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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층 랜드마크, 선화동 하늘채 루시에르에 대해

by 생각하는 수첩

출장길에 중앙로를 지나다 보면 하늘채 스카이앤과 한신더휴 리저브가 시야를 꽉 채운다. 모텔 간판으로 뒤덮였던 골목은 사라지고 49층짜리 주상복합이 서로 키재기를 한다. 아직 철근도 안 보이는 분양 현장은 줄이라도 선 듯 늘어서 있고 선화동 하늘채 루시에르는 그 줄 맨 끝에서 굳이 “루시에르”라는 별칭을 덧칠해 자기 존재감을 증명하려 애쓴다. 어차피 사람들은 “또 하나 들어서는 아파트”로 기억할 텐데 말이다.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6억 초반부터 시작된다 바로 옆 스카이앤 1차 매물은 4억대 후반이고 분양권 프리미엄을 입은 힐스테이트 더와이즈도 5억대 중반인데 루시에르는 1억쯤 더 얹어야 한다. 물론 청약 홍보물은 “랜드마크 프리미엄” “도심융합특구 수혜” 같은 말로 그 갭을 포장한다. 하지만 새집 냄새에 1억을 태우는 일은 주담대 금리 3% ~ 5% 대에선 애당초 낭만보다 생존에 가까운 스포츠다.


개발 호재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대전역 복합개발 미래형 환승센터 도심융합특구 스타트업 클러스터' 듣기엔 힙하다. 문제는 타임라인이다. 2026년 착공 2029년 준공이라는데 한국의 대규모 개발이 제시간에 끝난 적이 있던가? 환승센터 기본계획 한두 분기만 밀려도 실수요자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투자자는 계약금 환불 규정을 뒤적인다. 호재는 뉴스 헤드라인으로는 빛나지만 공사 현장 펜스 뒤에선 늘 ‘지연 공지’ 팻말과 세트로 움직인다.


반대로 확실한 것은 공급 폭탄이다. 2026년에서 2027년 사이 대전에만 2만 세대가 한꺼번에 입주한다. 대출 문을 두드리면 금융기관은 여전히 3% ~ 5%대 고정금리를 내민다. 분양률이 60% 밑으로 빠지면 PF 추가 조달 금리가 튀어 오른다. 결국 미분양은 전매 시장이 아니라 잔금 직전에 터진다. 잔금일에 맞춰 현금이 막히면 그날부터 ‘랜드마크’라는 수식어는 그냥 높은 관리비 고지서로 변한다.


그래도 실거주라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진다. 학군 직주근접, 대전천 산책로, 이런 요소는 단기 시세보다 삶의 편의와 직결된다. 다만 그 ‘삶의 편의’가 분양가 6억 초반이라는 숫자를 합리화할 만큼 크냐고 묻는다면 결국 답은 개인의 체력과 통장 잔고로 귀결된다. 투자자는 더욱 냉정해야 한다. 경쟁률이 미지근할 때 잔여 세대나 줍고 1억쯤 유동자금을 확보해 두어야 금리 5% 시대가 와도 살 수 있다. 어디까지나 ‘현금 흐름이 멈추지 않는 선’에서만 버티기가 가능하다.


주말 아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35층 스카이라운지(예시)'에서 내려다본 대전역 뷰가 당신에게 1억의 가치를 준다면 모를까. 결국 하늘채 루시에르는 구도심에 붙은 마지막 화려한 스티커일 뿐이다. 휘황찬란한 조감도와 포토샵으로 반짝이는 야경 뒤에 숨은 변수는 공급 과잉과 금리 리스크라는 두 개의 날카로운 바늘이다. 그 바늘을 견딜 준비가 됐다면 청약 버튼을 눌러도 된다. 그러나 ‘랜드마크’ ‘프리미엄’ 같은 단어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한 걸음 물러나 중앙로의 헌 간판을 다시 떠올려 보라. 그곳은 몇 해 전에도 “무궁한 발전”을 약속하던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었고 지금은 거기에 49층짜리 아파트가 또 하나 서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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