도록, 내가 원하는 나를 지킬 수 있도록 나를 돕는 나의 ‘납작하고 네모난 칼’들과 함께. 확인의 마음이 조금씩 확신의 마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던 그때. 어느새 내 다른 쪽 옆에 소라가 찾아와 앉아있었다.
어느 순간에도 두꺼운 겨울 외투를 절대로 벗지 않는 부 아저씨. 밤마다 잠들지 못해 말똥말똥한 눈으로 누워있는 부 아저씨의 밤은 시계 속 시침과 분침의 속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잠 못 이루는 진득한 밤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부 아저씨. 어느 날의 어느 밤, 그는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켜 세워 물가에 사는 친구 수달 씨를 찾아간다. 돌멩이에 시를 써서 바다에 던지는 수달 씨의 조언으로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져 수영하기 시작한 부 아저씨. 여전히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상태였지만, 되려 그 외투는 차가운 물속에서 헤엄치는 부 아저씨의 몸을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지켜주었다. 바다 깊은 곳에서 시가 적힌 돌멩이를 찾아내 함께 물 위로 올라온 부 아저씨.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자마자 깊이 잠들게 된 부 아저씨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지어져 있다. 그 미소는 부 아저씨의 세계 밖에서 부 아저씨를 느긋이 바라보는 누구의 얼굴에라도 선명히 비치고, 찬찬히 스며들 것이다. 쉽게 벗어던지지 못하는 나의 불안이 오히려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음을 아는 이라면 누구든. 저 물에 기꺼이 빠져들어가 깊은 곳까지 내려갈 용기를 행동으로 내보일 때 자신과 함께 뭍으로 올라올 반짝이는 ‘돌멩이’의 존재를 믿는 이라면 누구든. 나 또한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미소 짓고 있던 그때. 어느새 내 맞은편에 부 아저씨가 찾아와 앉아있었다.
불면으로 인해 낮밤으로 고생하는 날을 열흘 정도 보냈을까. 나는 나의 예상보다 더 빨리 원래 내 것이었던 형태의 잠을 되찾았다. 한 이삼십분 정도 생각의 미로를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잠들어 있겠구나, 라는 확신이 반듯하게 누워있는 온몸 곳곳으로 다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 깊이 잠들지는 않았을 무렵. 나의 정신이 어느 경계 위에서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을 무렵. 나는 내 옆에 나란히 누운 밤 친구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내 잠을 되찾았던 그 밤. 내 몸이 기억하는 그날의 마지막 감각이었다.
오늘의 시를 다 쓰지 못 하는 날이 앞으로도 숱하게 내 앞에 쌓이고 쉼 없이 내 뒤로 흘러갈 것이다. 그래도 나는 괜찮을 것이다. 불안의 촉이 기대의 빛으로 향할 수 있도록 마음의 방향을 바꿔줄 ‘엄마 곰’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면. “그럼 내일 쓰면 되지, 이제 잘 시간이란다.” 이 말은, 불안이 잠을 떨쳐내는 내 모든 밤의 ‘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침대 머리맡에 이 진분홍 색의 책을 더해 올려놓는다. 밤의 어둠을 가리기 위해 빌려온 색이 아닌, 그 어둠을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색에게 나는 부탁한다. 다가올 나의 모든 밤을 네가 지켜봐 주렴. 쉬이 잠들지 못할 나의 밤도, 금방 곯아떨어져 잠들 나의 밤도 모두 포근히 감싸 안아주렴.
* 키티 크라우더, 『밤의 이야기』, 이유진 옮김, 책빛,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