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겹침의, 어울림은 변화의, 사귐은 섞임의 시작

by 이부

사람들은 하루에 많은 타인들을 마주한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모르는 사람과 스치고, 운이 닿으면 기억 속에 남긴다. 그와 나도 그랬다. 그와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났다. 긴 머릴 새빨간 색으로 물들이고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난 흔하게 온갖 힘이 들어간 신입생이었다. 재수를 해서 웬만한 선배들과는 동갑이니 기선제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흔한 ‘대학은 처음이라 긴장한 새내기 1’ 말이다. 현실은 기선 제압은커녕 온갖 영어 시험과 설명이 난무하는 지루함과 배고픔에 단팥빵이나 우그적 거리는 ‘이상하게 눈에 띄는 애’ 였을 뿐이었지만.


대학 새내기에게 영어 시험이 대수인가. 시험이든 학교 설명이든 오리엔테이션 안내이든 간에 당장 옆 자리 동기와의 인사가 가장 중요하고 설레는 법. 옆자리라는 우연한 만남은 새내기에게 서로를 감질나게 알아가는데 충분했고 무리를 형성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미성년일 동안, 또 애매한 무소속의 재수생일 동안 대학이라는 데서 보이고픈 내 모습을 오래도록 상상했다. 그 모습들을 덕지덕지 묻힌 채, 그리고 과거의 나를 감춘 채 새로운 이와 대화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겉치레의 호구조사조차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탐색하기엔 충분했다. 충분하다 못해 그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다. 첫인상과 어울림의 판도는 이것으로 판별 나니까. 그리고 대학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던 강의실엔 이미 대화의 판이 깔려 있었다. 앞으로 대학 사회생활의 생존게임과 같았달까. 새내기 1은 그렇게 느꼈다.


서로가 첫 만남에 알려줄 수 있는 정보의 공통점을 필사적으로 찾아내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판. 서로의 옆자리인 그와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안녕?”을 시작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이 인사는 그렇게 그와 나 사이의 6년간 수없이 회자됐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게 얼마나 신중해야 하고 중요한지에 대해 이 ‘인사’가 빠질 수 없었다.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도 첫 만남에 큰 의미를 두어 생긴 믿음 아니던가. ‘해’라는 이름의 그와 나는 서로가 첫 만남에 내놓았던 겉치레에서부터 겹침이 예고되어 있었다. 해와 나는 같은 재수 생활을 보냈고 (물론 독학재수와 기숙학원이라는 상이한 환경이었지만 당시엔 알 바 아니었다) 사는 지역이 같았으며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물론 이 또한 대분모)이 겹치는 엄청난 우연의 일치가 발생했다! 이 얼마나 21살의 남녀가 어울리기에 충분한 공통분모인가. 여기서 세세하게 다른 점들은 앞으로 서로 대화해 나갈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과도하게 쥐어짜 낸 리액션을 나눈 둘은 ‘처음으로 마주한 동갑인 학과 동기’라는 이유로 같은 버스, 옆자리에 앉는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오리가 처음 본 사람을 엄마로 생각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 마냥 우린 자연스레 함께였다.


물론 뒷자리와 또 다른 옆자리, 그리고 멀리 있던 동기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그들에 비해 해의 외모가 준수해서 보기만 해도 훈훈하다거나 원활한 사교성과 유머가 있어서 라디오가 비지 않는 빵빵 터지는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반대였다. 해의 외모는 고등학교 동창과 닮았단 생각이 먼저 드는 흔한 외모였고 살짝 음울한 인상이었으며 이성이 익숙지 않아 눈을 제대로 마주치며 대화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해가 가장 편했고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해는 상대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진 못해도 대화에 진심을 담았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인 것이 티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한 목소리였지만 노력이 담겨있음이 느껴졌다. 첫 만남의 대화에 배려와 노력이 담겨있는 사람은 흔치 않고 싫을 리 없었다.


이 첫 만남으로 후에 연인이 되었다는 스토리를 전해 들은 모든 지인은 ‘운명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우연인 운명이라기보다 일련의 선택들이 쌓인 시작의 연장선에 가깝다고 여겼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은 너무 거창하고 로맨틱하다. 설렘과 로망이 가득 찬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옆 자리라는 소통하기 최적인 상황에서 첫 만남을 가졌을 뿐,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만남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 것이었다. 사실 정말 별생각 없었다.


만남으로 겹쳤고, 선택한 서로가 어울리게 됐으며, 그 선택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어진 결과가 사귐이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주고받은 새로운 전화번호만 50개가 넘었던 것처럼 수없이 많은 타인과의 만남이 사귐이 되기까지 분명 나의 선택이 존재했다. 해와의 대화가 처음부터 “밥 먹어쪄?”, “보고싶당” 이었겠는가. 새내기들의 흔하디 흔한 대화로 서로의 기숙사에 대해 묻고, 시간표를 공유하며 함께 PC방에서 만나 수강신청을 하고, 학교 버스를 함께 타고. 기왕이면 얼굴도 대화도 튼 친구와 함께인 것이 좋았다. 덜 불안했다. 대학에서 처음 사귀고 친해진 친구니까 더 소중했다. 그리고 그 맘 때쯤 동기와 선배들은 온갖 남녀들을 엮는데 재미 붙어 있었고 여러 소문을 의식하며 지내다 보니 사귀게 되고. 당연히 그 인연이 몇 년을 갈 것을, 인간관계와 진로의 모든 것들을 어그러트릴 줄은 전혀 알지도, 생각도 못했다.
사귐과 동시에 낯선 이와 낯선 길로 등 떠밀어졌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사랑이라는 책을 함께 써야 하는 무기한 조별과제에 호감 갔던 옆자리 동기와 같은 조가 됐다. 타인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당연히 만남부터 알 수도 없고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나눌 수도 없다지만, 적어도 타인으로 인해 나의 무엇이 변화하고 주위의 흐름이 변화하는지 나는 인지하고 있었어야 했다. ‘있었어야 했다’라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누군가와 어울리기 시작하면 곧바로 변화가 시작된다. 하다못해 말투부터 그렇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 처음 무리를 이룬 친구 중 부산 출신 동기의 말투와 섞이고 있음을 오랜만에 만난 엄마를 통해 알았다. 나는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었는데 말에 억양이 생겨있었고 ‘졸려’가 아닌 ‘잠 온다’와 같은 생소한 말을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 친구는 가면 갈수록 말투 속에 사투리가 지워져가고 있었다. 한때 함께 지낸 친구와도 이리 섞이곤 하는데 연인은 오죽하겠나. 내 연인, 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함께 미술동아리에 들어갔다. 텅 빈 동아리방에서 자주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해는 수채화를 즐겼다. 해는 입시미술의 영향으로 붓에 머금은 물을 바닥에 두 번씩 털어내곤 했는데 미술을 배워본 적 없던 나에게 그것은 해의 특별한 습관이었다. 신기하고 사소하게 여겼던 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이를 닦고 칫솔을 바닥에 두 번 터는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무서웠다. 사소하게 느끼고 있던 스스로의 변화가 어느덧 습관이 되어 녹아있는 것이 로맨틱하고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섬뜩하게 다가왔다. 스스로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변화라는 것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게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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