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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Aug 11. 2021

나는 난생처음 조깅을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에 함께 운동을 하지 않겠냐는 남편의 제안에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과 처음으로 조깅을 시작했는데, 그날은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직 무더운 여름이라 우리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서기로 했다.


남편은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가만히 있기를 꽤 좋아하지만,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면 가만히 있을 때도 최선을 다해 가만히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을 알기 위해 이건 남편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토요일 아침, 커튼을 걷어보니 새벽에 소나기가 내렸던 터라 하늘이 더없이 맑아 보였다. 남편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틈에 나는 결연한 의지로 스트레칭을 했다. 과연 내가 3km나 되는 거리를 달릴 수 있을진 의문이었지만, 얼굴에 선크림을 두둑이 바르고 팔 토시까지 한 채로 8시 5분, 우리는 집을 나섰다.



우리는 부대 밖으로 나와 서서히 달릴 준비를 했다. 조깅의 목표지점은 '나의 새로운 동네' 산책을 위해 갔던 카페였고, 초보 조거(jogger)인 나를 위해 카페까지는 달리고 돌아오는 길은 걷기로 했다. 곧 조깅의 사전적 의미대로 나는 내 몸에 알맞은 속도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고, 남편은 내 속도에 맞춰 함께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남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여봉봉, 생각보다 잘 뛰는데?"

"그럼. 출근길 지각을 면하기 위해 아침마다 달리면서 다져진 몸이라고!"

"오올."

"내가 초등학생 때 육상부 선수였다고 말했었나?"

"그럼, 이미 알고 있지."


초등학교 육상부 선수였던 이력이나 출퇴근길에 걷고 뛰었던 시간들이 딱히 나의 조깅에 실리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전혀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시절 그 경험들이 숨 가쁘게 달리고 있던 내게 여느 때와 같이 내적 동기부여를 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달리진 못해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달려보자고 말이다.



어쨌든 첫 조깅이니 목표지점까지 쉼 없이 달릴 수는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3분의 1 지점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시기 위해 2분의 1 지점에서 한 번 멈춰 쉬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남편은 내가 퍼지지 않도록 나를 끌어주었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지만 나는 다시,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달리는 내내 내게 쉼 없이 말을 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숨 쉬기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남편의 말을 씹은 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속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남편은 딱히 내게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말이다.)



"하늘이 너무 맑고 예쁘다. 여봉봉, 하늘 좀 봐봐."

"… (응, 너무 예쁘다. 사진 찍고 싶어)."


"오늘 같이 새벽에 비 온 날은 산에 가면 더 습하고 더울 것 같아. 그렇지?"

"… (응, 장난 아닐 것 같아)."


"여봉봉, 이 벽에 있는 담쟁이덩굴 너무 예쁘다."

"… (응, 너무 귀엽다)."


"여봉봉, 일찍 나오니까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다. 그렇지?"

"… (응, 역시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 것 같아)."



물론 조깅이 끝난 후에 나는 남편에게 내가 남편의 말에 일일이 속으로 대답하고 있었노라 해명했다. 그러자 남편은 내게 이렇게 을 했다.


"뛰면서 내가 계속 말을 걸었던 건 여봉봉이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기 위함이었지.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니었어. 그리고 더불어 폐활량이 더 좋아지니까. 훈련하면서 군가를 부르는 원리와 같달까?"


그래, 누가 군인 아니랄까 봐. 그래도 남편 덕분에 최선을 다해 달릴 수 있었다. 도착 지점까지 300m 정도 남겨두고 조깅 종료를 선언했지만 말이다.


남편과 나는 카페에 도착해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눴는데, 앞으로 조깅을 꾸준히 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헐떡이며 달려왔던 거리를 생각해보면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남편과 함께라면 또 해 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덥석 그러겠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조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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