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단편과 상념: 룩셈부르크
꽃길 끝 다리
아치 다리 사진 한 장에 그만 홀리고 말았다. 취향 한번 별스럽다는 비아냥을 이겨내며 기어이 룩셈부르크로 향했다. 벨기에 왈로니아(왈롱)를 지나는 5월의 향기 가득 머금은 길가에는 샛노란 유채가 끝 간 곳 모르게 드넓은 꽃밭을 이루었다.
무심결에 차를 멈춰 세우는 그 길 끝에서 아돌프 다리(Pont Adolphe)를 만날 터였다.
기억의 다리
우리 엄마도 유채꽃 같던 서른몇 살 시절이 있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유년의 기억 한 조각을 더듬다 보면, 그날 나는 (돈 앞에서 늘 떨어 샀던)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신발가게에 서 있었다. 아직까지도 선명한 기억만큼이나 강렬하게 감색 패브릭 운동화의 매력에 꽂혀있었다. 억지로 발을 쑤셔 넣었고, 발가락은 구부러진 채 행여나 들킬까 숨을 죽였다. 더 큰 사이즈는 없었기에 딱 맞다고 우겨야 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않은 채 값을 치렀고, 가게를 나서 금호강을 건너는 다리에 올랐다. 팔짝팔짝 뛰던 걸음이 느려지고, 절반도 건너지 못하고 더는 새 신발을 감당하지 못했다. 엄마는 버리지 않고 들고 있던 헌 신발을 내려놓았다. 치명적 매력의 감색 새 신발을 다시는 신지 못할 터였다.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 위로 한갓된 설움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리움의 다리
내게 더는 엄마가 없던 어느 날, 큰 아이 첫 운동화를 사러 롯O백화점 나이O 매장에 들렀다. 신발 끝을 야무지게 눌러보며, 그날의 데자뷔인 듯, "여유 있네."라고 읊조렸다.
해 지는 블타바강 카를교를 건널 때에도, 해무 뿌연 샌프란시스코 만 금문교와 세느강 퐁네프 다리 위에 섰을 때에도, 템스강 타워브리지를 지날 때에도, 그리고 스페인 론다 누에보 다리를 바라볼 때에도 늘 뜬금없이 금호강 다리 기억을 떠올리곤 하였다.
하지만, 그 다리들은 유채꽃처럼 어여쁜 엄마와 미간 주름 깊게 파인 아들을 잇지는 못하였다.
미라보 다리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의 '미라보 다리' 중에서 (송재영 譯詩)
세느강 이쪽 편의 시인은 사랑도 흐르면 잊힌다 하였고, 미라보 다리 저편의 옛 연인은 권태로운 여인보다, 슬픔에 젖은 여인보다, 불행한 여인보다, 버려진 여인보다, 그리고 떠도는 여인보다도, 쫓겨난 여인보다도, 죽은 여인보다도 더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며 비탄으로 대꾸하였다.
그 다리는 사랑을 잇지는 못하였다. 건너다 멈춰 선 그 다리 아래로 미련한 그리움만 한갓되이 흘렀겠다.
절반의 다리
"인생 절반의 세월은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흐르고, 나머지 절반의 세월은 그들을 잊으려고 흐른다."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이렇게 이해하였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고도, 이 나라 저 나라 멋진 다리를 찾을 때면, 그 다리 위로는 어느 아이와 (별것 없는 금호강 다리만을 기억할) 어느 여인의 실루엣이 한데 뭉쳐 어른거리곤 하였다. '아프고 해진 가슴을 어찌 기워볼까나.' 이게 바로 '잊으려 흐르는 세월'일지도 모르겠다.
기품의 다리
룩셈부르크의 수도는 룩셈부르크라며 식은 죽 먹기식 지리 외우기를 뽐내던 때가 있었다. 그곳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사이에 깊은 골이 파였고, 키 큰 나무들이 우거졌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강 페트루세(Péitruss)가 흐르고, 아돌프 다리가 그 위를 높이 가로질러 놓였다.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바퀴 달린 꼬마기차 페트루세 익스프레스를 타고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골목을 지나고, 공원을 지나고, 계곡에 들어앉은 마을을 비집고 들었다. 다리 아래 그곳엔 사람들이 흐르고 있었다.
아픔의 다리
페트루세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며 하늘 높이 걸린 우아한 다리들을 올려다보았다. 저마다 아픔의 사연을 어이 다 알겠냐마는 수많은 생명들이 계곡 아래 몸을 던졌다. 다리에 홀려 찬란한 영혼을 잃지 않기를 기도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