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보내는 글
날이 많이 추워지고 있어요. 옷장 안에 있는 코트는 이제 입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어요. 패션에 민감한 분들은 코트를 선호할지도 모르지만 옷장을 열면 자연스레 패딩을 꺼내 입게 되는 계절이 왔어요. 그만큼 날씨가 추워졌음을 의미하겠죠. 저는 겨울에 태어났어요. 그것도 제일 추운 달에 태어나서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아들을 원하는 집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으니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제가 미웠대요. 장남인데 아들을 못 낳아서 할머니가 구박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힘들게 저를 낳고는 몇 달 동안이나 한 번도 안아주질 않았다고 해요. 그때는 엄마의 그 말이 참 미웠는데 이제 와서는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아요. 더위도 많이 타지만 추위는 엄청나게 싫어하는 편이에요. 집에 있어도 보일러를 늘 켜고 있어서 겨울만 되면 엄마에게 혼이 난답니다. 바닥이 차가운 것은 견디기가 힘들고 또 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슬며시 들어오는 그 으슬으슬함이 싫어요. 엄청 추운 것은 아닌데, 몸을 떨게 되는 그 웃풍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녀석은 세찬 바람도 아니면서 사람을 떨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저희 집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웃풍이 잘 들어오는 집이었어요. 특히나 어린 시절을 반지하에서 보냈었는데 반지하의 바닥의 차가움과 방벽을 타고 들어오는 으스스 한 바람이 소름 끼쳤던 것 같아요. 집에 있을 때는 그래서 꼭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몇 겹을 덮고 잤어요. 그러나 이불을 덮어도 코끝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으면 숨을 쉬기가 어려워서 답답한데 그렇다고 얼굴을 내놓고 있자니 얼굴이 시려서 겨울밤에 잘 때는 이불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어요. 어떤 날은 추위를 견디기가 힘들어 엄마에게 반지하에서 살기 싫다고 말했다가 혼이 나기도 했답니다. 저는 그래서 겨울이 싫어서인지 봄과 같은 따뜻한 날을 좋아해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사계절에 사는 우리가 이렇게 모든 계절을 온몸으로 견디고 사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답니다. 사람은 이래서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견딜 수가 없는 것은 따로 있어요. 겨울과 같은 추위는 어떻게든 견딜 수가 있지만, 마음이 추운 것은 견디기가 여간 힘이 들더라고요. 단단히 찬 바람이 부는 것은 옷을 껴입어서 버티면 되는데, 슬며시 들어오는 웃풍은 감당하기가 힘이 들기도 해요. 특히나 그런 사람이라면 더욱요. 따뜻한 계절을 좋아하는 저는 만나는 사람도 따뜻한 부류의 사람들을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차가운 사람들은 애초에 멀리하는 성격이 되어 버렸어요. 이런 성격으로 인해서 낯을 가린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랑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을 닫게 되어 버리는 것 같아요.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은 같이 있으면 마음이 뜨뜻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이런 걸 인간 됨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런 마음들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계속 따뜻할 수는 없지만, 뜨거운 것도 미지근한 것도 모두 같은 종류의 영상의 온도인 것 같아요. 저도 영상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껴요. 제 마음의 온도가 부족하다고 느끼니 본능적으로 따뜻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겠죠.
어려운 사람들은 있는데 웃풍이 들어오는 사람이에요. 겉은 따뜻해서 가까이 가려고 하면 슬며시 차가운 바람에 마음이 어는 일이 있어요. 아무리 이불을 덮어보고 전기장판을 틀어봐도 코끝이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마음이 얼어버려서 저의 온도마저도 빼앗아 가버리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리를 두는 일이에요. 저의 온도가 다시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또 그의 차가운 온도가 조금은 올라가기를 기대하면서 거리를 두게 된답니다. 시간 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언젠가 계절이 바뀌면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듯이 겨우내 슬며시 들어오는 웃풍도 언젠가는 그치는 날이 오겠지요. 시간을 보내고 거리를 두며 그날을 기다려 본답니다.
매주 1편씩 박작가의 일상에세이를 연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