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도적 삶과 육아
[우리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요.]
육아는 매우 피곤합니다.
주말 아침 쌩쌩하게 일어나도
아이랑 놀다 보면,
체력의 저하가 급격히 찾아옵니다.
시간을 바라보면
고작 30분이 조금 지났을까요.
피로감이 몰려오고,
오늘 하루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눈을 돌려 아내를 봅니다.
구원자를 찾는 내 눈길에 담긴 아내의 모습도
이미 피곤함으로 차 있습니다.
안쓰러운 동병상련의 마음과
잠시 힘을 빌려 기대고픈 마음이 동시에 생깁니다.
아이는 우리가 준비해 놓은 옷을
입지 않겠다고 의사 표현을 합니다.
더운 날씨임에도
본인이 입고 싶은 두꺼운 옷을 입겠다고
끝끝내 고집을 피웁니다.
'아, 또 피곤이 몰려옵니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시원한 여름옷을 입힙니다.
아이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거울 앞에 서서 아름답다며 연신 칭찬을 해줍니다.
아이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달랜 기분으로 밖을 나갑니다.
산책하러 가자고 나왔지만,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그네를
그냥 지나칠 수 없나 봅니다.
그네 한 번만 타고 가자며 내 손을 뿌리치고는
후다닥 달려가 버립니다.
나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먼저 가서 앉은 모습 그대로
내게 오라는 손짓을 합니다.
조금만 타고 산책하러 가자고 협상을 시도합니다.
아이는 알겠다고 씩씩하게 대답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30분 동안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를 달래보지만,
매번 협상 결렬입니다.
'아, 또 피곤이 몰려옵니다.'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얘기합니다.
우리 부부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밥 시간이니 맛있게 저녁을 먹은 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제안합니다.
아이는 막무가내입니다.
한 입 겨우 먹고는,
배부르다며 밥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후식을 먹겠다고 합니다.
'아, 또 피곤이 몰려옵니다.'
아이는 영상을 보고 싶어 합니다.
영상만큼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볼 수 없게 하려
단호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아이는 드디어 포기합니다.
체념한 채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내게 안아 달라고 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잠 와. 잘래."
아직 잠 잘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게다가 낮잠도 충분히 잤습니다.
왜 갑자기 잠이 오냐며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갑자기 잠이 온다며
어리광을 피웁니다.
순간 무엇이 머릿속을 스쳐 갔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말합니다.
"영상 10분만 보고, 끌까?
근데, 잠 온다 했으니 내일 볼까?"
아이는 갑자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응, 나 잠 안 와. 그럼 10분 만이야. 아빠."
그제야 내가 피곤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하루를 주도한 사람은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냈고,
저는 그런 아이에게 끌려다녔습니다.
내 마음이 아니, 아이의 의지대로 보내는 하루는
제게 피곤을 몰고 왔습니다.
아이도 같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니
급격한 피곤이 찾아 왔습니다.
내가 이끌고 가는 것과
피곤의 관계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까요?
[자기 주도적 삶과 육아]
'주도적인 삶'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최근 자기계발 열풍이 불며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 뜻은 내가 주인이 되어 스스로 계획하고, 의지로 실천해 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정의를 보면 반대의 질문도 떠오릅니다. 주도적이지 않은 인생을 사는 형태는 어떨까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겁니다.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 없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보지 않습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떴다가 밤에 눈을 감는 그런 하루를 사는 겁니다.
위의 에피소드처럼 아이는 자신의 주도로 생활할 때는 피로감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행동하여 즐겁고, 그 속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아이의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보육하기 위해 어른이 옆에 붙지만, 아이는 늘 자유자재로 자신의 의지를 실천해 나갑니다. 하루 동안 자신의 삶 자체가 아이에게는 놀이터가 됩니다. 그러다 반대로 끌려갔을 때 아이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나요.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저처럼 금세 힘들어했고, 심지어 자고 싶다고 표현했습니다. 육아하는 부모가 항상 피로한 이유가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이 한몫했습니다. 이처럼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서도 생각이 없는 삶은 피로감 그 자체입니다. 마라톤에 흔히 비유하는 우리의 긴 인생은 어떨까요. 자기 생각이 없는 인생은 평생을 피로감을 느끼며, 불안과 후회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겪을 겁니다.
주도적인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사이의 차이점은 바로 생각입니다. 그 생각은 다양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시작합니다. 이 질문에 즉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며칠의 고민 만에 답을 찾을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진지한 사색이 계속되며, 질문에 질문으로 꼬리를 물면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으면 그제야 내 삶은 다르게 보입니다. 마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IT 기기처럼 전혀 다른 연산 과정을 수행합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자신으로 바뀌기 위해 매일 변화와 성장을 기본으로 설정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을 가진 삶을 살 준비를 마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유연함이란 상황에 맞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의 형태입니다. 매 눈간 자신을 변화시키며 앞으로 나가려 하고, 이는 삶의 피로를 덜어 성취감으로 채워주게 합니다.
저는 변화와 성장을 삶의 목적으로 정했습니다. 이 모토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이건 제가 스스로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지만, 육아의 피로도를 덜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육아는 변함이 없지만, 저는 그 속에서 아이의 행동과 생각을 관찰합니다. 이는 제게 다양한 영감과 글감이 되어줍니다. 겉으로는 아이의 의지로 시작하는 육아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글이 되어 돌아옵니다. 저는 아이에게 매우 감사합니다. 몰랐던 감정과 잊고 있었던 순수함을 매번 꺼내줍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도적이지 않은 육아란 없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같이 해주되 생각의 운전대만은 제가 잡고 있으면 됩니다. 육아와 일상에 지치신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생각을 찾고, 자신의 생각 방법을 바꿔 보십시오. 그러면 한순간도 내가 아닌 순간이 없을 겁니다. 주도적인 육아, 주도적인 삶에 한 걸음 다가가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