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진 얼마 안 됐지만 충실한 친구가 되어줄게. 스킨십은 덤이고.’
나에게 연인이란 바로 이런 거였다. 나만을 위한 하나뿐인 친구. 인연이 닿은 두 명의 사람이 ‘사귄다’, ‘연애한다’라는 계약으로 묶여 연인의 이름이 되는 것. 연인은 내가 꿈꿔 왔던 친구의 형태였다. 난 외로울 때면 종종 상상했다. ‘홀로 카페에 있거나 우두커니 버스 정류장에 서있을 때면 누군가가 날 부를 거야.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는 반갑게 나와 인사하고 흔쾌히 합석해서 깔깔 대며 대화하겠지. 한 달 전부터 겨우 시간 맞춰가며 약속하지 않아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통화 단축키로 등록되어 있고, 번호만 누르면 시시콜콜한 대화거리도 그는 들어줄 거야. 아니, 그와 난 아무 대화 없이 술잔만 기울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겠지. 통화버튼을 누르고 서로의 숨소리만 듣고 있어도, 그 사람의 존재만 확인해도 떠들썩한 온 세상이 멈추고 나의 시끄러운 마음도 함께 가라앉을 거야.’ 나는 그런 이상적인 친구를 꿈꿨다. 그러다 연인이란 이름의 친구를 얻었다. 연인은 서로에게 충실한 친구로서 맞춰갈 기회를 가진다. 많이 만나고, 깊이 접촉하고, 충분히 마음을 묻고 표현한다. 그 기회가 나에겐 계속해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관계로 가는 발판이 되었다.
한 때는 길을 가다가 발에 차이는 것이 친구일 정도로 인싸인 내 모습을 꿈꿨다. 대학에 들어간 난 친구들을 많이 많이 사귀고 싶었다. 동시에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만인에게 사랑받고 가족보다도 가까운 친구도 사귀어보고 싶었다. 더 이상 구석에서 남들이 하는 마피아 게임을 구경만 하는 구석 쟁이이고 싶지 않았고, 옆 자리 짝꿍에게 과자를 퍼주는 호구이고 싶지 않았다. 내 쪽에서 관계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사람이 모이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발을 담글 새로운 사회에선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으면 했고, 있다면 과거의 내가 무엇보다도 바랐던 조력자, 더 나아가 구원자가 되어주리라 결심했다. 놀랍도록 거창한 꿈이었다. 비록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은 없어도 빛나는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고 싶었다. 모범생의 탈을 쓰고 많은 것이 억눌려있던 나는 성실함의 관성과 보상심리가 뒤섞인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었고, 새롭게 원했던 모습으로 훌륭히 탈바꿈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학기가 시작한 3월은 성공적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연애도 시작했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내 주위엔 항상 사람들이 가득했다. 모임이 생겨도 자연스럽게 내가 주도자였고 무리의 리더 역할은 내 차지였다. 무리에 끼지 못하거나 소심해서 소외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함께 하자며 항상 웃었다. 그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애정을 쏟았다. 드디어 내 사람들이 가득히 생긴 것 같아 내일이 오는 것이 불안하지 않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무리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감당하기 힘든 수많은 시선에 노출되고 주목받는 일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찰하는 눈들도 많아졌다. 순간의 모습들과 내뱉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나의 파편이 되어 오해와 편견이라는 것들로 변질되었다. 소문 속의 나는 이미 ‘어장녀’이자 ‘성차별주의자’에 ‘돈 자랑하는 재수 없는 애’였다. 숱한 누명과 소문들은 근거 없이 퍼져나가 더 이상 뒷담이 아닌 앞담과 욕설로 학교 내에서 밥조차 맘 편히 먹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완벽한 대실패. 멋진 리더이자 누군가의 구원자는커녕 고등학생 시절 과자를 퍼주며 애정을 갈구하던 그때 그 모습이 재현된 것 같았다. 사랑받다가도 순식간에 무관심과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불특정 다수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또다시 수많은 미움을 받으며 소외되어 간다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그것이 반복됨에 좌절했다. 이쯤 되니 나를 받아줄 어떤 무리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이 문제라서 나를 진심으로 대해줄 어떤 타인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구든 언제라도 사랑을 거두고 나를 버릴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대할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강의실에서 마주친 동기들이 나의 인사를 무시할 때 다시금 떠올렸다. 나에게 무해한 타인이 다가와 나의 이야길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상상. 이해관계없이 내 본질을 사랑해주고 언제든 나를 반갑게 맞아줄 타인. 다수의 사람들을 원하고 괴로워하다 나를 이해해줄 단 한 사람만을 원하던 욕망을 다시 떠올렸을 때, 마지막까지 남아 함께 한 사람은 대학 첫 친구이자 첫 연인인 ‘해’였다.
해는 나와 항상 함께였기에 당연히 숱한 소문들을 알고 있었다. 들렸고, 누군가 해에게 직접 전했다. 해의 귀에 나의 악담을 속삭이고 어장 속 물고기임을 연민했다. 그런 해에게 난 빌어먹을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럼에도 괜찮은 척, 쿨한 척 이미 공기가 변할 대로 변해버린 무리를 나왔다. 해의 손을 꼭 붙잡고 내가 싫어서 떠나는 거라며 위안 삼았다. 해는 딱히 별 감흥도 저항도 없이 나를 따랐다. 연인의 이름으로 변함없이 함께 하지만 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해가 편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했다. 함께라 안심하기엔 속내조차 알 수 없으니 어떻게든 해와 처음 사귀었을 때의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려 했다.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않고 온갖 자기 연민과 문드러져 곪아버린 속내를 숨겼다.
하지만 계속 손을 잡고 이어져 있으니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우린 항상 연인의 이름으로 함께 였기에 서로의 뒷면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잡은 손 너머로 서로에게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해는 서툰 사람이었다. 남들과 진심을 나누고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 어색한 사람. 그래서 무해한 상태로 그냥 끌려다니는 것이 자신의 방식이었던 사람. 그만의 고집도, 생각도 굳이 타인에게 내비치는 것이 괜찮을지 고민하는 사람 말이다. 우린 서로에게 단 한 사람의 존재인 연인으로서 각자의 본질을 알아갈 시간과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서로를 가장 많이 바라봤고 서로의 이야길 가장 많이 들었다. 사교성 없는 해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넨 것은 나였다. 반면에 마음을 먼저 물은 것은 해였다. 해는 내게 대뜸 울어도 괜찮다 말하고 힘들면 말하라고, 언제든 들어준다 말했다. 나와 언제나 함께 할 거라며 자주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눈물샘을 그의 말에 허락이라도 받은 듯 눈가에 물을 채웠으나 어림없지. 믿지 않았다. 누구든 날 것의 나를 안다면 부담스러워하거나 실망해서 나를 떠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초라한 작디작은 빛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럴듯한 망토를 뒤집어쓰고 사람을 사귀었다. 그래서 해의 앞에서도 망토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 해는 누구보다 먼저 망토의 존재를 알아챘다. 나는 해가 망토를 뒤집어쓴 나의 모습을 좋아한다 생각했기에 두려웠다. 난 오랜 친구조차 없었고 연애는 하물며 처음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불쑥 마음을 물어온 해에게 나는 격양된 목소릴 숨기지 못한 채 답하고 싶지 않던 답을 했다. 나와 언제나 함께 할 거라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말에 해는 “난 날 잘 알아. 내가 널 싫어할 리 없어.”라 답했다. 고작 한 두 달을 함께 한 사람의 말이었다. 단호하지만 이상하고, 미사여구도 없는 가벼운 문장. 그 터무니없는 가벼움에 가장 날 비참하게 하고, 힘들게 하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을 툭, 내뱉었다.
“헤어지면 끝이야. 영원히 라는건 없어.”
관계의 평화를 위해 외면하던 질문에 대한 답은 또다시 담백했다.
“그래도 널 미워하거나 싫어할 리 없어. 그러니 관계가 달라져도 함께 할 거야. 혹 네가 싫다면 멀리서 항상 응원하는 수밖에.”
날 추켜 세우며 위로하는 것이 아닌 허황된 그의 말. 누구보다 오래 봐온 자기 자신을 아는데, 그런 내가 너라는 사람을 미워할 리 없다는 이상한 답변. 그렇지만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그 말에 나는 엄마가 아닌 타인 앞에서 처음으로 끅끅대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모두 쏟아냈다. 조그마하게 뽕뽕 구멍 났던 벽이 쏟아지는 커다란 물줄기로 걷잡을 수 없이 뚫려 콸콸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다시 매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뚫려 버린 구멍은 물줄기를 계속 계속 쏟아냈다. 만난 지 한두 달 남짓인 관계였다. 그런데 그는 누구보다 충실한 친구였고, 동반자였다. 망토 속에 숨은 나를 들추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아닌 괜찮다면 얼굴 한번 보여달라 청할 뿐이었다. 깊숙이 숨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함께 하겠노라 약속하면서. 나는 나의 알맹이인 작고 희미한 빛을 아무도 사랑 할리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나의 붉은빛을 사랑해 고백했다.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해 알지 못했던 나의 색.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빛의 밝기가 아닌, 빛깔을 사랑해준 첫 번째 타인이었다. 해가 말했다. 너의 선명한 선홍빛을 알아보고 매료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갈 거라고. 나는 답했다. 그럴 거라고.
해와 친구에서 연인이란 이름으로 맺어질 때도 참 허황됐다. 칼국수를 나눠 먹다 고백받았는데 무슨 로맨틱이 있었겠는가. 단지 간질간질한 감정과 깊은 진심이 마주 보는 상대에게서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뿐이었다. 그와 친구가 됐을 때와 같았다. 단어와, 문장과, 장소가 아닌 허황된 믿음마저 갖게 하는 담담하고 투명한 마음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망토를 뒤집어쓰면 언젠가 숨이 막히기 마련이었다. 난 남들의 소꿉친구라는 존재가 가장 부러웠다. 순수한 알맹이 상태를 드러내도 모든 것들을 서로 포용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존재. 본연의 존재를 사랑하는 사이. 그렇지만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것. 존재하기나 할까 싶은 순수한 사랑과 우정. 나는 해를 통해 그런 관계가 유니콘 같은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영원하지 않은 시간제라 할지라도 존재했다. 나도 가질 수 있단 걸 알았다. 함께라는 용기를 알았고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했다. 나만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다시, 다시 희망을 갖게 하는 바보 같고 따뜻한 힘이었다.
해와 내가 사귀게 되었을 때 하나같이 모두 참 안 어울린다고 했다. 너무 다르다고 했다. 누가 됐건 한쪽이 져주고 있거나 끌려가고 있을 거라 말했다. 그렇게 정 반대로 보이던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각을 뒤집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뒷면을 뒤집어볼 생각만 하면 잘 맞는 사이였다.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있단 걸 해와 만나 알았다.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충분히 충실한 친구였고, 소꿉친구는 아니지만 20대 청춘을 통째로 함께 한 연인이다. 70대쯤 되면 서로를 소꿉친구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