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단편 소설

by 노유현

프롤로그


나는 50대. 아저씨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사람. 나에겐 부인과 딸, 아들이 있다. 이들에게 나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기계이자 가끔 얼굴을 마주하는, 함께 사는 타인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나는 미술을 꿈꿨었고 유망했다. 그렇지만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자신을 잠식시켰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사회는 그런 내게 삶의 입증을 요구했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의 요구에 따라야 했다. 돈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삶.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순자를 만났고 그녀는 내 전부였다. 순자는 예뻤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기꺼이 나와 아이를 가졌고 우린 가정을 이뤘다. 아이가 생기며 나는 뒤로, 점점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스스로가 기억될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들러리였다. 민수와 현정이가 커 가면서 나의 존재 자체를 무시받았고 그것을 증명할 가치도 찾아내지 못했다. 바닷물에 휩쓸려 해변에 밀려온 병뚜껑만도 못한 “것”이 되었다.



한가한 오전, 가족들은 외출을 했고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넥타이를 풀었다. 그 녀석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결같다. 늘 목을 조였고 삶에 종속시켰다. 함께 한 순간이 길었나….? 마지막으로 그 녀석과 함께 하고 싶었다.



햇살이 창 밖으로 들어온다. 따뜻하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일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존재는 냉정하니까. 살짝 열어 둔 창문 틈새로 새들의 지저귐, 청춘들이 신나게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외침이 들린다. 이 집은, 삶을 저당 잡히고 은행과 노예 계약서를 쓴 대가로 얻은 집이다.



그런 우리 집 옆에는 중학교가 있다. 그 중학교는 육상으로 유명한 중학교다. 그런 소년들이 모여있는 운동장에서 지금 젊음의 외침이 들려온다.



궁금했다. 올라갔던 의자에서 잠시 내려와 소년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창문에 비춰 흐르던 빛이 망막에 맺히면서 밝게 빛난다. 달리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신나 보였을까? 그들의 각양각색인 표정을 보며 왜 다시 살고 싶었을까? 세상과의 소통에서 불통을 느낀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들렸던 소년들의 외침.


야! 내가 더 빨라!

”지랄! 자신 있으면 붙던가! “

그들의 불협화음이 내게 살라고 한다. 그 순간이, 나를 마라톤 대회장으로 이끌었다. 아이들의 시끄럽던 응원 소리가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온몸이 다 젖은 채로 달리고 있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도저히 죽지를 않는다. 그래서 더 살고 싶다.


나는 풀 마라톤을 달린다. 나는 지금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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