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by 노유현

청춘 - 1


탕! 큰 축포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일제히 출발선을 지난다. 축하의 꽃가루가 공중에 휘날리며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출발하니, 땅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였다. 중년의 아저씨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발걸음을 떼어 본다. 친하지 않은 두 이웃이 자주 마주치며 불편한 인사를 건네는 듯 팔다리의 움직임마저 어색하다. 이번이 살면서 10번째 달리기다. 그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의 망상에 잠기며 신고식을 치른다. 언제부터였을까? 멍해진 시선 속 시끄럽던 주변이 조용하다. 이내,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



화창한 여름날의 공기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매미의 공연을 시작으로 운동회가 시작한다. 수많은 학생들의 가족들과 선생님들이 한데 어우러져 복작거리는 학교 운동장. 그곳에서 운동회의 꽃 이어달리기가 곧 시작된다.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발선 앞에 선다. 그중 유독 긴장한 아이가 보인다. 그 아이는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언가 다짐을 한다. ‘엄니가 와 있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달려야만 혀.” 만국기가 하늘에 펄럭이며 모두가 숨 죽인 가운데, 체육 선생님의 총소리가 하늘에 울린다.



“탕” 출발선에 서 있던 아이들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간다. 뽀글 머리의 다짐하던 소년도 재빠르게 튀어 나갔다.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 줄 무렵. 소년은 너무나도 긴장한 탓에 다리가 엉키면서 앞으로 나자빠졌다.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 “만수야! 언능 인나야!”, “만수야! 힘내!” 같은 반 친구들과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가 소년의 귓가에 닿는다. 순간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이라 다른 학생들과의 차이가 그리 벌어지지 않았다. 만수는 6명 중 4등으로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주며 다음 주자는 만수의 실수를 만회하듯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만수는 터벅거리며 눈가에 맺힌 수치심과 울분을 소맷귀에 닦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 해냈다는 감정.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돌며 살아있다는 증거를 내보내는 탓에 금세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엄마는 그런 소년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아이고, 장하다 내 새끼.”


이것이 만수의 첫 달리기였다.


잠시 후 눈앞이 밝아지고 고개를 숙여 발 끝을 바라본다. 툭 튀어나온 배에 가려 발 끝이 보일 듯 말 듯하다. 깊은 상념에 빠졌다가 현실을 바라보니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몸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지방이 가득 낀 뚱뚱한 아저씨의 심폐는 이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렇게 잠시 추억에 빠졌던 정신은 현실에 호출되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조여 오는 기도와 부족한 산소가 호흡 곤란을 일으킬 정도로 고통스럽다. 하얗게 질린 얼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짓이다. 빨간색 십자가 모양, 작은 글씨로 레이스 패트롤이라고 쓰인 풍선을 단 희끗한 머리의 남자가 그를 보고 옆으로 달려와 상태를 확인하며 괜찮냐고 묻는다. 아저씨는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 그를 붙잡으며 그만하라고 권유하려 하는데 아저씨는 끝까지 안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나요, 살려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소.”



부축하던 패트롤은 그의 눈빛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그를 잠시 길바닥에 앉히면서 이야기한다. “자, 여기서 5분 동안 심호흡을 하고 다시 출발해요.” 머리가 희끗한 것을 보니 아마도 전문가이지 싶던 그 패트롤은 자리를 떠나고 아저씨는 그를 보며 큰 소리로 외친다. “감사해요!” 시간이 흐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저씨는 어릴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다시금 의지를 되새기고 출발한다.



한참을 달리고 나온 급수터. 물이 잔뜩 컵에 담겨 있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돌아가신 어머니 다음으로 보고 싶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데 앞에 있는 자원봉사자가 말을 건다. “그렇게 한 번에 많이 드시면 탈 나요. 천천히 조금씩 입에 머금고 삼키세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 그런 말이 귓등으로 들어올 리 없었다. 아저씨는 물 한 컵을 머리에 들이붓고는 다시 출발한다. 급수대 앞에 놓인 표지판에 자신이 달린 거리가 적혀있다. 3km.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분명 7-8km는 달린 것 같은데. 몸이 이렇게나 힘든데, 아직도 7km를 가야 한다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순간 마음 한편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둥실 거리며 떠오른다. 몽글거리는 게 아주 맛있는 솜사탕처럼 보인다. ‘달달 하니, 한 입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쓸데없는 상상이 떠오르며 다리가 자물쇠에 잠긴 듯 움직이질 않는다. 조그맣게 시작된 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체감되자 큰 공포로 다가오며 그를 집어삼킨다. 더 이상 어쩌지 못한 아저씨는 3km 급수대 앞의 지박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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