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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ug 16. 2024

비엘리치카 소금광산과 아버지들

여행의 단편과 상념: 폴란드 비엘리치카

감사합니다


2024년 8월 11일 오전 5시 30분. 집 앞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기다린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출장 일당 긁어모아 샤넬 지갑이라도 사다 줄까 물어보지만 그 아침에 배웅 나온 집사람은 이번에도 고개를 젓는다. 식상한 레퍼토리 읊으며 버스에 오른다. "그래,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겠지."


부정비리 건이 감지된 것 같다. 올해 들어 현장 감사 뛰는 일은 그만두고 사무실에만 붙어있었는데, "몸이 근질근질하지 않아요?"라는 제 멋대로의 판단으로 나더러 가보란다. 어쩔 도리가 없이, 요 몇 달 브런치에다 감성 타령 해대던 여린 본성을 가려줄 만한 엄중하고 서슬 퍼레 보이는 (색 바랜) 가면 몇 개를 챙겨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 보딩 브리지를 건너는 순간 '감사합니다'라는 세간의 화제 드라마가 떠오르는 연유를 모르겠다.


좋은 건 영원할 수 없다


지루한 비행 중에 더 지루할 것 같은 영화 한 편을 골라 본다. The Old Oak(나의 올드 오크). 졸린 눈으로 보다 보니,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Durham)의 쇠락한 탄광촌이 배경이다. 우연찮게도, (눈물 찔끔 흘려야만 했던)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빌리 엘리엇'의 배경으로 익숙한 곳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엇' (출처: AJC.com)

번성하던 때에는 탄광촌 펍은 광부들로 넘쳐나고, 마을사람들은 먹고사는 걱정은 없었겠다. 그러다, Solidarity(솔리대리티) '단결' 투쟁 구호를 외쳐야만 하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 찾아오고, 그 와중에 '개천에서 용 난' 아이라도 있을라치면 형과 오빠와 아버지는 솔리대리티를 외치면서도 어쩔 도리 없이 돈을 위해 갱으로 내려갔겠다.


그러다 보면, 일터를 잃은 이들이 하나 둘 흩어지듯 마을을 떠나고, "우리 아버지도 광부였어." 원치 않는 아픈 상처의 유산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루저(Loser)들이 남아서는 그새 낡고 터지고 깨져버린 음침한 도시를 지켜갔겠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바르샤바에서 세 시간을 남으로 내려와 고풍스러운 크라쿠프 광장 어느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았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파란색 노란색 집회로 분주한 광장을 한참을 바라보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아우슈비츠(오시비엥침) 가던 길에 들렀던 옛날과 다르게 이번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끝없는 계단을 아래로 걸어 갱도에 내려섰다. 이쪽저쪽 백 마일을 뻗친 그 길은, 비록 백 분의 일 남짓 가 볼 뿐이지만, 크게 변한 건 없는 듯했다. 손가락 끝에 침 묻혀 소금벽을 맛보다 보니 지하세계의 위대한 예배당과 마주하였다. 그 순간, 그 옛날 보다도 더, 말문이 턱 막혔다. 예배당은 헝가리 공주이자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세인트 킹가의 이름으로 불렸다.



세월이 흐른 탓일까. 예배당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예전과 달리, 광부들의 염원이 환영처럼 눈앞을 오갔다. 광부의 딸과 아들은 땅 속 깊은 곳의 아비가 부디 살아있기를 기도했을 것이고, 아비는 갱 속에서 스스로 예배당을 지으며 살아 돌아가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염원


내 마음이 어둠 속에 너무 오래 머물 때면,

팔백 년 전 땅 밑 삼백 미터를 파고든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과

몇 달 몇 년을 촛불 아래 소금을 캐며

예배당을 조각하고

소금 수정 샹들리에 불을 밝혀

기도하던

광부들을 생각한다.

(Jennifer Grotz 'The Salt Mine' 중에서)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신입사원 티를 막 벗은 무렵 인턴사원 여러 명이 들어왔다. 옆 부서로 배치받은 몇몇은 누구나 다 알만 한 집안의 자식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우리 부서로 온 청년을 환영하는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듯 말을 꺼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


"조장이십니다."

"어? 뭐라고?"

"태백 탄광 광부신데 조장이십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광부 아비가 막장에서 일하며 명문대학을 보냈던 아들은 "여기 소주 한 병 더요."라고 소리쳤다. 인턴사원이 건방지게 제 멋대로 소주 시킨다고 야단을 들어야 했고, 결국 오래 보지 못하였다. 당당함이 치부가 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길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임길택 시인의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중에서)


폴란드를 떠나 귀국 길에 오르며 샤넬 대신 (만원도 되지 않는) 비엘리치카 소금 한 통을 손에 들었다.




승무원은 착륙 준비하라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나도 이제 감성 따윈 벗어던지고 서슬 퍼른 가면을 야무지게 쓸 마음의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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