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켄야 <백(白)> 후기
하라 켄야는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무인양품의 철학인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이야기하면서, '공(空)'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백과 공은 서로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백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마는, 오늘 이야기 할 부분은 그러한 공백으로서의 백이다. 백은 종종 우리에게 색깔이 없는 것, 즉 '부재'로 다가온다. 이때 부재란 어떤 것이 채워질 '가능성'으로 제안될 때가 많다. '아무 것도 없음'이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 채워질 잠재력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일례로, 일장기는 백색 바탕에 적색 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적색 원은 단순히 적색 원일 뿐이다. 누군가는 천황, 국가, 애국심 등을 떠올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침략, 파괴, 제국주의 등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미 중에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적색 원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나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비어있을 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백이 '명상'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명상은 '현재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과거나 미래에서 오는 걱정거리들을 싹 비워내고,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제는 식사를 하면서 백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밥을 먹는 동안 오롯이 그 순간에만 머무르는 연습을 해봤다. 식사를 하면서 언제나 습관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했다. 내게 식사란 그 자체로는 전혀 의미가 없고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여서, 그 시간은 항상 날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꾸역꾸역 다른 일들을 끼워넣어야만 했고.
그래서인지 어제의 식사는 낯설고 어색했다. 이어폰도 꽂지 않고, 스마트폰과 책은 가방에 넣어뒀고 같이 먹는 친구도 없었다. 가만히 먹기만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두 달 전에 갔던 워크숍에서 밥을 먹을 때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 그게 내 몸으로 어떻게 들어오는지 등을 생각하며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보라던 말이 생각나 토마토와 양상추, 양파의 아삭거림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하며 먹었다. 그런데 내가 음식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계속 똑같은 느낌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지루함이 한 번 느껴진 순간, 식사를 다 하고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머릿 속으로 체크 리스트를 쓰다가 아차 싶었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내 뇌는 금세 과거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주의를 현재로 돌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보이고, 정원도 보이고, 열심히 돌고 있는 선풍기도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밖에 붙어있는 팻말을 보게 됐다. '참, 저게 있었지.'
8無. 계란, 우유, 버터, GMO, 백설탕, 방부제, 백밀가루, 화학 첨가제. 분명 이 식당에 처음 찾아올 때는 저 팻말을 보고 '여기구나!' 알았던 것 같은데, 이후에 자주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대단한 인사이트를 얻은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것인데, 지금에서야 인지하게 됐다는 게. 더구나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하라 켄야는 이를 미지화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이미 알고 있어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들에 뚫어져라 몰입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행위. 이러한 미지화는 백, 즉 비워내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 순간에 익숙한 대상 외의 것들을 걷어내는 것일 수도, 대상에 대한 편견을 비워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면 하얀 백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해야겠다.
그럼, 조금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무 것도 없다는 뜻으로서의 '백(白)'은 일상에서 '명상'이라는 행위로 실현될 수 있다. 그렇게 실현된 백은 익숙한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는, 즉 크리에이티브와 직결된 개념인 '미지화'로 이어진다.
하라켄야 <디자인의 디자인>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